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칼럼]아이슬란드에 맥도널드가 없는 이유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3.12.07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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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영국의 국민 음식은 피시앤드칩스(Fish and Chips)다. 1860년대에 처음 나타났다고 한다. 지금은 그때만큼은 아닌데 1930년대에는 이 음식을 파는 곳이 전국에 3만5000곳이 넘었다. 양차 세계대전 동안에 영국 정부는 이 음식을 확보하느라 절치부심했고 배급제 적용 대상 식품에 포함하지도 않았다고 한다. 만일 그랬다가는 히틀러가 아니라 자국민들과 전쟁을 해야 할 판이었다.

이 음식에 재료로 사용되는 생선은 대구다. 꼭 대구여야 한다는 법은 없지만 어쨌든 대구가 가장 많이 쓰인다. 그래서 영국에게 대구의 공급은 매우 중요한 문제다. 그런데 대구는 한랭 어종이어서 영국에서 한참 북쪽으로 올라가야 닿는 아이슬란드의 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아이슬란드에도 대구는 중요한데 피시앤드칩스 때문이 아니라 그냥 중요한 어업자원이기 때문이다.



영국 배들이 너무 많이 오자 아이슬란드는 50해리 전관수역을 선포해버렸다. 국제법 위반이지만 상관하지 않았다. 그러자 영국 어선들은 해군 함정을 대동하고 와서 고기잡이를 했다. 군대가 없는 아이슬란드의 해경이 영국 어선의 어망을 끊었고 해상 포격전이 벌어졌다. 1972년의 '대구전쟁'이다. 1976년에도 다시 포격전이 벌어졌다. 그 후로 아이슬란드는 덴마크보다 영국을 더 싫어한다.

아이슬란드는 덴마크의 지배를 받다가 1918년에 덴마크 왕이 아이슬란드 왕을 겸하는 독립 국가가 되었다. 2차 대전 초에 독일이 덴마크와 노르웨이를 점령하고 대서양으로 진출할 기미를 보이자 영국은 서둘러서 아이슬란드를 점령했다. 아이슬란드는 북대서양에서 독일 유보트를 감시하는 주요 거점으로 쓰였다. 덴마크는 독일, 아이슬란드는 연합군 점령하에 놓이자 아이슬란드는 재빨리 국민투표를 실시해 독립을 해버렸다. 히틀러는 나치에 고분고분하지 않던 덴마크가 못마땅했는데 그래서인지 1944년에 아이슬란드의 독립을 승인해주었다.



아이슬란드는 면적이 한국과 비슷하다. 그러나 인구는 40만 명이 채 안 된다. 땅이 척박해서 종래 살기 어려운 나라였는데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어업과 수산물 무역으로 급격히 경제력이 향상되었다. 영국과의 대구전쟁도 그 맥락에서 이해하면 된다. 1980년대 후반 1인당 GDP가 유럽에서 가장 높았다.

수산업의 불안정성 때문에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하자 아이슬란드는 시장을 완전 개방하고 규제완화를 통해 금융업으로 산업의 중심을 이동시켰다. 1997년에 GDP의 4%였던 금융업의 비중이 2007년에 14%까지 올라갔다. 글로벌 금융허브가 된 아이슬란드의 1인당 GDP는 7만 달러대로 올라섰는데 룩셈부르크와 노르웨이에 이은 3위였다. 고금리로 전 세계의 돈을 끌어모은 아이슬란드의 3대 은행 자산은 국가 GDP의 10배까지 증가했다.

그러자 아이슬란드 기업들이 유럽 여러 나라의 기업들을 공격적으로 인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넘쳐나는 유동성이 사람들을 무절제하게 만들었다. 감독기관, 회계법인, 신용평가회사 모두 공범이었고 은행과 그네들 사이에서는 이직도 활발했다. 그 결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아이슬란드 경제는 파국을 맞는다. GDP가 130억 달러인 나라에서 은행들이 1000억 달러 손실을 기록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를 다룬 아카데미 다큐상 수상작 '인사이드 잡'(2010)도 아이슬란드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실질소득이 급감하고 부채가 기업과 가계를 짓눌러 범죄가 급증했다. 수입 식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아이슬란드는 맥도널드의 빅맥이 가장 비싼 나라가 되었다. 결국 2009년 10월에 맥도널드는 아이슬란드에서 철수했다. 마지막 날 하루 동안 1만 개의 빅맥이 판매되었다. 아이슬란드의 실패에는 정부와 언론, 경제계가 특정 성향의 인사들에게 모두 장악되어 국가 정책에 대한 조정 기능이 실종되었던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당시 아이슬란드 총리는 후일 법원에서 직무유기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그 후 아이슬란드 경제는 갑작스러운 관광 붐에 힘입어서 기력을 회복했다. 외화 수입의 40% 이상이 관광에서 나온다. 국토 곳곳이 지열발전에 적합해서 전기 먹는 하마로 불리는 알루미늄제련업도 크다. 현재 아이슬란드의 1인당 GDP 글로벌 순위는 7만9000달러로 8위이고 덴마크가 7만1000달러로 9위다.

맥도널드는 아이슬란드에 복귀하지 않았다. 아이슬란드에는 스타벅스도 없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해외 브랜드가 원래 별 인기가 없다. 사실 좀 특이한 나라다. 1989년까지 맥주가 금지되었고 1980년대 초까지 매주 목요일과 7월 한 달 TV 시청이 금지되었던 역사가 있다. 국민들이 TV 시청보다 뭔가 더 생산적인 일을 하게 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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