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십이지장 녹이고 구멍 '뻥'…궤양에 뿌리면 피 멎는 '마법의 가루' 발견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4.01.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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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의 내몸읽기]

위·십이지장 등 소화기관의 벽을 녹여 급기야 구멍을 내는 질환이 있다. 바로 '소화성 궤양'이다. 위벽이 녹으면 '위궤양', 십이지장이 녹으면 '십이지장궤양'이라고 부른다. 이런 소화성궤양은 65세 이상에서 잘 생기는데, 출혈까지 발생하면 사망률이 10%에 이른다. 또 장기의 벽이 녹다가 구멍이 뚫리는 '천공'을 막으려면 초기 지혈이 매우 중요하다. 최근 우리나라 의료진이 소화성 궤양의 출혈을 빨리 멎게 하는 '마법의 가루'를 발견해 주목받는다. 소화성 궤양의 원인, 진화한 치료법에 대해 알아본다.

위·십이지장 녹이고 구멍 '뻥'…궤양에 뿌리면 피 멎는 '마법의 가루' 발견


헬리코박터균·진통제·담배, 소화성 궤양 유발
소화성 궤양은 음식물을 소화하는 위산이 음식이 아닌 위·십이지장 등 소화기관의 벽을 녹이는 질환이다. 위벽이나 십이지장벽이 위산·소화액으로 인해 부식되면서 원형이나 타원형의 '궤양'(염증·괴사로 점막·각막·피부의 일부가 없어지거나 함몰된 상태)을 만들어낸다.



이 질환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에 감염되거나, 위벽·십이지장벽을 약하게 만드는 아스피린, 비스테로이드성 항염증제(NSAID)와 같은 약물을 사용할 때 발생할 수 있다.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은 십이지장 궤양 환자의 50~70%, 위궤양 환자의 30~50%에서 발견된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박준철 교수는 "최근 고혈압·당뇨병 환자가 늘면서 심뇌혈관 질환 환자도 함께 증가하고 있다"며 "이에 따라 심뇌혈관 치료제인 아스피린, 항혈전제 등을 먹는 비율도 높아졌는데, 이 약들이 소화성 궤양 유병률을 높인다"고 설명했다. 즉, 혈압·혈당이 관리되지 않는 만성질환 때문에 심뇌혈관이 발생하면 이를 치료하기 위해 약을 먹어야 하는데 이 약이 소화성 궤양 발병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소화성 궤양 가운데 '위궤양'은 위점막이 헐어서 궤양이 점막뿐만 아니라 근육층까지 침범한 병변이다. 위궤양의 주요 원인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감염, 진통제 복용, 흡연, 스트레스 등이다. 그중 가장 흔한 원인은 헬리코박터균 감염이다. 생활 속에서 스트레스를 계속 받아 위 점막의 방어 체계가 약해졌거나, 위산이 너무 많이 나오면 위궤양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위산 분비가 늘지 않아도 궤양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위산 분비보다는 위장 점막의 병적인 변화로 인해 위궤양이 생긴다고 봐야 한다.

위 내벽에 달라붙어 내벽을 망가뜨리는 헬리코박터균의 이미지.위 내벽에 달라붙어 내벽을 망가뜨리는 헬리코박터균의 이미지.
십이지장궤양은 만성적이며, 잘 재발한다. 십이지장궤양의 중요한 원인은 위산의 과다 분비다. 음식물이 식도를 통과해 위장에 도착하면 위에서 잘게 부서진 형태로 소장으로 넘어가 우리 몸에 영양분으로 흡수된다. 그래서 위장·십이지장 점막은 위산, 각종 소화 효소, 담즙, 복용한 약물, 알코올 등 세포를 손상하는 물질에 노출되기 쉽다. 십이지장 점막은 이러한 공격에 대해 여러 단계로 방어하는데, 이러한 공격·방어의 균형이 깨질 때 십이지장 점막이 망가지고, 결국 궤양이 생긴다.

진통제(해열·진통·소염제)는 위궤양·십이지장궤양을 모두 유발할 수 있다. 위·십이지장 점막 세포층의 재생과 기능을 조절하는 프로스타글란딘(prostaglandin)이라는 물질의 생성 과정이 진통제로 인해 차단되면서 점막이 손상당하면서다.


