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서 보니, 북한군 전차부대가…소름 끼쳤지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 2024.01.0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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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용사, 김성춘 공군 대령(98)이 기억하는 전쟁 기록
"당일 강원도 춘천 정찰 나갔더니 고사포 올라와, 어두울 땐 석유등 켜고 활주로에 내려"
인민군 한강 건넜는지 정찰하다 동료 잃기도…"자유는 공짜가 아냐, 지금 같은 애국심으로는 어렵습니다"

"하늘에서 보니, 북한군 전차부대가…소름 끼쳤지요"


1950년 6월 25일, 북한군 침공으로 전쟁이 발발했던 날. 당시 24살이었던 김성춘 선생님육군항공사령부 비행부대 소속이었다. 여의도 비행장에서 항공기 정비사를 하고 있었다.

오후 3시30분. 적 야크기(YAK) 4대가 날아왔다. 격납고에 폭격을 하기 시작했다. 대피하고 있던 항공기와 군인들에겐 기총 사격을 퍼부었다.



"샛강 변에 심어 있는 보리밭이 있었어요. 거기로 몸을 피했지요. 겁나더라고요. 30여분 정도 지났을까요. 밖이 조용해지기에 나와서 비행기로 갔지요. 다행히 피해는 없었습니다."

이제는 98세가 된 6·25 참전용사 김 선생님은, 마치 어제 일인 것처럼 또박또박 설명해갔다. 생생한 전쟁을 겪었던, 살아 있는 역사의 이야기였다. 3일 오전부터 진행된 라미 현 작가의 '참전용사 마실가다' 프로젝트. 우리(나, 라미 현 작가, 유튜버 캡틴따거 문신호씨)는 점심을 먹으며,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얘길 듣고,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6·25 당일 춘천 정찰, 다가가니 북한군이 고사포를 쐈다
"하늘에서 보니, 북한군 전차부대가…소름 끼쳤지요"
오후 4시30분엔 출동 명령이 떨어졌다. 3중대 오춘목 소위가 조종하는 L-5 비행기에, 김 선생님도 탑승했다. 북한군이 어느 정도까지 밀고 오는지 정찰 비행을 하라는 거였다.

"춘천을 찍고 정찰하는데, 벌써 가까이 가면 고사포를 쏴요. 그래서 '아 저기까지 왔구나' 그걸 알게 됐지요."

돌아올 무렵엔 어둑어둑했다. 북한강을 따라 남쪽으로 비행했다. 한강 본류를 따라 서쪽으로 다니며 서울 시가를 정찰했다. 저녁 8시 무렵엔 여의도 비행장에 돌아왔다. 장병들이 무사히 돌아온 걸 환영해줬단다.


다음 날인 오후 2시쯤, 신유협 대위와 L-5에 또 함께 탑승했다. 정찰 비행을 하러 북쪽으로 날아갔다. 삼각산쪽 일대에 구름이 끼어 있었는데, 갑자기 고사포탄이 구름을 뚫고 날아왔다.

"하늘에서 보니, 북한군 전차부대가…소름 끼쳤지요"
6월 27일엔 북한군이 서울 근교까지 밀고 내려왔다. 오후 3시30분쯤 김두만 소위가 조종하는 T-6 비행기에 기관단총을 들고, 김 선생님도 탑승했다. 비행기엔 15킬로짜리 폭탄 10개를 실었다. 적 보병들이 이미 삼각산에 와 있었다. 고사포탄이 또 미친듯이 쫓아왔다. 김 소위는 좌우로 선회 비행을 하고, 급강하를 했다.

지상을 바라보니 전차부대가 한없이 몰려오고 있었다. 폭탄을 투하하고 급상승을 하고, 고도를 높였다가 다시 급강하하는 걸 반복했다. 김 선생님은 그때를 이리 회상했다.

"소름끼쳤지요. 떨어지면 죽는 거잖아요. 밑에서 막 쐈는데 안 맞은 게 다행이었지요. 나중에 보니 날개 하나는 뚫고 나갔다고 하더라고요."

한강 정찰 중…탄환에 맞아, 유능한 동료가 숨졌다
"하늘에서 보니, 북한군 전차부대가…소름 끼쳤지요"
대전 비행장으로 갔을 때였다. L-5 비행기를 타고 정찰 업무를 했다. 당시 부대장은 박범집 장군이었다.

"인민군이 한강을 건넜느냐, 못 건넜느냐 여부를 확인하려고 했지요. 너무 높은데서 정찰을 했기에 못한 거예요."

1000피트에서 500피트로 낮추란 명령이 떨어졌다. 고도를 낮춰 다시 정찰에 나섰다. 다른 조종사가 L-5 비행기 2대로 다시 정찰했다.

그중, 한 대가 탄환에 맞았다. 착륙하던 비행기가 삐딱하게 내렸다. 김 선생님이 다가가 확인하니, 탄환 2발이 비행기 동체 밑창을 뚫고 나갔다. 날개는 너덜거렸다.

항공기 뒤에 탔던 정비사 조명석 소위가, 다리에 탄환을 맞은 상태였다.

"유능한 정비사였어요. 병원으로 후송해 다리를 절단했지요. 그때 결국돌아가셨습니다."

전세가 역전돼 북으로 전진하던 때도, 김 선생님은 기억했다. 경주에서 시작해 울진, 삼척, 강릉, 양양, 고성. 이어서 원산까지 갔다고 했다. 말로만 듣던 원산 폭격을, 실제로 경험했다던 참전용사의 증언이었다. 원산에선 시가전이 진행됐고, 불빛이 번쩍번쩍했단다.

1951년 1월 2일. 1·4 후퇴 이틀 전엔 결혼을 했다. 농사 짓는 부모님께 "그냥 다 보시고, 좋은 사람 결정해 주십시오"라고 했단다. 사진도 없었기에, 얼굴도 보지 못했단다. 그리고 부모님께서 점지어준 이와 결혼을 했다.

목숨 걸고 참전했던 마음…"적화통일 막겠다고, 이겨야 한다고"
"하늘에서 보니, 북한군 전차부대가…소름 끼쳤지요"
"자유는 공짜가 아니다. 얘들아, 내가 대한민국을 지켰듯 너희도 지켜줬으면 좋겠다."

노장이 사진을 찍으며 후세들에게 당부하던 말이었다. 그의 전쟁 이야기는 영화도, 드라마도 아녔다. 실제 벌어진 일이었고, 온몸으로 겪어낸 일이었다. 그 과정에서 많은 동료들이 숨지는 걸 봤다.

유튜버 캡틴따거 문신호씨가 김 선생님에게 이리 물었다.

"제가 군인을 할 적에, 진짜 전쟁이 나면 목숨 걸고 전장에 나갈 수 있을까, 그런 고민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잘 모르겠더라고요. 선생님은 목숨을 딱 걸고 나가실 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궁금해요."
"하늘에서 보니, 북한군 전차부대가…소름 끼쳤지요"
김 선생님이 이리 답했다.

"공산 침략을 받은 거잖아요. 우리가 꼭 이겨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적화통일이 될텐데 이건 꼭 막아서 자유와 평화를 지켜야겠다, 그런 마음뿐이었지요."

그러니 끝으로 김 선생님이 당부하던 건 '애국심'이었다. "우리 국민들이 애국심이 소홀한 부분이 있는데 강화해야 해요. 지금 상태로는 조금 어렵다고 생각이 됩니다. 나라의 소중함을 알아야 하고, 부강해야 합니다. 과학 기술을 더 발전시켜서, 핵무기를 무용지물로 만들어야 하고요. 이게 중요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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