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뉴시스
교정 당국은 날이 밝아서야 신창원이 탈옥한 것을 알아차렸다. 아침 점호에 신창원이 나오지 않아 감방을 살펴보니 천장의 통풍구가 뜯겨 있었다는 게 교도소 측의 설명이다. 통풍구는 가로세로 30㎝에 불과했다.
'희대의 탈옥수'로 불린 범죄자 신창원. /사진=뉴스1
신창원은 서울구치소를 거쳐 흉악범과 문제수 등을 수용하는 청송교도소(경북북부제2교도소)에 수감됐다. 5년간 수감 생활을 무난하게 한 그는 1994년 11월16일 부산교도소로 이감됐고, 이곳에서 탈옥을 기획했다.
신창원은 모범수로 지내며 교도관의 눈을 피해 교도소 곳곳을 살폈다. 경비가 느슨한 3사동 인근 공사장을 탈출로로 삼고 기회를 노렸다. 그는 창고에서 길이 15㎝가량의 쇠톱 2개를 신발 밑창에 홈을 파 수감방으로 숨겨 들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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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매일 오후 6~8시 음악방송이 나오는 틈을 이용해 하루 20분씩 천장 통풍구의 쇠창살(직경 1.8㎝)을 쇠톱으로 자르고, 운동장에서 주워 온 껌으로 틈새를 메워 위장했다.
신창원은 또 몸놀림을 가볍게 하고, 좁은 통풍구를 수월하게 빠져나올 수 있게 몸무게까지 줄였다. 변비가 심하고 식욕이 없다는 핑계로 식사량을 줄여 80㎏이던 체중을 3개월 만에 60~65㎏까지 감량했다.
경찰 97만명 동원에도 '검거 실패'
신창원 탈옥 당시 수배지. /사진=뉴시스
교도소를 나온 신창원은 한 농가에서 양복과 구두, 흉기를 훔쳤다. 이후 오전 6시 택시를 타고 서울로 올라왔으며, 택시 기사를 위협해 차비를 내지 않고 되레 1만원을 빼앗기도 했다.
이후 신창원은 2년 6개월(907일)간 전국 4만여㎞를 돌며 도피 행각을 이어 나갔다. 빈집 털이로 9억8000만원에 달하는 생활비를 마련했고, 훔친 차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그는 매우 민첩했고, 운동신경도 뛰어났다. 코앞에서 마주친 경찰을 따돌리고 도망친 것만 6차례였다. 가스총에 맞고 쇠 파이프에 맞아 팔이 부러졌지만, 절대 잡히지 않았다.
당시 신창원을 잡으려고 동원된 경찰은 97만명에 달했다. 신씨를 놓친 데 대한 책임을 물어 경찰관 57명이 파면, 해임, 전보 등 징계를 당하기도 했다. 뿌려진 수배 전단은 463만장이며, 경찰에 접수된 신고도 5823건이었다. 경찰은 1081만여 업소를 탐문했고, 은신 용의처 1004만여개소를 뒤졌다.
신창원의 현상금은 5000만원까지 치솟아 당시 현상금 최고액 기록을 갈아치웠다.
신창원의 도주극은 1999년 7월16일 가스 수리공의 제보로 막을 내렸다. 가스 수리공 A씨는 당시 전남 순천시의 한 아파트로 작업을 갔다가 우연히 신창원을 목격했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받은 경찰은 50명이 넘는 인력을 투입해 신창원을 체포했다.
검거 당시 심정을 묻는 말에 신창원은 "편해요, 그냥"이라며 덤덤하게 교도소로 향했다
붙잡힌 신창원, 무기징역에 징역 22년 추가
1999년 7월16일 검거 직후 언론 앞에 선 신창원. /사진=MBC
신창원은 교도소에서 중졸, 고졸 검정고시에 연이어 합격하며 모범수로 지냈다. 하지만 그는 2011년 8월 경북북부교도소 독방에서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병원으로 옮겨져 회복한 신창원은 지난해 5월 대전교도소에서 두 번째 극단적 선택을 했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3일간 치료받은 신창원은 다시 대전교도소로 복귀해 복역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