값만 싸면 장땡?…"국산 화장지 원단 도산 위기" 수입산에 말렸다

머니투데이 군산(전북)=김성진 기자 2024.01.25 09:00
글자크기

[MT리포트] 구멍뚫린 화장지 안전(下)

편집자주 화장지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 그런데 그 화장지에 대장균과 같은 등급의 위험물질이 포함돼 있다면 쓸 수 있을까.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저가 화장지 원료가 대량 수입돼 국산으로 판매되고 있다면 어떤가. 그 흔한 화장지가 요소수처럼 품귀현상을 빚을 수도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화장지 시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위험물질 논란, 해외산 저가 원지 문제를 정리했다.

"흔한 화장지, 요소수보다 심한 품귀 올수도"…40년차 제지인 경고
김동구 대왕페이퍼 대표 인터뷰

지난 19일에 찾은 전북 군산의 대왕페이퍼 공장. 24시간 돌아가야 할 화장지 원단 생산설비가 멈춰 있었다. 중국산, 인도네시아산 등 저렴한 수입산 원단이 국내 시장을 잠식해 주문량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동구 대표(65)는 국내 화장지 원단 제조업계가 고사하면 화장지로 요소수보다 더한 품귀 현상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이 대만이 국내 산업이 고사하고 화장지 품귀 사태를 겪었다./사진=김성진 기자.지난 19일에 찾은 전북 군산의 대왕페이퍼 공장. 24시간 돌아가야 할 화장지 원단 생산설비가 멈춰 있었다. 중국산, 인도네시아산 등 저렴한 수입산 원단이 국내 시장을 잠식해 주문량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김동구 대표(65)는 국내 화장지 원단 제조업계가 고사하면 화장지로 요소수보다 더한 품귀 현상을 겪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이 대만이 국내 산업이 고사하고 화장지 품귀 사태를 겪었다./사진=김성진 기자.


"수입산에 잠식당하고 국제 펄프 가격 폭등과 같은 사태가 벌어지면 생필품인 화장지의 품귀 현상이 벌어지고, 요소수 때보다 훨씬 심각할 것입니다."



지난 19일 전북 군산 공장에서 만난 김동구 대왕페이퍼 대표(65)는 국내 화장지 원단 산업이 고사 직전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한창 굉음을 내며 돌아가야 할 원단 제조설비가 멈춰 있었다. 벌써 1년 가까이 기계를 이렇게 한달에 열흘 꼴로 세워 뒀다고 했다. 해당 설비는 몸집이 거대해 멈췄다가 재가동하려면 수억원이 든다. 하지만 주문이 없으니 기게를 멈추는 것 외에 별다른 수가 없다. 창고에는 벌써 지난해 6월부터 팔지 못한 원단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화장지 산업은 크게 원단 제조업계와 가공업계로 구분된다. 비록 완제품은 가공업계가 만들지만, 이들은 단순히 원단의 재단과 포장을 맡고, 화장지 수급은 원단 제조산업에 달려 있다. 화장지의 △물풀림 성능 △저자극성 △유해물질 불검출 △종이자원(폐지) 활용 등은 전부 원단 기술에 달려 있다. 원단 제조는 가공에 비하면 기술 터득이 어려워 업체의 수도 가공업체(200여곳)에 비하면 매우 적은 11곳에, 업력은 30년 이상으로 산업이 한번 고사하면 회복이 쉽지 않다. 대만은 중국산 저렴한 화장지 원단에 시장이 잠식당해 현지 원단제조사들이 고사한 후 코로나19(COVID-19), 펄프 가격 급등으로 수입산 원단 공급이 끊기자 극심한 화장지 품귀 현상을 겪었다.



김 대표가 화장지 품귀는 요소수 때보다 극심할 것이라 예상한 것은 요소수는 제조 공법이 간단해 최근 중국산 수입이 막히자 베트남산을 수입한 것처럼 판로도 다양하고 국내 제조산업도 언제든 회복할 수 있지만 화장지 원단은 제조에 기술이 필요하고, '장치산업'이라 불릴 만큼 생산설비가 거대해 업계가 한번 고사하면 회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수입산 원단은 대부분 품질도 떨어지고 안전도 보장하지 못한다. 100% 펄프로 만든 화장지, 재생 화장지 모두 형광증백제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산 대왕페이퍼 본사에서 화장지 원단의 형광증백제 함유량을 검사하니 72.5mg/L가 나왔다. A4용지(80mg/L)와 비슷한 수준이다./사진=김성진 기자.수입산 원단은 대부분 품질도 떨어지고 안전도 보장하지 못한다. 100% 펄프로 만든 화장지, 재생 화장지 모두 형광증백제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군산 대왕페이퍼 본사에서 화장지 원단의 형광증백제 함유량을 검사하니 72.5mg/L가 나왔다. A4용지(80mg/L)와 비슷한 수준이다./사진=김성진 기자.
현재 국내 원단 제조업계는 길면 2년, 짧으면 6개월 안에 도산할 것이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대만과 마찬가지로 수입산 원단이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기 때문이다. 한해 국내에서 소비되는 전체 화장지 원단은 60여만톤이다. 이중 수입산 원단은 2010년 8036톤에서 지난해 15만5000여톤으로 급증했다.


