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은 고인과의 작별을 위한 관문으로 자리 잡았다. 올해 9월 기준 화장률은 92.5%다. 화장률이 올라가면서 화장장 문턱도 높아졌다. 화장시설은 넘치는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화장시설 예약이 어려워졌다. 화장시설을 예약하지 못해 3일장(葬)을 포기하는 사례도 속출한다. 서울의 경우 지난달 3일차 화장률이 25.5%까지 떨어졌다.
우리 사회는 지난해 이미 '화장대란'을 경험했다. 고치범 한국장례문화진흥원장은 "지난해 3~4월 코로나19 사망자 급증에 따른 화장수요 급증으로 5~6일장을 치렀고, 임시안치시설 설치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을 겪었다"며 "코로나19가 아니라도 사망자가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전국 화장시설 현황. 같은 색으로 표시한 지역은 인접 화장시설에서 관내화장 가능지역이고, 색이 없는 지역은 관내화장시설이 없는 곳이다 /사진제공=보건복지부
박태호 '장례와 화장문화 연구포럼' 공동대표는 "국가적인 화장대란에 접어들었다"며 "국민들의 무관심, 영혼 없는 공무원, 표를 의식한 선출직 공무원이라는 3박자가 맞아 떨어진 결과"고 말했다. 장례 절차의 불편함은 모든 국민이 인지하고 있지만, 유족 입장에선 장례를 여러 번 치르지 않기 때문에 불만을 덮고 만다.
그러다보니 공무원들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 박 대표는 이를 "국민들의 무관심으로 민원이 모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민원이 쌓이지 않으니 공무원들은 이를 악용해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선출직 공무원인 정치인 역시 화장장이라는 지역의 시끄러운 일을 뭉갠다. 그 결과가 지금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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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문제라고 하지만 나서는 사람이 없다"
지자체 나름의 고민은 있다. 화장장 신축은 '정치의 영역'으로 넘어갔다. 지역 주민 설득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택한 건 기존 시설을 활용해 화장 횟수를 늘리는 방법이다. 서울시립승화원만 하더라도 '스마트 화장로'를 순차적으로 도입해 화장시간을 기존 120분에서 100분으로 줄이고 있다.
그럼에도 화장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서울의 경우 비상대응이 일상화되고 있다. 취재진이 찾아간 지난 5일에도 서울시립승화원은 화장로 운영시간을 2시간 늘리는 임시회차를 가동 중이었다. 오전 6시50분에 시작된 불은 저녁 7시40분에나 꺼진다. 하지만 직원 임금 문제와 기계의 내구성, 유족 선호도 등을 감안할 때 비상대응을 상설화하기 쉽지 않다.
주민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선 지자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화장장을 신·증축해야 한다. 31개 시·군을 두고 있는 경기도의 화장시설은 4곳이다. 서울 화장장을 같이 쓰는 고양·파주를 제외하고도 25곳에 화장시설이 없다. 서울은 이미 포화 상태다. 서울시 관계자는 "화장시설 신설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화장시설 운영을 개선하는 방법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2021년 기준 378기인 화장로를 2027년 430기까지 늘린다는 계획이다. 특히 서울, 경기, 부산, 대구의 화장로 우선 확대가 필요하다고 봤다. 화장시설 공백에 놓인 경기 동북부 등은 화장시설 신축을 과제로 제시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지역간 컨소시엄이 필요하다"며 "수도권의 국립장사시설도 장기계획으로 잡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어떤 방식이든 지역 주민의 반대에 부딪힐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제다. 서용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갈등이 생기는 순간 화장시설 문제는 해결에 어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며 "스웨덴의 경우 시신을 급속냉동해서 분쇄하는 빙장이 활성화돼 있는데 이런 것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