"아이폰 웨딩촬영" "커피에 새긴 청첩장"…남다른 MZ 결혼

머니투데이 이지현 기자, 김지성 기자 2024.01.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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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배모씨가 운영하는 아이폰 스냅업체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 '아이폰스냅'을 검색하면 1만개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25일 배모씨가 운영하는 아이폰 스냅업체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에 '아이폰스냅'을 검색하면 1만개 이상의 결과가 나온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혼수 안하는 대신 신혼여행은 눈치 안 보고 다녀왔어요."

서울 강동구 거주하는 이모씨(29·남)는 지난해 9월 치른 결혼식을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6년 연애 끝에 결혼하기로 결정하고 결혼 비용을 아낄 방법을 오래 고민했다고 한다. 당시 예비 신부와 상의해 혼수는 물론 양가 부모님께 드릴 선물도 생략하기로 했다.

대신 아낀 비용은 신혼여행에 투자했다. 이씨 부부는 스페인 바르셀로나, 세비야 등 도시를 돌았다. 그는 "신혼여행 땐 먹고 싶은 거 다 먹고 가고 싶은 곳을 모두 다녀왔다"며 "주변 지인들도 요즘 그렇게 결혼 비용을 계획하더라"고 말했다.



최근 MZ세대 예비부부를 중심으로 결혼 준비 과정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과거 예단, 혼수 등 두 사람의 만남과 직접적 관련이 없는 부분에서의 비용을 대폭 줄이는 한편 청첩장, 신혼여행과 같이 부부가 가치를 둔 부분에 소비를 늘리는 식이다.

다음 달 결혼을 앞둔 예비 신랑 김선우씨(40)는 청첩장에 공을 들였다. 자신이 운영하는 커피숍에서 판매하는 드립 커피백에 직접 디자인한 이미지와 결혼식 관련 정보를 새겨 청첩장을 만들었다. 일반적인 종이 청첩장보다 비용은 더 많이 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보람이 컸다고 한다.



그는 "청첩장이 결혼식 이후 곧바로 버려지는 것이 안타까워 일회성으로 소비되지 않을 방법을 고민했다"며 "커피숍을 운영하니 드립 커피백에 새기면 더 인상적일 것 같아 이렇게 준비했다. 주변 반응도 좋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드립 커피백 청접장에 비용을 더 쓰는 대신 결혼 관련 커뮤니티에서 얻은 정보를 활용해 다른 데서 비용을 아꼈다. 그는 "다른 신혼부부와 정보를 나누고 더 저렴한 곳을 찾아 비교했다"며 "캐시백을 여러 곳에서 받다 보면 몇만원씩 쌓여 아낀 비용이 꽤 된다"고 했다.

오는 2월 결혼을 앞둔 김선우씨가 직접 제작한 '드립 커피백' 청첩장이다. /사진= 독자 제공오는 2월 결혼을 앞둔 김선우씨가 직접 제작한 '드립 커피백' 청첩장이다. /사진= 독자 제공
서울 광진구에 사는 장모씨(30대·여)도 웨딩 플래너 업체가 운영하는 커뮤니티에 후기를 쓰는 등의 활동으로 캐시백을 받아 결혼식 비용에 보탰다. 대신 이른바 '스드메'라 불리는 스튜디오 촬영, 드레스, 메이크업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장씨는 "결혼식 준비에 있어 양극화가 심하다. 공장형으로 최대한 비용을 줄이는 사람도 있고 물가가 높아도 꿈꾸는 결혼식 로망을 이루기 위해 돈을 쓰는 사람도 있다. 저마다 비용 관리는 필수인 것 같다"고 말했다.

웨딩사진도 DSLR 등 고가의 촬영 장비가 아닌 핸드폰으로 자연스러운 모습을 담는 스냅사진을 선호하는 이들이 늘었다.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올릴 사진을 따로 찍는 업체도 생겼다.

아이폰 스냅 촬영 업체를 운영하는 배모씨(28·여)는 "기존 웨딩 스냅사진은 촬영 후 몇 달씩 기다려야 받을 수 있어 부부가 기다리다 지치는 경우가 많았다"며 "아이폰 스냅은 촬영 당일이나 다음날 사진을 전송해주니 신혼여행 길에 사진을 즐기는 묘미가 있다. 젊은 부부들 사이에 인기다"고 말했다.

서울 은평구에 거주하는 안혜진씨(28·여)는 본식 촬영에 아이폰 스냅사진 업체를 이용했다. 안씨는 "친구가 찍어주는 느낌의 자연스러운 감성이 좋다"며 "SNS 업로드용 1분 동영상을 포함한 패키지를 내거는 곳도 많다"고 말했다. 이어 "본식 여운이 채 가기 전에 가족, 친구들과 사진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고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결혼 준비 과정 변화를 두고 결혼의 의미가 달라진 탓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결혼이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었다면 이제 결혼 당사자인 두 사람에게 초점이 옮겨갔다는 것이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지금은 가급적 겉치레나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과감히 삭제하고 결혼식보다 사람 자체를 중시하는 분위기"라며 "과거 부모님을 위한 결혼식 자체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당사자들에게 중심을 두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검약해서 결혼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본인들이 생각하기에 중요한 경험이나 추억, 재미 등을 찾는 경향이 있다"며 "부부에게 중요한 가치에 좀 더 투자하는 젊은 세대의 특징"이라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MZ세대의 결혼이 '가치소비'에 가까워졌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중시하는 곳에 아낌없이 쓰고 다른 부분은 확 줄이면서 큰 만족을 느끼는 것"이라며 "이렇다 보니 소득에 따라 결혼식에도 양극화가 생길 수 있고 비용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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