수입산은 국내산보다 25~50%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국내 시장에 침투했다. 특히 인도네시아와 중국산이 지난해 기준 약 14만톤을 수출해, 전체 수입산 원단 유입량의 94.1%를 차지한다. 특히 중국은 화장지 원단을 국내에 무관세로 공급하지만, 국내 업계가 중국에 수출할 때는 5% 관세가 붙어 수출입이 불균형하다. 여기에 원단을 가져다 재단·포장만 하면 되는 가공업체가 우후죽순 늘어나면서 수입산 원단 사용이 급격히 늘어났다.

김 대표는 "국내 시장을 교란하고 국민의 위생 건강을 위협하는 저급한 수입 위생용지의 국내 유입을 막아야 한다"며 "국내에 유통되는 위생용지의 품질 표준을 만들고 수입산에 관세 장벽을 만들어 국내 산업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단독]물러날곳 없는 중소제지사...글로벌 10위 印尼회사 '덤핑' 제소
값만 싸면 장땡?…"국산 화장지 원단 도산 위기" 수입산에 말렸다
국내 중소 화장지 원단 제조사들이 글로벌 10위 인도네시아의 APP(Asia Pulp and Paper)를 덤핑으로 제소한다. APP가 국내 산업을 고사시키기 위해 제품을 본국보다 의도적으로 낮은 가격에 판매한다고 결론내려서다.

24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화장지 원단 업계는 이날 위생용지위원회를 열고 APP를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위원회에 덤핑으로 제소하기로 했다. 제소 결정은 내렸고, 시점을 논의 중이다. 국내 11개 원단 제조사 중 현재 대왕페이퍼와 삼정펄프, 신창제지, 아이유제지, 프린스페이퍼, 대원제지가 제소에 동참한다. 참여 기업들은 생산가능물량(케파)을 합쳐 전체 산업의 31.6%를 차지하는 오래된 중소기업들이다.

APP는 글로벌 매출 10위의 인도네시아 종합 제지회사다. 한국에서는 30여년에 걸쳐 자랄 나무가 6~7년이면 속성수로 자라는 지리적 이점으로 글로벌 시장에 공격적으로 침투해왔다. 한해 국내에서 소비되는 원단은 약 60만톤으로, APP는 이중 2022년 8만여톤, 지난해 11만여톤을 공급했다.

APP의 강점은 가격 경쟁력이다. 최종 제품인 화장지, 미용지, 키친타올, 핸드타올, 냅킨 등 위생용지는 원단을 단순 제단, 포장해 만들며 원단은 펄프만으로 생산하거나, 종이자원(폐지)을 혼합해 만든다. 보통 펄프를 많이 쓸수록 가격이 비싼데, 100% 펄프 원단은 혼합 원단보다 가격이 보통 10~20% 비싸다. APP는 원단의 대부분을 100% 펄프로 생산하고도 가격이 종이자원을 혼합한 국산품보다 25~50% 저렴하다.

국내 업계는 APP가 현지 업계를 고사시킬 목적으로 의도적인 '덤핑'을 한다고 의심해왔다. APP의 한국법인인 GUTK가 2020년에 영업손실을 63억원, 2021년 101억원, 2022년 92억원 등 매년 적자를 내고 있지만 가격은 올리지 않고, 원단 공급은 꾸준히 늘리기 때문이다. APP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약 17.5%로 꾸준히 상승했다.

국내 업계는 국제통상 전문 컨설팅사와 수개월 협업해 APP가 원단을 한국에 본국보다 싼 가격에 납품한다는 근거를 수집해왔다. 이미 미국과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은 APP에 반덤핑 관세나 상계관세, 세이프가드(수입 제한)를 부과했었다. 한국 정부는 2004~2010년 APP 백상지에 7.7% 반덤핑 관세를 부과했다.

APP 말고도 국내 시장엔 중국 제조사들의 저가 원단이 유입되고 있다. 유입량은 2022년 7700톤에서, 중국 내수시장이 침체하면서 지난해에는 3만2719톤으로 3배 넘게 늘었다. 해외의 저가 원단 유입으로 국내 제조사들의 생산 물량을 26% 가량 줄였다.

중소 업체들은 원단 생산기계를 월평균 10일씩 가동 중단하고 있다. 화장지 원단 산업은 '장치산업'이라 부를 정도로 생산기계의 규모가 커 재가동할 때 수억원이 소요되지만 주문이 대폭 줄어 가동 중지가 불가피하다. 업계 관계자는 "길면 1~2년, 짧게는 6개월이면 문을 닫아야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고 전했다. 원단 제조사에 종이자원을 납품하는 재활용 선별업체도 피해를 본다.

산업자원통상부는 제소를 접수한 후 2개월 내에 조사 여부를 결정하고, 1년 동안 조사에 착수한다. 업계 관계자는 "저가 원단 덕에 화장지 완제품이 저렴해지는 등 장점도 있지만 국내 산업이 고사하면 앞으로는 불안정한 물량 공급에 취약해질 것"이라며 "글로벌 강자에 대응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격이지만 산업의 생존을 위해 제소는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실제로 저가 수입산 원단의 공세에 호주는 킴벌리클락 법인이 원단 제조를 중단했고, 뉴질랜드는 유일했던 제조사가 도산했다. 대만은 중국산 원단 공세에 산업이 고사하고, 코로나19(COVID-19) 기간 공급이 끊기자 화장지 품귀 현상을 겪기도 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