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주주 지분 쏟아지고 주가 78% '뚝'…담보대출 잠근 증권사, 왜

머니투데이 김사무엘 기자, 김소연 기자, 김창현 기자 2023.12.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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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기업오너, 지분 담보대출 거절사태 (上)

편집자주 한 때 유치경쟁이 치열했던 코스닥 상장사 최대주주 지분 담보대출이 이제는 찬밥신세다. 지분담보 대출은 회사가 망하지 않는 한 원금손실이 없는 안전상품이자 추가 마케팅 수단으로도 활용됐으나 최근 2년간 증시가 약세를 보이고 시세조종에 휘말린 기업들의 주가가 급락하면서 담보가치가 확 줄었다. 담보대출을 시행한 증권사들은 만기연장 대신 상환을 재촉하는데 급기야 반대매매로 지분이 날아간 오너들이 나타나고 있다.

"담보대출 안돼" 대주주 지분매도 속출…주식시장 뇌관 되나
최대주주 지분 쏟아지고 주가 78% '뚝'…담보대출 잠근 증권사, 왜


#의료기기 업체 이오플로우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인 김재진 대표는 보유 주식을 담보로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빌린 200억원 규모의 주식담보대출 만기 연장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으며 최근 보유 주식이 강제로 대거 시장에 매각됐다.

지난달 16일 김 대표의 지분 104억원 어치(66만4097주)에 대한 반대매매가 이뤄지며 이날 주가는 25.94% 급락했고 지난 8일에도 104억원 상당의 김 대표 지분 200만주가 장내매도됐다. 김 대표의 지분율은 기존 16.36%에서 9.79%로 하락했고 이 기간 주가는 78.4% 급락했다.



#신약개발 업체 보로노이의 최대주주 김현태 대표 역시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주담대 250억원을 상환하라는 통보를 받으며 난감한 처지에 놓였다. 김 대표가 담보로 제공한 주식은 유상증자 신주로 보호예수가 걸려있어 강제 반대매매가 이뤄지지 않았지만 해당 소식이 알려진 지난 4일 보로노이 주가는 장중 12%대 급락하며 변동성을 키웠다.

최대주주 주담대 상환으로 리스크가 불거진 건 비단 두 기업뿐이 아니다. 라덕연 사태 이후 증권사들이 전반적으로 대출상품 리스크 관리 강화에 나서면서 주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최대주주들의 상환 압박이 커진다. 증권사 입장에서는 담보물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에 미리 대처하는 차원이지만 의도치 않게 최대주주 물량이 시장에 대거 나오며 변동성을 키울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1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최근 최대주주가 주담대 물량을 일부 상환하거나 기존보다 높은 금리로 만기 재연장을 하는 사례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KCC는 주요주주인 정몽익 KCC글라스 회장이 기존 주담대 일부를 중도상환하면서 지난달 총 80억원 상당의 보유주식을 장내매도했다고 지난 7일 공시했다. 정 회장은 KCC 주식 3만주를 담보로 한국증권금융으로부터 30억원을 대출받았는데 지난달 보유주식 일부를 매도하면서 대출금 상환에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정 회장의 지분 매도 및 주담대 상환과 관련해 KCC 관계자는 "대주주 개인적인 목적에 의한 주식 매도 및 상환으로 구체적인 이유는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영재 노루홀딩스 회장 역시 증권금융으로부터 받은 20억원 규모의 주담대 전부를 상환하면서 담보대출 계약을 해지했다고 공시했다. 김종섭 삼익악기 회장은 37억원 규모의 주담대 중 4억원을 최근 상환했고 마케팅 업체 FSN은 최대주주 특별관계자 2인이 지난달 주담대를 갚았다고 밝혔다.


코스닥 상장사 바이브컴퍼니의 최대주주인 김경서 의장은 주식 64만주를 담보로 한국투자증권으로부터 받은 25억원 규모의 주담대 계약을 최근 해지했다. 이와 함께 본인이 보유하고 있던 회사 전환사채권도 지난달 30일 매도했다. 누리플렉스의 최대주주인 누리플렉스 홀딩스는 16억원 규모의 주담대 전액을 최근 상환했고 TS트릴리온의 주요주주인 에이스파트너스는 주가 하락에 따른 담보비율 하락으로 인해 보유지분 1200만주 중 780만주를 매도해야 했다.

