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표하러 입국했어요" 줄었네…'D-5' 대만 대선 표심 어디로?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4.01.08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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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 투표귀국 재외국민 5000→4000명 감소…
기성정치 혐오·현실 비판 젊은층 제3후보 지지,
중국 군사·경제적 압박 속 선거 결과 세계 관심

[타이베이=AP/뉴시스] 라이칭더(가운데) 대만 부총통 겸 민진당 총통 후보가 3일(현지시각) 대만 타이베이에서 선거 유세 중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13일 치르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친미 성향의 민진당 라이 후보와 친중 성향의 제1야당(국민당) 허우유이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2024.01.03.[타이베이=AP/뉴시스] 라이칭더(가운데) 대만 부총통 겸 민진당 총통 후보가 3일(현지시각) 대만 타이베이에서 선거 유세 중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13일 치르는 대만 총통 선거를 앞두고 친미 성향의 민진당 라이 후보와 친중 성향의 제1야당(국민당) 허우유이 후보가 치열한 접전을 벌이고 있다. 2024.01.03.


'미·중 대리전'이라는 평가도 받는 대만 총통선거에 참여하기 위해 해외에서 귀국 의사를 밝힌 대만 국민이 지난 2020년 대선 당시에 비해 적은 것으로 집계됐다. 친미 대 친중 구도 속에서 계속되는 '전쟁 공포 팔이'에 지친 2030세대 지지가 제3후보로 쏠리며 뜻밖의 3파전 구도도 벌어진다. 대만 대선에 정치혐오가 막판 변수로 급부상하는 분위기다.

8일 홍콩 SCMP(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 등은 대만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인용해 이번 주말(13일) 대선에서 유권자 등록을 마친 재외대만인이 약 4000여명으로 집계됐다고 보도했다.



대부분의 다른 민주주의 국가와 달리 대만은 부재자 투표를 허용하지 않고 있다.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선거날에 맞춰 귀국을 해야만 한다. 실제 4년마다 열리는 대선에 참여하기 위해 수백만원을 들여 대만으로 돌아가는 재외국민들의 사례는 매 대선마다 비중 있게 보도되며 중국의 압박에 대항하는 대만 특유 '저항 민주주의'의 한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미국 UCLA(캘리포니아대학교 LA)에서 음악을 전공하는 29세 대만인 하이디다이는 SCMP에 "친미반중 성향인 라이칭더 후보에게 투표하기 위해 지난 12월 대만으로 돌아왔다"며 "선거기간 동안 항공권이 매진될까봐 불안해 지난해 가을 박사학위 과정 첫 학기 입학차 대만을 떠나기 전에 이미 돌아오는 항공권을 예매했다"고 말했다.



상징적 의미는 있겠으나 기본적으로 비효율적이다. 재외국민 참정권 제한 문제도 지속적으로 제기된다. 이에 따라 부재자 투표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최근 선거때마다 계속해서 제기돼 왔으나 허용하는 쪽으로 의견일치를 이루지 못하고 있다. 진영에 따라 부재자 투표 허용의 유불리가 상당히 크게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만 재외동포사무위원회에 따르면 해외 거주 대만인구는 약 200만명이다. 그리고 그 중 절반 이상이 미국에 산다. 부재자 투표가 허용될 경우, 잠재적으로 친미 성향으로 분류되는 100만여명 중 성인유권자들의 표가 더해질 수 있다. 친중 진영에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다.

(지롱 로이터=뉴스1) 정지윤 기자 = 국민당의 허우유이 대만 총통 후보가 4일(현지시간) 대만 지롱에서 선거운동 중 연설하고 있다. 2024.01.04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지롱 로이터=뉴스1) 정지윤 기자 = 국민당의 허우유이 대만 총통 후보가 4일(현지시간) 대만 지롱에서 선거운동 중 연설하고 있다. 2024.01.04 ⓒ 로이터=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대만 현지에선 특히 투표를 하러 돌아오는 국민 수 감소에 비상한 관심을 쏟는다. 2020년엔 약 5000여명이 유권자로 등록했었다. 2020년 대선 구도라면 이 정도 재외국민 투표는 큰 의미를 지니지는 않는다. 차이잉원은 당시 817만186표(57.13%)를 득표해 한궈위 가오슝시장을 약 260만여표차로 여유 있게 제쳤다. 그런데 이번 대선은 분위기가 많이 다르다.