흡연은 위장 점막 세포와 십이지장 점막 세포의 재생, 점막 아래층 조직의 혈액순환에 장애를 유발해 궤양을 일으킨다. 흡연은 위궤양 또는 십이지장궤양으로 인한 천공·출혈 등의 합병증 발생률을 높인다. 심한 스트레스는 궤양을 유발하거나 악화한다. 실제로 과거 일본에서 지진이 발생한 후, 미국 뉴욕에서 9·11 테러 공격 후 이들 소화성 궤양의 발생률이 크게 높아진 것이 확인됐다.

환부에 지혈 파우더 뿌렸더니 지혈 더 잘 돼
소화성 궤양이 악화하면 피가 난다. 지혈하더라도 출혈이 다시 발생하는 경우도 잦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의 치료법보다 효과가 우수한 새 치료법이 최근 국내 연구 결과를 통해 입증됐다. 식물 추출물로 만든 지혈 파우더(가루)가 소화성 궤양 출혈 치료에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세브란스병원 소화기내과 박준철·정다현 교수 연구팀은 소화기관의 벽이 녹는 소화성궤양으로 인한 출혈 치료에 식물 추출물로 만든 지혈 파우더를 사용하면 기존 치료법과 비교해 초기지혈 성공률이 높을 뿐만 아니라 사용도 용이하다고 18일 밝혔다.

기존엔 혈관 클립술, 열 응고술 지혈, 전기응고 소작법 등의 방법으로 소화성 궤양을 치료했다. 이러한 치료법은 빠른 지혈이 필수적인 상황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높은 숙련도가 필요하다는 등의 단점이 있다. 최근 파우더를 환부에 뿌리는 방식의 치료가 시간 단축뿐만 아니라 사용이 용이해 집도의의 숙련도에 의해 치료 결과가 크게 좌우되지 않으며, 식물 추출 성분으로 부작용이 거의 없어 많이 활용된다.

이번 연구에서 지혈 파우더를 뿌린 그룹(105명)의 초기 지혈 성공률은 87.6%로, 혈관 클립술 등 기존의 방식대로 지혈한 그룹(111명)의 성공률(86.5%)보다 높게 나타났다. 그림 중 동그라미 부분이 지혈 파우더를 궤양 출혈 부위에 뿌리는 모습이다. /그림=해당 논문 캡처. 이번 연구에서 지혈 파우더를 뿌린 그룹(105명)의 초기 지혈 성공률은 87.6%로, 혈관 클립술 등 기존의 방식대로 지혈한 그룹(111명)의 성공률(86.5%)보다 높게 나타났다. 그림 중 동그라미 부분이 지혈 파우더를 궤양 출혈 부위에 뿌리는 모습이다. /그림=해당 논문 캡처.
하지만 치료 효과를 명확히 확인한 연구는 없었다. 이에 박준철 교수 연구팀은 2017~2021년 소화성궤양 출혈로 세브란스병원 등 국내 병원 4곳의 응급실에 내원한 환자 216명을 대상으로 지혈 파우더의 효과를 확인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지혈 파우더는 식물 전분에서 추출한 다당류 물질로 상처 부위의 빠른 재생과 지혈을 돕는 흡수성 폴리머(AMP)가 들어있다.

분석 결과, 지혈 파우더를 뿌린 그룹(105명)의 초기 지혈 성공률은 87.6%로, 혈관 클립술 등 기존의 방식대로 지혈한 그룹(111명)의 성공률(86.5%)보다 높았다.

특히, 소화기관의 벽이 녹는 궤양의 진행도가 높은 나머지 동맥 혈관이 드러나 출혈이 시작되는 환자에서 지혈 파우더를 바른 그룹의 초기 지혈 성공률은 100%에 달했다. 반면 기존의 지혈법을 사용할 때의 초기 지혈 성공률은 86.4%에 그쳤다. 지혈술 시행 30일 후 출혈이 다시 발생한 비율은 지혈 파우더와 기존의 치료법 간의 차이가 없었다.

박준철 교수는 "최근 유병률이 가파르게 상승한 '소화성 궤양 출혈'은 천공으로 이어지거나, 이에 따라 사망할 수 있어 빠르게 치료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식물성 지혈 파우더의 치료 효과를 전향적 무작위 배정 방법으로 처음 확인한 이번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초기 지혈을 적극적으로 하면 예후 개선에 도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임상 위장병학과 간장학’(Clinical Gastroenterology and Hepatology) 최신 호에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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