주담대 만기는 연장했지만 금리가 더 오른 경우도 있었다. 이희준 코아시아 대표는 10억원 규모의 주담대를 3개월 연장했으나 금리는 기존 5.95%에서 6.5%로 상승했다. 리메드의 이근용 이사회 의장 역시 담보대출은 연장하는 대신 금리는 기존 5.5%에서 5.9%로 올랐다.

최근 최대주주의 주담대 상환과 지분 매도가 빈번하게 나타나는 것은 증권사의 신용 리스크 관리 강화와 무관치 않다. 지난 4월 라덕연 일당의 CFD(차액결제거래)를 이용한 주가조작의혹 사태 이후 증권사들은 CFD 미수금으로 인해 수백억원대의 충당금을 쌓아야 했고 이후에도 이어진 동시다발적 연속 하한가 사태나 영풍제지 미수금 사태 등으로 인해 증권사들은 대출상품 리스크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하는 상황이다.

증권사의 신용 리스크 관리 강화 여파는 최대주주 주담대에도 영향을 미쳤다. 주담대는 통상 3개월 혹은 6개월 단위로 만기 연장이 이뤄지는데 상장사 최대주주의 지분은 담보물이 확실하고 신용이 높아 웬만하면 만기 연장이 거절되지 않는다. 하지만 최근 일련의 사태 이후 증권사들이 담보대출에 대해서도 개별건마다 심사를 깐깐하게 하면서 이오플로우 같은 사태가 벌어졌다는 게 증권업계의 시각이다.

증권사가 강제 상환 요청을 하지 않더라도 주담대 금리가 오르면서 차주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난해 초만해도 주담대 금리는 연 2~3% 수준이었지만 최근에는 연 5~6% 수준으로 2배 이상 상승했다.

한 증권사의 컴플라이언스(내부통제) 담당 임원은 "아무래도 올해 신용 관련 여러 이슈들이 있다보니 리테일 부서에서도 대출 심사를 보다 까다롭게 하고 있다"며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증권사들의 신용 리스크 관리 강화가 증시 변동성 확대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이오플로우나 보로노이처럼 유동성에 취약한 코스닥 상장사들은 최대주주 물량의 출회만으로도 큰 변동성을 나타낼 수 있다.

금감원 공시에 따르면 올해(1월1일~12월10일) 최대주주 변경을 수반하는 주식담보제공계약 체결 공시(만기 연장 포함)는 93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40건 보다 2배 이상 늘었고 담보대출 규모는 약 1조6548억원으로 전년 동기(1조718억원) 대비 54.4% 증가했다. 주가 하락으로 담보비율이 하락하거나 주담대 연장이 불가할 경우 잠재적으로 시장에 나올 수 있는 물량이 1조6500억원에 달한다는 의미다.

라덕연·영풍제지 사태에 화들짝…상장사 절반이 신용융자 불가
#한때 주가 차트가 계단식 상승구조를 그리면서 '천국의 계단' 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던 영풍제지 (1,832원 ▼6 -0.33%)는 지난 10월18일 돌연 하한가를 기록했다. 주가조작세력이 잡히고 거래가 재개된 이후에도 6거래일 연속 하한가를 맞으며 한때 5만4200원(수정주가 기준)이었던 주가는 순식간에 4000원대로 고꾸라졌다.

영풍제지의 급락은 투자자 뿐만 아니라 증권사에도 충격을 안겼다. 영풍제지가 이상한 급등세를 이어가는 중에도 증거금률 40%를 유지했던 키움증권 (132,100원 ▲3,400 +2.64%)이 미수금을 회수하지 못해 수천억대 손실을 봤기 때문이다. 레버리지 투자를 원하는 개인들에게 돈을 빌려주고 이자만 받으면 되는 줄 알았던 쏠쏠한 미수·신용거래가 위험상품으로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라덕연 사태에 이어 영풍제지 하한가 사태까지 발생하자 증권사들이 잇달아 신용·미수거래 빗장을 걸어 잠그는 중이다.

