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잭팟' 수상하더라니…안방서 기술 '줄줄', 등잔 밑 놓친 'K배터리'

머니투데이 이강준 기자, 김도현 기자, 박다영 기자 2024.01.17 08:00
글자크기

[MT리포트]中, K배터리 안방서 털어갔다(上)

편집자주 LG·삼성·SK로 이어지는 K-배터리 삼각편대 대형이 연이은 기술유출 사태로 흔들리고 있다. 전 세계 전기차 시장에서 K-배터리와 전쟁 중인 중국이 이번엔 한국에 사무실을 차려 조직적으로 기술을 빼간 정황이 포착됐다. 기술유출 범죄에 대한 강한 처벌은 물론 민관 차원의 보안 강화까지 전반적인 대책이 요구된다.

[단독]"연봉 2배 줄게, 근무지는 한국"…'K배터리' 기술 빼간 中의 수법
중국의 유명 완성차업체가 한국에 자회사 법인을 설립, 삼성SDI와 SK온(당시 SK이노베이션)의 국내 배터리 기술을 빼돌린 혐의로 우리 사법당국의 조사를 받고 있다.



그동안 이뤄진 기술 빼돌리기가 해외 본사에서 고액 연봉을 미끼로 한국 기업 출신 엔지니어들을 스카우트하는 방식이었지만 이번에는 해외까지 인력을 끌어들일 필요도 없이 한국에 거점을 두고 국가핵심기술을 빼가는 방식을 택했다. 산업기술을 빼가는 방식이 점점 진화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16일 산업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대는 최근 A씨 등 삼성SDI·SK온 전·현직 임직원 5명과 한국법인 에스볼트(Svolt·펑차오에너지)코리아, 에스볼트 중국 본사, 모기업 만리장성자동차(장성기차) 등 법인 3곳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송치했다.



中 '잭팟' 수상하더라니…안방서 기술 '줄줄', 등잔 밑 놓친 'K배터리'


에스볼트 중국 본사는 국내 지사인 에스볼트코리아를 설립하고 2020년 6월 서울 성북구 고려대 산학관에 연구소 겸 사무실을 차려 주요 전기차에 들어가는 삼성SDI·SK온 배터리 관련 국가핵심기술을 유출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은 에스볼트의 모기업인 장성기차가 조직적으로 기술 탈취 관련 지시를 내린 것으로 보고 함께 검찰에 넘겼다.

장성기차는 중국 최대 SUV(다목적스포츠차량) 판매 기업이고 에스볼트는 중국 내 전기차 배터리 점유율 4위 업체다. 장성기차는 최근 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 CES에서 미국 자율주행 플랫폼 기업 엔비디아와 협업하기로 했다는 소식이 발표되기도 했다.

에스볼트코리아는 설립 전 후 각종 배터리 업계 주관 협회에 참석해 A씨 등 핵심 기술을 다루는 국내 대기업의 'K-배터리' 연구원에게 접근했다. 국내에 사무소가 있으니 중국 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지 않도록 해주겠다며 에스볼트코리아로 이직하도록 유혹했다. 기존 연봉의 최소 2배 인상, 막대한 보너스 등도 약속했다.


중국 본사 사무실에서 일을 하거나 자주 출장을 요구했던 기존 중국발 기술유출 사건과 달리 에스볼트코리아는 '국내 근무'의 장점을 내세웠다. 이 같은 수법을 수사당국이 포착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에 송치된 A씨는 삼성SDI에서 2009년 임원으로 승진한 인물로, 배터리셀 핵심 기술 연구개발을 담당해 왔다. 기술유출에 가담한 이들 일당은 2018년 회사 재직 도중 자신의 스마트폰 등으로 전기차 도면, 배터리셀 도면 등을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다가 에스볼트코리아 이직 이후 이 자료를 에스볼트 측에 제공했다. 이들의 연구·업무 경력 덕분에 기술유출 과정 자체도 순탄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에스볼트 측은 경찰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A씨 일당도 이직 자체는 우연의 일치였다는 취지로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머니투데이는 이들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답변을 받지 못했다. 삼성SDI·SK온 측도 별다른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해외 기술유출 사건은 폭증하는 추세다. 경찰청이 지난해 2월부터 10월까지 '경제안보 위해범죄 특별단속'을 실시한 결과 해외 기술유출 송치 건수는 전년 동기 대비 75% 증가했다. 경찰은 해외 기술유출 사건을 총 21건 송치했는데 이는 2013년 이후 가장 많았다. 피해기술별로는 디스플레이가 8건으로 가장 많았고, 반도체·기계 3건, 조선·로봇 1건, 기타 5건 순이었다.

