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
KBS 2TV 대하사극 '고려 거란전쟁'(극본 이정우, 연출 전우성 김한솔)도 이런 '정통'의 힘을 보여준다. 숏폼 콘텐츠 범람의 시대에 사극이라는, 자칫 시대에 뒤떨어져 보이는 이 콘텐츠에 쏟아진 반응은 대중이 얼마나 '정통 사극'의 묵직함을 기다려왔는지를 방증한다.
그러나 앞선 작품들에 '정통' 사극이라는 타이틀을 붙이긴 어렵다. 기록에 기반한 역사적 사실에 극적인 상상력을 가미한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실존한 인물이 아닌 캐릭터가 등장하기도 하고 실제 일어난 사건에 작가의 해석이 덧붙여져 전혀 새로운 전개가 펼쳐지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사극 장르에 늘 따라붙는 '고증논란'이라는 꼬리표가 생겨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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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고려 거란전쟁'은 앞선 작품들과 완전히 결을 달리하는 작품이다. 무엇이 '고려 거란전쟁'을 특별하게 만들었을까. 역대 대하사극 중 최대 제작비라는 270억 원을 투입해서일까. 아니면 공영방송 KBS에서 오랜만에 방송하는 대하사극이기 때문일까. 아니다. 다름 아닌 최수종이라는 배우가 '고려 거란전쟁'을 특별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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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수종은 그동안 사극에서 인상적인 업적을 쌓아왔다. '태조 왕건', '해신', '대조영' 등에서 굵직한 연기를 펼쳐왔다. '최수종의 작품 목록이 한반도의 역사'라는 우스갯소리는 결코 과장된 말이 아니다.
그런 그가 '고려 거란전쟁'에서 강감찬 장군을 연기한다. 최수종이 왕이 아닌 것 자체가 신선하고 여러 신하들과 함께 도열해 있는 모습이 낯설다.
그럼에도 최수종이 강감찬이었어야 하는 이유는 회차가 지날수록 서서히 이해가 되어간다. 실제 역사에서도 군인이라기보다 중앙정부 공무원에게 가까웠던 강감찬 장군이기에 총명함과 강직함과 승리에 대한 집착도 연기할 수 있는 최수종이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타이틀이 '고려 거란전쟁'인만큼 시청자를 사로잡는 장면은 전투신이다. 양규 장군의 흥화진 전투, 포로로 잡힌 강조의 모습 등 인상을 강하게 남기는 곳은 전장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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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최수종은 국사 시간에 배운 '귀주대첩'의 장군 강감찬에 공처가였다는 속성,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바른말을 하는 아웃사이더라는 속성을 부여해 입체적인 캐릭터를 구축한다. 역사 속 영웅이지만 '슈퍼히어로'는 아니었음을 다시 상기시킨다.
이처럼 '고려 거란전쟁'은 최수종이라는 배우의 덕을 본다. 관용어구처럼 쓰이는 '극의 중심을 잡아준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알 것만 같다.
결국 돌고 돌아 '튜닝의 끝은 순정'이고 퓨전 음식이 아무리 맛있어도 돌아갈 곳은 '정통 한정식 구첩 반상'임을 안다. 그런데 이걸 36년의 경력자가 만들어 준다고 한다. 굳이 이걸 마다할 이유가 있기는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