최대주주 지분 쏟아지고 주가 78% '뚝'…담보대출 잠근 증권사, 왜
11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주요 증권사 5곳(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38,050원 ▲700 +1.87%), KB증권, 키움증권)은 올해 신용융자 불가 종목을 대폭 늘렸다. 5개 증권사의 신용거래 불가 종목 수는 지난 1일 기준 평균 1885.2개로 지난해 말 1361.4개에서 39%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900여개에서 올해 약 1900개로 최대 2배 이상 늘린 곳도 있었고, 가장 적게 늘린 곳은 1400여개에서 1700여개로 19% 증가했다. 지난 1일 기준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 시장 상장사를 합해 전체 상장 종목수가 3834개(ETF, ETN 포함)인 것을 감안하면 절반 가량이 신용 불가 종목에 지정된 것이다.

신용융자는 증권사가 예탁된 주식, 채권, 수익증권이나 현금 등을 담보로 고객에게 주식매수자금을 90일 빌려주는 것으로 일정 횟수 안에서 대출연장이 가능하다. 다만 빌린 돈에 대한 담보(주식) 평가 금액의 비율이 140% 이하로 떨어지면 증권사는 강제 청산, 즉 반대매매에 나선다. 미수는 일정 증거금을 내고 외상으로 사는 초단기 외상 주식거래다. 2일 뒤인 결제일까지 갚지 못하면 하한가에 반대매매된다.

증권사들은 금융투자협회의 리스크관리 모범규준을 가이드라인 삼아 자체적으로 신용거래 불가 종목을 선정한다. 종목별 재무 현황, 가격 변동성, 유동성, 신용융자 비중, 기타 시장정보 등을 살펴 신용거래 여부 및 신용거래 기준(신용융자한도, 기간, 이자율, 신용거래보증금률, 담보유지비율 등)을 정한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증권사별 차이는 있지만 신용융자 금리는 대개 5~8%(1~7일 기준)에 형성돼 있다.

영풍제지 사태로 키움증권이 수천억대 미수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증권사들의 경각심이 커지면서 신용불가종목을 대폭 늘린 것이다. 많은 증권사들이 영풍제지를 신용융자 불가종목으로 지정했는데, 키움증권은 증거금률을 40%로 유지하다가 주가조작 사범들의 레버리지 창구로 사용돼 대규모 미수금이 발생했다. 키움증권은 결국 영풍제지 미수금 총 4943억원 중 610억원을 회수하는데 그쳤다.

 /사진=임종철 /사진=임종철
이에 최근에는 변동성이 조금만 커지면 바로 증거금률을 올리거나 신용거래 금지 대상에 올린다. 최근 상장한 에코프로머티 (117,700원 ▲3,100 +2.71%)리얼즈도 신용불가 종목이다. 에코프로머티는 지난달 17일 코스피 시장에 입성한 후 급등해 상장 당시 3조원 수준이었던 시가총액이 현재 10조원 수준으로 불었고 코스피 200 종목에도 편입됐다. 상장한지 한달도 안돼 공모가(3만6200원) 대비 주가가 약 4배 급등하자 대형 증권사들은 일제히 에코프로머티 증거금률을 100%로 높였다. 증거금률 100%는 사실상 미수, 신용거래를 막는다는 뜻이다.

증권사들이 리스크 강화에 나서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다만 일시에 신용거래가 옥죄여지면 수급에 큰 영향을 받는 중소기업 주가는 출렁일 수 있다는 일부 의견도 있다.

증권사 신용융자 불가종목으로 지정되면, 신용대출 연장이 불가능해지기 때문에 만기 전 빌린 돈을 모두 갚아야 한다. 그러나 신용거래를 하는 투자자는 보유 현금보다 더 많은 돈을 빌려 레버리지 투자를 하는 경우가 많아 주식 처분 없이는 대출을 갚기가 어렵다.

이에 신용거래가 끊긴다는 소문이 돌면 주가 하락 가능성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선(先)매도에 나서면서 해당 종목 주가가 급락하고, 증권사의 반대매매도 진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대주주가 주식담보대출을 받은 기업이라면 낮아진 담보 가치로 대주주 물량까지 시장에 출회, 주가가 추락하는 악순환이 펼쳐질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금융 시스템이나 증시 건전성을 위해 리스크 관리 강화에 힘쓰는 것이 맞다고 입을 모은다. 이상헌 하이투자증권 부장은 "신용융자 불가종목에 지정된다고 주가가 다 빠지진 않고, 하락하는 종목은 이유가 있다"며 "오히려 그런 종목들은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신용비율을 줄여야 더 큰 위험을 줄일 수 있고 시장 전체적으로도 변동성을 축소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레버리지 효과 무용지물…뒷걸음질 친 CFD 시장
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흐린 날씨 속 여의도 증권가. /사진=뉴스1서울 여의도 63스퀘어에서 바라본 흐린 날씨 속 여의도 증권가. /사진=뉴스1
라덕연 사태로 중단됐던 차액결제거래(CFD)가 재개된 지 100일이 넘었지만, 증권사 다수가 CFD 서비스 제공을 꺼린다. 금융당국의 규제 강화와 더불어 증권사 자체 규정 강화로 CFD 사업을 할 요인이 사라진 탓이다.