지난 2일 대만연합보가 발표한 지지율 조사에서 친미 라이칭더(민진당)는 32%, 친중 허우유이(국민당)는 27% 지지율을 기록했다. 조사대상에 따라 오차범위 내 접전인 경우도 적잖다. 특히 3위인 민중당 커윈저 후보의 지지율 21%가 대선을 앞두고 양쪽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도 있다. 양강이 박빙인 가운데 넓게 보면 3파전이 벌어진다. 선거에 대한 관심이 이전에 비해 더 고조돼야 정상이지만 흐름은 정반대라는 거다.


상대적 중도 성향인 커윈저 후보의 선전에도 시선이 집중된다. 20대 지지율을 기반으로 3파전을 유지하고 있다. HKFP(홍콩프리프레스)는 지난 7일 "커윈저는 지지율 면에선 뒤지고 있으나 소셜미디어에서는 확실한 선두주자"라며 "60대임에도 소셜미디어를 능숙하게 다루고 유머러스한 말투를 통해 낮은 임금과 높은 집세를 비판하며 젊은이들의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분석했다.

커윈저 돌풍은 대만 청년들의 기성정치 혐오와 맞닿아 있다. 중국은 갈수록 압박을 강화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놓고 나라가 둘로 쪼개졌다. 우크라이나와 팔레스타인에서 실제 전쟁이 벌어지면서 전쟁 공포는 날로 고조된다. 양강은 정치적 선명성을 내보이기 위해 서로 전쟁 위협을 지렛대로 삼는다. '전쟁을 막기 위해 미국이 필요하다'거나 '중국 편에 서야 전쟁을 막을 수 있다'는 식이다.

커윈저 대만 민중당 총통 후보./사진=바이두 캡쳐커윈저 대만 민중당 총통 후보./사진=바이두 캡쳐
생명을 담보로 한 정쟁에 대만 내에선 정치에 대한 불만은 물론 혐오감까지 고조되고 있다. 여기서 상대적으로 푸근한 이미지의 커윈저가 대안으로 부상하는 틈이 생겼다. 대만 청년들은 커윈저를 '아저씨'나 '삼촌'을 부르는 애칭인 '아베이'(阿伯)라고 부른다. 커윈저가 비록 총통이 되지 못하더라도 그에 대한 지지는 함께 치러지는 대만 총선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대만 내 팽배한 정치혐오가 그간 지속적으로 진행돼 온 중국의 공작 결과물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대선에 미칠 영향에 더 관심이 커진다. 중국은 군사·경제적 압박은 물론 소셜미디어를 통해 대만 여론에 공공연하게 친중정서를 주입시키고 있다. 대만 대선을 일주일여 남긴 시점에 대만을 군사적으로 지원하는 미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를 발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미국의 수많은 디아스포라 단체들은 선거 때마다 유권자인 대만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종용하고 있다. 간접적인 재정지원도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본토에 거주하는 대만인들이 귀국해 허우유이 후보에게 표를 던질 것을 보다 직접적으로 압박하고 있다. 그럼에도 귀국 대만인 숫자가 이전보다 적다. 정치혐오와 정치적 무력감의 결과다.

매 선거때마다 귀국했다는 한 미국 거주 대만인은 홍콩언론에 "중국은 대만의 자유와 민주주의, 경제적 번영을 보장한다고 선전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인들은 스스로 통치할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1당독재가 필요하다'는 중국의 논리와 완전히 어긋난다"며 "그럼에도 민진당이 부패 문제로 공산주의에 맞설 수 있는 근간을 잃었다는 점 때문에 아직 지지후보를 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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