[단독]서울 둥지틀고 'K배터리' 털어간 에스볼트…한국법인 벌써 4년째
서울 성북구 고려대 산학관(테크노콤플렉스) 7층에 위한 에스볼트 한국법인 /사진=김도현 기자서울 성북구 고려대 산학관(테크노콤플렉스) 7층에 위한 에스볼트 한국법인 /사진=김도현 기자
삼성SDI·SK온 배터리 기술을 조직적으로 유출한 혐의를 받는 에스볼트(Svolt·펑차오에너지)가 4년 전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운영해 온 것으로 확인됐다.

16일 머니투데이 취재를 종합하면 에스볼트는 2020년 2월 '에스볼트에너지테크놀로지코리아'란 이름의 국내 법인을 설립하고, 경기 성남시 판교 테크노밸리에 둥지를 틀었다. 이듬해 6월에는 현 소재지인 서울 성북구 고려대 산학관(테크노콤플렉스)으로 이전했다.

산업통상자원부 외국인투자기업정보에 에스볼트 한국법인은 컴퓨터, 컴퓨터 주변장치, 소프트웨어 도매업 등을 영위한다고 돼 있다. 법인 등기부등본 사업 정관에는 이를 포함해 배터리·에너지저장장치(ESS) 제품의 연구개발·상용화·수출입·서비스 업무 등이 적혀 있다.

이번에 피해를 본 기업을 비롯한 국내 배터리업계는 에스볼트 한국법인의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관계자는 "협회에 가입한 중국기업은 없지만, 국내에 법인이 있다면 가입이 가능하다"며 "국내에 지사를 둔 CATL·BYD 등과는 전시·협력·교류를 위해 소통하고 있지만, 에스볼트와 접촉한 바는 없다"고 했다.

에스볼트는 지난해 6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유럽 최대 에너지전시회 '더 스마트 E 유럽'에서 머니투데이와 만나 "서울에 R&D센터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소개한 바 있다.("韓이 베꼈다"는 中 배터리, 서울에 믿지 못할 R&D기지 참고)

작년 6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더 스마트 E 유럽' 에스볼트 부스에 설치된 글로벌 사업장 위치도. 서울 R&D센터가 표시돼 있다. 당시 회사 관계자는 "설립된 게 아니라 준비 중인 곳"이라고 밝혔다. /사진=김도현 기자작년 6월 독일 뮌헨에서 열린 '더 스마트 E 유럽' 에스볼트 부스에 설치된 글로벌 사업장 위치도. 서울 R&D센터가 표시돼 있다. 당시 회사 관계자는 "설립된 게 아니라 준비 중인 곳"이라고 밝혔다. /사진=김도현 기자
에스볼트는 부스 벽면에 부착한 글로벌 네트워크 지도에 서울 R&D센터를 표시했다. 한국에서 온 기자임을 밝히고 해당 게시물이 사실인지를 묻자 에스볼트 관계자는 "아직 설립된 것은 아니다"고 언급했다.

에스볼트 한국법인 주소지(고려대 산학관)의 경우 건물 6층 2개 호실과 7층 1개 호실을 사용 중인데 출입문이 잠겨있어 내부 확인은 불가했다. 유리문 너머로 본 6층은 사무공간 7층은 연구공간으로 보였다.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땐 직원 한 명만이 회사를 지키고 있었다.

한국법인 대표를 포함한 임직원 모두가 자리에 없다는 그는 "본사 관계자가 왜 그렇게 설명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에스볼트 한국법인은 2020년 판교에 설립돼 현재까지 운영된 것이 맞다"고 말했다.

