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수사와 처벌, 예방과 지원이 조화롭고 균형 있게 추진돼야

머니투데이 류경희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2024.01.19 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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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경희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사진제공=고용노동부류경희 고용노동부 산업안전보건본부장 /사진제공=고용노동부


하늘 아래 같은 것이 없다. 일란성 쌍둥이도 다르고 같은 프레스로 찍어낸 물건도 조금씩은 다르다. 우리는 다름을 특징으로 보고, 때에 따라 결점으로도 본다. 또한 다름을 차별로 대하기도 하고 배려로 대하기도 한다. 정책 관점에서 미세한 다름까지 꼼꼼하게 챙길 필요가 있다. 다만 다름을 많이 반영할수록 집행의 효율성은 낮아진다. 이에 다름을 고려한 올바른 기준과 효과 높은 정책 수단을 활용이 필요하다.

기업은 어떻게 다른가? 많은 연구에서 가장 큰 변수로 '기업 규모'를 든다. 기업 규모는 임금, 매출 등 다양한 요소와 강하게 연결돼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다름은 필수 고려해야 할 정책 변수이다. 규모를 고려하지 않은 동일한 대우가 매번 옳은 것은 아니며 중소기업을 더 두텁게 지원하는 것이 공정할 수 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도 다르지 않다. 현장에서 통용되는 기업 규모를 기준으로 50인 미만 영세기업에 3년 동안 적용을 유예했고 올해 1월 27일이면 적용이다. 그런데 현장은 각자 아우성이다. 영세기업들은 1인 다역의 대표 구속시 폐업에 내몰린다며 추가 2년 유예를 요구한다. 경영계도 추가 유예기간 동안 잘 준비하고 더 이상 유예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반면 노동계는 충분한 준비 기간이 있었고 예정대로 적용하자는 입장이다.

대기업과 50인 미만 기업이 다른 것은 모두가 안다. 적용유예 결정에 남은 문제는 50인 미만 기업도 동일하게 취급할 만큼 사정이 달라졌냐이다. 직접 나가서 본 현장은 일부 개선은 있으나 크게 바뀌었다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3년간 두 정부에 걸쳐 역대급 예산을 투입하면서 매년 수십만개 중소기업을 지원했다. 하지만 양과 질 모든 면에서 아쉬웠고 한두 번 지원에 영세기업의 환골탈태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중대재해처벌법은 강한 처벌을 규정한 극약 처방이었다. 그간 대기업들은 많게는 수십억에 달하는 컨설팅을 받는 등 안전 투자를 강화했다. 그러나 대기업 중대재해는 오히려 늘거나 법을 적용받지 않은 50인 미만 기업보다 덜 줄었다. 처벌 중심의 처방만으로는 분명 한계가 있다. 위험성평가 안착, 취약분야 지원, 안전의식 확산 등 여러 처방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중대재해가 줄어들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현재 역점 추진 중인 '중대재해 감축 로드맵'의 핵심 내용이다.

50인 미만 기업 확대 적용 시 현장의 폐업과 실직도 우려되지만 정책 당국 입장에서 그간 추진해 온 산재 예방 정책들이 위축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법이 시행된지 2년이 지났는데 사건 처리율은 30% 수준이고 예방 인력에서 수사 인력을 빌려 쓰는 상황이다. 현 상황에서 수사량이 2.5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로 인해 '산업안전보건본부'가 예방 정책은 소홀하고 수사와 처벌만 집중하는 '중대재해수사본부'가 된다면 중대재해의 획기적 감축은 요원해질 것이다.

진정 정부가 할 일은 출근한 모든 근로자들이 무탈하게 가족 품으로 돌아가도록 하는 것이다. 중대재해 감축을 위해 수사와 처벌, 예방과 지원이 조화롭고 균형 있게 추진되어야 한다.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감축 로드맵 2년 차 중대재해 감축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현장 속으로 달려가는 안전보건행정에 전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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