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생로랑이 또 내 맘 훔쳐갔다, '마에스트라'

머니투데이 조이음(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4.01.03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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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정남'의 진화! '집착남' 가면 뒤 숨긴 애절한 순애보

사진=tvN사진=tvN


배우가 출연한 작품이 쌓일수록 그의 팬들에 의해, 대중에 의해 그의 연기 인생을 나타낼 수 있는 대표작, 대표 캐릭터가 꼽힌다. 이는 대중에 많은 사랑을 받은 작품이 되기도, 진한 연기로 혹은 강렬한 캐릭터로 분량에 관계없이 배우를 각인시킨 작품이 되곤 한다. 문뜩, 이 배우의 대표작, 대표 캐릭터를 묻는다면 많은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할 거란 생각과 함께 ‘순정남’을 떠올리지 않을까 싶어졌다. 불도저 같은 밀어붙이기의 힘으로도 순애보를 보여줄 수 있음을 증명 중인 배우 이무생 이야기다.

이무생은 현재 방송 중인 tvN 금토드라마 ‘마에스트라’(극본 최이윤 홍정희, 연출 김정권)에서 투자사 UC 파이낸셜의 회장 유정재로 분해 시청자와 만나고 있다. ‘마에스트라’는 세계적인 마에스트라 차세음(이영애)이 어느 날 갑자기 해체 직전의 한국 오케스트라의 지휘를 맡으면서 그를 둘러싸고 있는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나서는 아티스틱 스릴러드라마. 이무생이 연기하는 유정재는 젊은 시절 우연히 만난 차세음에게 끌려 연인이 됐으나 매몰찬 이별을 경험한 후 차세음에 집착하는 인물이다.



캐릭터 설명만 본다면 ‘순정남’이란 타이틀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극 초반에 등장한 그의 모습은 더더욱 그렇다. 유정재와 차세음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 미국에서 시작됐다. 유정재는 물에 뛰어들어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던 차세음을 구했고, 제가 살려낸 사람에게 “나랑 좀 놀자. 어차피 죽을 거면 실컷 놀고 나서 죽어”라며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했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을 함께한 차세음이 잊고 있었던 성공을 찾아 떠나려 할 때, “힘들다면서 왜 음악을 다시 하려고 해? 그냥 편하게 살아”라며 붙잡아도 보고 “내가 너 살렸으니까 네 목숨도 내 거야”라며 억지도 부렸지만 놓아줄 수밖에 없었다. 유수처럼 흐른 시간은 차세음을 세계적인 지휘자로 성장시켰고, 유정재는 그런 차세음이 지휘봉을 잡은 오케스트라를 사들일 만큼의 능력과 재력을 갖추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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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회에 반가워하기는커녕 동요조차 하지 않는 차세음에 발끈한 유정재는 화재 경보벨을 눌러 그의 시선을 끄는데 성공한다. 이후에도 유정재는 지루하다며 준비된 공연을 취소시키는 등 여러 핑계를 들며 차세음의 계획들에 훼방을 놓는다. 그가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단 하나, 차세음이 이혼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처럼 무례한 요구를 하는 유정재의 모습은 자신을 버린 옛 연인에 대한 앙갚음일 거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유정재는 어떤 상황에서도 차세음을 먼저 생각하고, 지키려 한다. 결국 유정재의 마음은 20년째 품어온 순애였음이 드러나며 그를 향한 시선은 달라진다.

한량처럼 가벼운 말투와 진지함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는 행동, 차세음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유정재의 모습들은 이무생의 남다른 캐릭터 해석을 통해 입체적으로 완성되고 있다. 무엇보다 유정재의 속내가 드러날수록 미묘하게 달라지는 그의 연기가 보는 이들을 더욱 이야기에 몰입시킨다.

이전 작품에서도 이무생은 한 여자만 바라보는 로맨티스트 역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에게 ‘이무생로랑’이라는 수식어를 안겨준 드라마 ‘부부의 세계’에서는 주인공 지선우(김희애)를 비참한 현실로부터 지켜주는 정신과 의사 김윤기로, 드라마 ‘서른 아홉’에서는 시한부 선고를 받은 정찬영(전미도)에게 올인하는 엔터테인먼트 사장 김진석으로, 드라마 ‘클리닝업’에서는 이용미(염정아)를 숨겨주고 구해주는 내부거래자 이영신으로 등장해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쳤다. 매번 ‘순정남’ 타이틀을 얻었지만, 매 작품마다 변주를 더해 다른 얼굴 다른 캐릭터로 시청자에 각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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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이무생의 필모그래피에 순정남, 다정남 캐릭터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지난해 공개돼 시청자의 뇌리에 강렬하게 남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에도 이무생이 등장했다. 놀랍게도 그가 연기한 인물은 자신을 치료해준 의사를 살해한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범 강영천. 드라마 전개상 짧은 등장임에도 불구하고 완벽한 캐릭터 소화력으로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이 외에도 드라마 ‘봄밤’에서는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혼이혼에 협조하지 않으려 하는 분노유발자 남시훈 역을, ‘60일, 지정생존자’에선 탈북민 출신 청와대 대변인 김남욱 역을 맡아 시청자에 눈도장을 찍었다.

많은 배우들이 이미지 고착에 대한 고민으로 다양한 작품을 찾을 때 ‘순정남’이란 하나의 타이틀 안에서도 여러 색으로 전혀 다른 캐릭터의 맛을 보여준 배우 이무생. 물론 이는 배우의 기본인 연기력이 바탕이 되기 때문에 가능했을 테다. 그런 면에서 배우 이무생은 변주에 능한 천생 배우임이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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