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교육부는 재정과 규제로 대학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이 있다. 생존 위기인 대학들은 당장 살아야 하므로 정부 돈을 좇아 움직인다. 대학이 겉으로 호응한다고 해서 좋은 정책이라는 보장은 없다. 대학 정책이 성공하고 사업이 성과를 내려면 정책담당자들이 대학을 알고 기획해야 한다. 학생문화, 교수집단의 행동양식, 인문·사회계와 이공계의 사고방식 차이, 대학 본부와 학과를 움직이게 하는 유인체계, 지방대학 교수가 갖는 애로, 사학법인의 속내를 꿰뚫어보고 정책을 만들어야 성공한다. 그렇지 않으면 세금은 세금대로 쓰고 정책은 겉도는 결과를 낳는다.
교육부 공무원의 '현장지'(現場智)를 강화해야 한다. 한때 대학에 다녔고 교수들도 가끔 만나니까 대학을 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녀를 대학에 보내봤으니 대입 전문가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세종청사라는 성(城)과 관료조직에 갇혀 문서작업에 몰두해서는 대학의 생리를 알기 어렵다. 게다가 공직사회는 공무원시험에 붙은 사람들끼리 인사철마다 자리를 바꿔가면서 정책을 독점하는 폐쇄적 구조다. 공무원 순혈주의에서 창의와 혁신의 DNA가 담긴 정책이 나올 수 있을까. '고인물'은 쉽게 관료화하고 과감한 도전보다 '안전한 정책'을 좇기 마련이다. 정책만 타격을 입는 게 아니다. 교육부와 대학의 관계가 정실주의와 편법으로 망가진다. 평소 안면이나 과거 인연을 내세운 몇몇 사람끼리 비공식 채널이 가동되고 내부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이 득세할 수 있다.
교육부도 대학도 위기다. 억울하겠지만 교육부는 규제와 통제를 일삼는 부처로 각인됐다. 대학은 폐쇄적이고 이기적인 상아탑이라는 오명을 안고 있다. '정책 주체'로서 교육부와 '혁신집단'으로서 대학이 협력해서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 그러려면 단절보다 교류가 필요하다. 우수하고 패기 넘치는 교육관료를 뽑아 대학에 보내자. 지식이 고갈된 교수가 연구년으로 재충전하듯이 정책담당자들도 대학에 가서 정책을 발굴하고 바깥 시각으로 정책을 평가해보는 '정책연구년'을 도입해 보자는 것이다. 대학교수들이 교육부에 가서 고등교육정책 수립에 참여할 수 있게 하자. 교육부는 '고인물'에서 벗어나 혁신 아이디어가 모이는 '정책발전소'로 바뀔 것이다.
교육관료의 국립대 파견이 금지됐다. 그들이 대학을 통제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자업자득이다. 퇴직관료를 데려가는 사립대학이 있다. 로비스트가 필요해서 그럴 것이다. 하지만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그랴. 사람에 의한 대학 통제, 끼리끼리의 음성적 소통, 보여주기식 의견수렴, 몇 사람의 경험에 의존하는 정책시스템을 버리고 투명하고 제도화한 교육부-대학 인적교류 체계를 확대해 대학 정책의 현장성과 타당성을 높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육부와 대학의 관계도 규제와 통제가 작동하는 '수직적 관계'에서 벗어나 함께 혁신을 도모하는 '수평적 파트너'가 될 수 있다. 만에 하나라도 인적교류가 부정한 로비와 결탁창구로 쓰이거나 대학통제와 인사적체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활용되면 그때는 정말 교육부가 문을 닫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