11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증거금 포함 CFD 잔고는 1조1635억원이다. 라덕연 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인 지난 3월 말 잔고 2조7697억원의 42% 수준이다. 증거금을 뺀 잔고는 5823억원으로 신규 거래 재개 첫날인 지난 9월1일(6820억원) 이후 꾸준한 감소세를 보인다.

CFD의 핵심은 레버리지다. 40%의 증거금만 있으면 주식 대비 최대 2.5배 레버리지(가진 돈보다 더 많은 돈으로 투자하는 것)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4억원만 있으면 최대 10억원을 가지고 투자한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이외에도 국내·외 주식에 관계없이 양도소득세 11%만 적용돼 절세 수단으로도 이용할 수 있어 슈퍼개미(고액 자산가)들의 꾸준한 관심을 받아왔다.

한 증권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CFD는 레버리지 투자, 공매도, 절세 등에서 뚜렷한 이점을 지닌 상품"이라며 "고위험·고수익에 절세 효과를 모두 누리려는 전문투자자 입장에서 CFD를 대체할만한 상품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CFD에 찬물을 끼얹은 건 라덕연 일당이었다. 라덕연 일당은 CFD 계좌를 활용해 삼천리, 서울가스 등 8개 종목의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는다. 라덕연 일당은 투자자 실명이 드러나지 않고, 높은 레버리지를 누릴 수 있다는 CFD의 장점을 악용했다.

이에 금융당국은 CFD 최소 증거금률 40% 규제를 상시화하고, CFD 취급 규모를 신용공여 한도에 포함해 자기자본의 100% 이내로 제한하는 등 규제를 강화했다. 지난 9월1일 라덕연 사태로 정지됐던 CFD 거래가 재개됐지만, 거래 문턱이 높아진 탓에 증권사들은 CFD 서비스 재개를 꺼리고 있다. 2016년 국내 최초로 CFD 서비스가 시작된 지 8년 만에 좌초하는 게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증권사 다수 CFD 서비스 재개 미적지근…"재개 유인 부족"

최대주주 지분 쏟아지고 주가 78% '뚝'…담보대출 잠근 증권사, 왜
키움증권, 한국투자증권, DB금융투자, 신한투자증권, 삼성증권 등 과거 CFD 서비스를 제공했던 증권사 중 5곳은 여전히 서비스 재개 시점을 밝히지 않고 있다. 서비스를 재개한 NH투자증권, 교보증권, 하나증권 등도 증거금률을 높이거나 거래 한도를 제한하는 등 요건이 까다로워져 CFD 서비스를 재개한다고 보기에 한계가 있다.

기존 고객에 한해 부분적으로 CFD 서비스를 다시 시작한 하나증권은 증거금률을 100%로 상향해 레버리지 효과를 누릴 수 없다. NH투자증권은 자체적으로 매긴 주식등급과 투자자의 코리아크레딧뷰로(KCB) 기준 신용평점을 모두 고려해 거래 한도를 결정한다. CFD 계좌를 이용할 경우 삼성전자에 최대 2억원까지 투자할 수 있으나 신용평점이 535점에 미달할 경우 투자를 할 수 없다.

서비스 재개 시점을 밝히지 않은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거금률을 상향하면 리스크를 줄일 수는 있지만, 상대적으로 레버리지 효과도 떨어지는 만큼 전문 투자자에게 CFD 매력은 반감될 것"이라며 "거래요건도 강화된 만큼 서비스를 재개한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수요가 발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권사 관계자는 "라덕연 사태 이후에도 이유 없이 주가가 하락하는 종목이 발생하는 등 CFD와 관련한 리스크가 완전히 해소됐다고 보기 힘들다"며 "CFD 사업을 재개할 유인도 부족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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