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거란 전쟁', 최수종이 차린 정통 한식 밥상, 한술 드셔봐

머니투데이 영림(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12.1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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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년차 '사극 장인'다운 저력으로 강감찬 장군역 완벽소화

사진=KBS사진=KBS


인스타그램 핫플레이스 맛집을 돌고 나면 내가 사는 동네의 익숙한 맛집으로 돌아오기 마련이고 31가지의 아이스크림을 종류별로 먹고 나면 결국 손에 들려있는 건 클래식한 멜론맛 하드인 법이다. '정통'이 가진 숨은 힘은 어쩌면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키는 것이다.

KBS 2TV 대하사극 '고려 거란전쟁'(극본 이정우, 연출 전우성 김한솔)도 이런 '정통'의 힘을 보여준다. 숏폼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 사극이라는, 자칫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이 콘텐츠에 쏟아진 반응은 대중이 얼마나 '정통 사극'의 묵직함을 기다려왔는지를 방증한다.



MBC '선덕여왕', '대장금', SBS '육룡이 나르샤'를 비롯해 최근 종영한 MBC '연인'까지 사극 장르 작품은 꾸준히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앞선 작품들에 '정통' 사극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긴 어렵다. 기록에 기반한 역사적 사실에 극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실존한 인물이 아닌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고 실제 일어난 사건에 작가의 해석이 덧붙여져 전혀 새로운 전개가 펼쳐지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사극 장르에 늘 따라붙는 '고증논란'이라는 꼬리표가 생겨난다.



이런 '고증 논란'도 스스로 사극이 아닌 시대적 배경만 빌린 로맨스물이나 판타지물임을 내세우면 크게 문제될 것이 없다. 이왕 할거면 과감하게 왜곡하고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것이 창작자 입장에서도, 시청자 입장에서도 마음이 편하다. '저딴 게 무슨 사극이라는 거야' 소리를 들을 필요도 없다.

사진=KBS사진=KBS
하지만 '고려 거란전쟁'은 앞선 작품들과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다. 무엇이 '고려 거란전쟁'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역대 대하사극 중 최대 제작비라는 270억 원을 투입해서일까. 아니면 공영방송 KBS에서 오랜만에 방송하는 대하사극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다름 아닌 최수종이라는 배우가 '고려 거란전쟁'을 특별하게 만든다.


최수종은 그동안 사극에서 인상적인 업적을 쌓아왔다. '태조 왕건', '해신', '대조영' 등에서 굵직한 연기를 펼쳐왔다. '최수종의 작품 목록이 한반도의 역사'라는 우스갯소리는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런 그가 '고려 거란전쟁'에서 강감찬 장군을 연기한다. 최수종이 왕이 아닌 것 자체가 신선하고 여러 신하들과 함께 도열해 있는 모습이 낯설다.

그럼에도 최수종이 강감찬이었어야 하는 이유는 회차가 지날수록 서서히 이해가 되어간다. 실제 역사에서도 군인이라기보다 중앙정부 공무원에게 가까웠던 강감찬 장군이기에 총명함과 강직함과 승리에 대한 집착도 연기할 수 있는 최수종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타이틀이 '고려 거란전쟁'인만큼 시청자를 사로잡는 장면은 전투신이다. 양규 장군의 흥화진 전투, 포로로 잡힌 강조의 모습 등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곳은 전장일 수밖에 없다.

사진=KBS사진=KBS
이때 최수종의 강감찬이 등장해 갑옷이 아닌 관복을 입고 나타나 현종(김동준)을 질책하고 보듬는다. 여기에 우리의 눈을 사로잡았던 전투신 뒤에 있던 후방의 고민을 보여준다. 전쟁에 시달려 고통받는 백성들의 비극도 강감찬의 입을 통해 전해진다. 일주일을 밤새 싸운 흥화진만큼 개경도 그만큼 치열하다는 걸 강감찬의 최수종이 보여주는 것이다.

여기에 최수종은 국사 시간에 배운 '귀주대첩'의 장군 강감찬에 공처가였다는 속성,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바른말을 하는 아웃사이더라는 속성을 부여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한다. 역사 속 영웅이지만 '슈퍼히어로'는 아니었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이처럼 '고려 거란전쟁'은 최수종이라는 배우의 덕을 본다. 관용어구처럼 쓰이는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다.

결국 돌고 돌아 '튜닝의 끝은 순정'이고 퓨전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돌아갈 곳은 '정통 한정식 구첩 반상'임을 안다. 그런데 이걸 36년의 경력자가 만들어 준다고 한다. 굳이 이걸 마다할 이유가 있기는 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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