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살빼고 3개월 탈옥 준비…97만명 경찰 피해 907일 도피생활 [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전형주 기자 2024.01.19 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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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뉴시스 /사진=뉴시스


1999년 1월20일 새벽 3시쯤, 무기수 신창원이 탈옥했다. 신창원은 1989년 강도치사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다.

교정 당국은 날이 밝아서야 신창원이 탈옥한 것을 알아차렸다. 아침 점호에 신창원이 나오지 않아 감방을 살펴보니 천장의 통풍구가 뜯겨 있었다는 게 교도소 측의 설명이다. 통풍구는 가로세로 30㎝에 불과했다.



쇠창살 탈옥 준비…석달간 체중 20㎏ 감량
'희대의 탈옥수'로 불린 범죄자 신창원. /사진=뉴스1 '희대의 탈옥수'로 불린 범죄자 신창원. /사진=뉴스1
신창원은 1967년 5월 전북 김제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모친을 여의고 부친한테 가정폭력을 당한 그는 가출과 비행을 반복했다. 만 15세였던 1982년부터 소년원을 들락날락하며 점점 악마로 변해갔다.



신창원은 1989년 3월 친구 3명과 모의해 서울 주택가에서 강도 짓을 벌였다. 공범 1명이 피해자를 흉기로 살해해 강도치사로 재판에 넘겨졌고,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신창원은 서울구치소를 거쳐 흉악범과 문제수 등을 수용하는 청송교도소(경북북부제2교도소)에 수감됐다. 5년간 수감 생활을 무난하게 한 그는 1994년 11월16일 부산교도소로 이감됐고, 이곳에서 탈옥을 기획했다.

신창원은 모범수로 지내며 교도관의 눈을 피해 교도소 곳곳을 살폈다. 경비가 느슨한 3사동 인근 공사장을 탈출로로 삼고 기회를 노렸다. 그는 창고에서 길이 15㎝가량의 쇠톱 2개를 신발 밑창에 홈을 파 수감방으로 숨겨 들여왔다.


이후 매일 오후 6~8시 음악방송이 나오는 틈을 이용해 하루 20분씩 천장 통풍구의 쇠창살(직경 1.8㎝)을 쇠톱으로 자르고, 운동장에서 주워 온 껌으로 틈새를 메워 위장했다.

신창원은 또 몸놀림을 가볍게 하고, 좁은 통풍구를 수월하게 빠져나올 수 있게 몸무게까지 줄였다. 변비가 심하고 식욕이 없다는 핑계로 식사량을 줄여 80㎏이던 체중을 3개월 만에 60~65㎏까지 감량했다.

경찰 97만명 동원에도 '검거 실패'
신창원 탈옥 당시 수배지. /사진=뉴시스 신창원 탈옥 당시 수배지. /사진=뉴시스
1997년 1월20일 새벽 3시. 신창원은 통풍구 쇠창살을 떼어내고 탈출했다. 수감동을 빠져나와 공사장으로 달려갔다. 공사장은 철담장으로 가로막혀 있었지만 그는 땅을 파내 공사장에 진입, 교도소 외벽을 타고 도주했다.

교도소를 나온 신창원은 한 농가에서 양복과 구두, 흉기를 훔쳤다. 이후 오전 6시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으며, 택시 기사를 위협해 차비를 내지 않고 되레 1만원을 빼앗기도 했다.

이후 신창원은 2년 6개월(907일)간 전국 4만여㎞를 돌며 도피 행각을 이어 나갔다. 빈집 털이로 9억8000만원에 달하는 생활비를 마련했고, 훔친 차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매우 민첩했고, 운동신경도 뛰어났다. 코앞에서 마주친 경찰을 따돌리고 도망친 것만 6차례였다. 가스총에 맞고 쇠 파이프에 맞아 팔이 부러졌지만, 절대 잡히지 않았다.

당시 신창원을 잡으려고 동원된 경찰은 97만명에 달했다. 신씨를 놓친 데 대한 책임을 물어 경찰관 57명이 파면, 해임, 전보 등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뿌려진 수배 전단은 463만장이며, 경찰에 접수된 신고도 5823건이었다. 경찰은 1081만여 업소를 탐문했고, 은신 용의처 1004만여개소를 뒤졌다.

신창원의 현상금은 5000만원까지 치솟아 당시 현상금 최고액 기록을 갈아치웠다.

신창원의 도주극은 1999년 7월16일 가스 수리공의 제보로 막을 내렸다. 가스 수리공 A씨는 당시 전남 순천시의 한 아파트로 작업을 갔다가 우연히 신창원을 목격했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50명이 넘는 인력을 투입해 신창원을 체포했다.

검거 당시 심정을 묻는 말에 신창원은 "편해요, 그냥"이라며 덤덤하게 교도소로 향했다

붙잡힌 신창원, 무기징역에 징역 22년 추가

1999년 7월16일 검거 직후 언론 앞에 선 신창원. /사진=MBC1999년 7월16일 검거 직후 언론 앞에 선 신창원. /사진=MBC
대법원은 2000년 2월 신창원에게 징역 22년 6개월을 확정했다. 앞서 선고됐던 무기징역에 형이 추가된 것이다. 신창원은 재판부에 "나 같은 범죄자가 다시 나오지 않도록 사회와 가정에서 문제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신창원은 교도소에서 중졸, 고졸 검정고시에 연이어 합격하며 모범수로 지냈다. 하지만 그는 2011년 8월 경북북부교도소 독방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병원으로 옮겨져 회복한 신창원은 지난해 5월 대전교도소에서 두 번째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3일간 치료받은 신창원은 다시 대전교도소로 복귀해 복역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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