기술유출 혐의와 관련한 에스볼트 한국법인 측 입장을 묻기 위해 이 직원을 통해 확보한 법인 대표 번호로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팩스로 연결되는 번호였다. 복수의 경로를 통해 기자 명함과 질문 취지를 전달하고 연락을 기다렸지만, 답신은 없었다.

수차례 한국법인을 다시 찾았을 때도 이 직원만이 사무실을 지키고 있었고 그는 "대표에게 기자의 방문 사실과 연락을 달라는 메시지 그리고 명함을 분명히 전달했다"고만 답할 뿐 다른 질문에 대해선 말을 아꼈다.

에스볼트 한국법인 임직원은 경찰 수사가 본격화된 후 출근을 자제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서울 한복판서 中에 당한 K배터리, 대비책은 없나

에스볼트의 각형 배터리. 왼쪽(파란색)이 리튬인산철(LFP) 제품, 오른쪽(흰색)이 코발각프리 제품 /사진=에스볼트에스볼트의 각형 배터리. 왼쪽(파란색)이 리튬인산철(LFP) 제품, 오른쪽(흰색)이 코발각프리 제품 /사진=에스볼트
에스볼트(Svolt·펑차오에너지)의 배터리 기밀유출 소식을 접한 국내 주요 배터리업계는 서울 한복판에서 중국에 당했다는 점이 충격적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례 없던 새로운 수법이 동원된 만큼 경각심 고취뿐 아니라 추가 대비책을 마련해야 한단 지적도 나왔다.

1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2020년부터 한국법인을 운영해 온 에스볼트 외에도 현재 CATL·BYD 등이 국내에 지사를 설치했다. 다른 중국 배터리업체들도 한국 진출을 타진 중인 것으로 파악된다. 자국 배터리 시장이 포화 상태에 다다른 상황에서 미국·유럽 등의 견제가 심화하자 한국을 포함한 제3국 시장 진출을 노리는 것이다. 배터리 기술력이 높은 한국에서의 사업 성과는 다른 시장을 공략하는 데 이점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국내 배터리사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분야를 제외하면 중국과 공략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한국시장에서 중국 배터리 기업의 활동에 주목하지 않았다. 현대차그룹의 보급형 전기차 혹은 단가가 맞지 않아 국내 배터리사가 납품을 포기한 중견 완성차 시장 위주로 접근했기 때문이다. 전기버스·전동킥보드 등도 대부분 중국산 배터리가 들어간다.

터질 게 터졌단 반응도 감지된다. 중국은 내연차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과 기술격차를 좁히는 데 실패한 뒤 국가 주도로 전동화에 가장 먼저 나선 곳이다. 전기차뿐 아니라 핵심인 배터리 산업도 국가 주도 아래 육성됐다. 이 과정에서 국내 주요 배터리사 전문가를 영입하면서 노하우를 축적했다. 이들 인력을 통해 핵심기술 일부가 유출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CATL이 CTP(Cell to Pack), CTC(Cell to Chassis) 배터리를 내놓고, BYD가 블레이드 배터리를 잇달아 선보인 배경에는 내수를 넘어 해외공략의 필요성이 높아졌기 때문일 것"이라며 "자국 시장에서야 국내 배터리 기술을 답습해서 제품을 출시해도 무방했지만, 해외에서는 소송전에 휘말리고 막대한 배상금을 물어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배터리 기술유출은 모방을 넘어 해당 기술을 보유하기까지 소요된 시간·비용·노력을 빼앗기 때문에 중대한 범죄다"라면서 "에스볼트가 지난해 삼성SDI 핵심 고객사인 BMW그룹·스텔란티스 등과 대규모 공급 계약을 체결했는데, CATL로부터 영업기밀 침해로 제소돼 합의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상태서 단기간에 이런 성과를 낸 배경에 대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동남아·중동 등 중국과의 배터리 전선이 점차 넓어지는 양상"이라면서 "이들이 납품하는 배터리가 국내 기술을 침해한 것은 아닌지에 보다 면밀히 살펴야 하고 선제적으로 핵심 기술 특허를 확보해 중국의 추격 의지를 꺾는 것이 국내 배터리업계의 새로운 숙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내다봤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