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중국 경제를 모르는 한국 [특파원칼럼]

머니투데이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2023.12.19 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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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지난 2021년 9월 25일 (현지시간) 중국 선전시 바오안 국제공항에서 캐나다 가택 연금서 풀려나 귀국하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지지자들이 환영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선전 AFP=뉴스1) 우동명 기자 = 지난 2021년 9월 25일 (현지시간) 중국 선전시 바오안 국제공항에서 캐나다 가택 연금서 풀려나 귀국하는 멍완저우 화웨이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의 지지자들이 환영을 하고 있다. (C) AFP=뉴스1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처음 "버티자"고 했던 건, 미국의 제재가 시작되고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의 딸 멍완저우(모친 성씨 승계)가 캐나다에 구금돼 있던 2020년 7월이다. 공산당 정치국 회의에서 "(미국과 관계는) 지구전 관점에서 인식하라"고 했다. 당시엔 열세를 인정하는 말로 들렸다. 화웨이가 치명상을 입고 중국 첨단기술 기반 자체가 붕괴될 거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그런데 3년여가 지난 2023년 중국은 7nm(나노미터) 칩을 끼운 국산 스마트폰을 내놨다. 연이어 공개한 노트북엔 한 단계 수준 높은 5nm급 프로세서가 달려있었다. 버티는 가운데 제재를 뚫고 탈출구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는 뜻이다.



버티자는 말의 의미도 이제 좀 더 복잡해졌다. 경제 상황이 부진한 국면을 맞고 있지만 고통을 분담하며 기다리자는 의미가 더해졌다. 버티면 어떻게 될까. 시진핑이 그리고 있는 버티기의 결말은 지난주 경제공작회의에서 일부 드러났다. 중국의 내년 경제전략이 집대성됐는데, 최우선 과제가 "과학기술을 통한 경제현대화"였다. 중국이 과학기술을 '경제 1번'으로 삼은 건 개혁·개방 이후 처음이다. 그러면서 AI(인공지능)·양자기술·바이오·우주과학 등을 각론으로 꼽았다. 당장 돈을 벌 수 있는 분야가 아니다. 경제가 하방하는 가운데 버티며 투자해 미국과 경쟁하고, 미래기술과 산업표준 등을 선점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하게 밝힌 셈이다.

'부동산'은 완전히 제외됐다. 중국은 올해까진 '주택은 투기용이 아닌 거주용'이라는 상투적 주석을 달고서라도 부동산을 주요 동력에 포함시켰었다. 내년 전략에서는 완전히 뺐다. 반도체는 지속 육성한다. 미국의 견제를 의식해 회의록에선 빠졌지만 어려운 경제 상황 속에서 피같은 자금을 계속 쏟아붓는다. 중국은 올해 무려 3000억위안(약 54.8조원) 규모 3차 반도체펀드를 조성했다.



AI·양자·바이오·우주과학 등 신 4대 기술에도 반도체 못잖은 천문학적 보조금이 투입될 전망이다. 반도체 제재를 톡톡히 당했으니 첨단 신기술에 대한 정부의 지원 규모나 기술개발 현황은 더 꽁꽁 숨길 가능성이 높다. 한 재중 경제관료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더 벌어질 과학기술 격차를 생각하면 절망감이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중국의 반도체 기술이 얼마나 빨리 발전할지, 양자기술 면에서 궁극적으로 미국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분명한 건 중국 경제가 서방의 기대 섞인 우려처럼 당장 무너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중국이란 초대형 경제는 올해도 5% 턱걸이 성장에 성공할 분위기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투자할 여력을 확보했다.

중국의 버티기와 과학기술 집중투자는 한국에도 시사점이 많다. 한 국내 공공기관 중국 주재원은 "과학기술 쪽에서 한국 기관을 만나고 싶다는 중국의 요청이 늘어나길래 처음엔 코로나19 기저효과로 여겼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중국 내 한국 기업들이 줄줄이 망해나가 한국 기업 사정을 알 길이 없으니 정보수집 차원에서 관리를 강화한 거더라"고 말했다.


반면 한국에선 중국 관련 연구예산이 최근 큰 폭으로 삭감됐다. 중국 관련 연구가 당장 내년부터 크게 줄어들 전망이다. 듣기 싫은 중국 얘기가 안 들린다고 좋아할 일이 아니다. 중국에 대한 정보 비대칭성이 급격히 커질 수밖에 없다. 신경 끄고 살아도 될 나라면 상관없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다. 자세히 들여다봐야 견제하고 경쟁할 수 있다.

큰 개념의 산업군 사이에서 또 다른 반도체, 또 다른 배터리(이차전지)를 찾아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버티는 중국을 얼마나 정확히 파악하느냐 여부는 한국 경제의 지속가능 성장을 위해 매우 중요한 포인트다. 중국과 인접한 지정학적 위치가 부여한 영원한 숙제이며, 또 언제 피아가 달라질지 모르는 국제 정세 속에서 또 다른 기회를 준비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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