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1월 17일 효고현 남부 지진(고베 대지진) 당시 사진 /사진=일본 소방 방재 박물관(消防防災博物館) 홈페이지 캡처
효고현 남부 지진, 한신·아와지 대지진 또는 고베 대지진(이하 고베 대지진)으로 불리는 이 지진은 일본 지진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지진으로, 6300여명이 사망하고 1400억달러(한화 약 186조원)의 피해를 냈다.
유독 극심한 피해…이유는?
1995년 1월 17일 효고현 남부 지진(고베 대지진) 당시 사진 /사진=일본 소방 방재 박물관(消防防災博物館) 홈페이지 캡처
고베 대지진은 일본 내에서는 최초로 대도시 직하에서 일어난 대지진으로, 일본 기상청 진도 계급에서 1949년 진도7이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최대 진도7이 기록됐다.
지진이 빈번한 일본임에도 고베 대지진은 6300여명이 목숨을 잃고 1400억달러의 피해액이 발생하는 등 유례를 찾기 힘들 만큼 큰 피해를 입혔다.
1995년 1월 17일 효고현 남부 지진(고베 대지진) 당시 사진. /사진=일본 소방 방재 박물관(消防防災博物館) 홈페이지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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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고베 대지진으로 한신고속도로 고베선 고가가 옆으로 쓰러져 충격을 안겼다. 해당 구조물은 내진 기준이 강화되기 전인 1969년 지어졌는데, 당시의 내진 설계 기준은 고베 대지진을 견디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처럼 유독 큰 피해가 발생한 원인으로는△고베에 지난 400년간 지진이 없었던 점 △직하형 지진 특성상 진앙지가 도심과 비교적 가까웠다는 점 △활성 단층이던 아와지 섬의 단층과 고베의 단층이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당시에는 밝혀지지 않았던 점 등이 꼽힌다.
"재일 한국인이 방화" 억지 주장도
1995년 1월 17일 효고현 남부 지진(고베 대지진) 당시 사진 /사진=일본 소방 방재 박물관(消防防災博物館) 홈페이지 캡처
막대한 피해에 육상자위대 인원과 장비가 대거 투입돼 구조 및 복구를 지원하고 전투 식량도 이재민들에게 제공했다.
세계 구호 단체들도 지원을 아끼지 않았으며, 한국 정부와 민간 단체들은 공식적으로 막대한 지원을 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일본 총리 무라야마 도미이치에게 위로전을 보냈다.
다만 일각에서 지진 이후 발생한 화재가 재일 한국인의 방화일 수도 있다는 주장이 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논란이 악화하자 이와 같은 주장을 한 나카무라 에이치 일본 참의원 의원은 결국 민단과 한국특파원 회견에 나가 사죄를 표했다.
고베 대지진 그 후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 /사진=트위터
고베항 지진 메모리얼 파크는 효고현 고베시 주오구에 있는 공원으로, 당시 지진으로 파손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복구 과정에서 대지진의 교훈, 항구의 중요성, 일본 국내외의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부흥에 노력한 모습을 후세에 전한다는 목적으로 조성됐다.
제도적으로도 변화가 생겼다. 본진의 진도 관측 및 발표 과정에서 여러 문제점이 발생한 것과 관련해 일본 정부는 다음 해인 1996년 진도 기준을 개정하고 관측점을 대폭 늘렸다.
일본 내 내진 설계도 더욱 꼼꼼해졌다. 그 결과 2016년 비슷한 규모의 구마모토 대지진이 규슈 지역을 강타했을 때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