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 정우성이 그린 '정의'에 MZ세대가 움직였다

머니투데이 이설(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12.07 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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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에 대적하는 올곧음이 2030세대 마음 훔쳤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제28회 부산국제영화제가 열리고 있던 10월 중순의 어느 날 밤 부산 해운대. 오랜만에 만난 김성수 감독의 얼굴은 꽤 상기돼 있었다. 지난해 초부터 여름까지 5개월간 촬영에 매달렸던 영화 ‘서울의 봄’의 후반 작업을 모두 마친 후 개봉을 한 달여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11월 22일 개봉이요? 어휴, 시기가 썩 좋지 않네요. 요즘 극장에 관객이 너무 없어서…" 코로나19 이후 급격하게 쪼그라든 한국영화 관객 수를 얘기하니, 역시 같은 답이 돌아왔다. "그러게요. 젊은 관객이 극장에 많이 와야 할 텐데 걱정이 많아요. 하지만 그래도 저 같은 또래의 4050 세대 관객에겐 자신 있어요."



그러면서 김 감독은 자신의 휴대전화에 저장된 메인 예고편을 보여줬다. 전두광(전두환) 역의 황정민, 이태신(장태완) 역의 정우성, 노태건(노태우) 역의 박해준 등 일단 비주얼만 봐도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그동안 다뤄진 적이 없는 12·12 군사 쿠데타가 소재라니 역사적 관심도나 집중도는 엄청날 게 분명했다. 김 감독이 말한 대로 12·12를 직접 보거나 겪은 중·장년층 세대에겐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어 보였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문제는 2030 세대였다. 문화의 주 소비층으로 자리 잡은 이들 젊은 세대가 이 영화를 어떻게 바라볼지, 과연 극장으로 찾아줄지가 관건이었다. 그러나 김 감독의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서울의 봄’은 승승장구하고 있다. 개봉 14일이 된 5일, 누적 관객 500만 명을 돌파하며 ‘1000만’ 고지를 바라보게 됐다. 마동석의 ‘범죄도시3’와 류승완 감독의 ‘밀수’, 이병헌의 열연이 돋보인 ‘콘크리트 유토피아’를 제외하곤 흥행 부진에 시달리던 올해 영화계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운 소식이다.

500만을 넘어 1000만을 기대한다는 것은 4050은 물론 2030 세대가 확실하게 움직였다는 것을 뜻한다. 실제로 CJ CGV의 관람객 수 통계를 보면, 30대가 30%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20대(26%)다. 이어 40대가 23%, 50대가 17%다. 10대 관객도 4%나 된다. 남녀 관객 비율도 남자 49%, 여자 51%로 매우 고른 편이다. ‘서울의 봄’에는 군복 입은 남자 배우들이 대부분이고, 여자 배우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관객들은 남녀를 가리지 않은 셈이다.

2030 세대가 ‘서울의 봄’에 응답한 이유는 다음의 몇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첫째는 ‘서울의 봄’이 영화 본연의 재미와 의미에 충실했다는 점이다. 최근 한국영화 흥행이 부진하면서 위기론이 팽배했다. 넷플릭스의 어마어마한 투자 규모나 글로벌한 유통 시스템을 구조적으로 극복하기 어렵다거나, 티켓 가격 상승으로 ‘주말엔 영화나 한 편 볼까’하며 쉽게 극장 나들이를 하던 시대는 지났다는 게 중론이었다. 그러다 보니 굳이 몇만 원씩 주고 극장까지 가서 볼 영화가 없다는 식의 비관론이 퍼졌다. ‘1000만 영화’는 이제 요원하며, 이대로라면 내년엔 영화계 침체가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서울의 봄’은 높은 완성도로 모든 악조건을 뛰어넘었다. 12·12군사반란의 결말은 누구나 알듯이 바뀔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지만, 그 과정에 영화적 상상력을 가미해 흥미진진하게 영상화했다. 실제 벌어진 일이라는 점에서 4050 세대의 향수를 자극했고, 영화적인 상상력을 추가해 2030 세대의 호기심을 유발했다. 결국 잘 만든 영화는 얼마든지 관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둘째는 ‘뉴트로(New+Retro)’다. 12·12 군사반란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뼈아픈 순간이다. 12·12군사반란의 주역인 전두환과 노태우 전 대통령이 5·18 민주화운동 특별법에 의해 단죄됐다고 하지만 아직 국민의 가슴 속엔 커다란 아픔으로 남아 있다. 그래서 그동안 다큐멘터리 등으로 다뤄져 왔을 뿐 작정하고 영화화된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제작사인 하이브미디어코프의 김원국 대표와 김 감독은 ‘금기’에 도전했다. 아픈 역사가 주는 무게감을 잃지 않되, 2030 세대도 공감할 수 있는 극적인 스토리를 심었다. 그건 대체로 정우성을 통해 전달된다. 정우성이 연기한 이태신 수도경비사령관은 국가적 대의와 정의를 목숨처럼 지키는 군인으로 표현된다. 전두광의 황정민과 하나회 일당이 늑대처럼 으르렁거리는 것에 비하면 오히려 선비처럼 느껴질 정도다. 부드러운 카리스마까지 갖춰 호감형이다. 할리우드 SF 판타지의 히어로처럼 전지전능하지는 않지만 훨씬 더 실제적이고 일반적인 영웅이다. 공정과 정의를 중시하는 2030 세대가 정우성에게서 진정한 영웅의 카리스마를 발견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역사 속 실제 인물인 장태완 사령관은 이태신과는 스타일이 전혀 달랐다. 그러나 관객들은 알고 있는 것과 보고 싶어 하는 것 사이에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김 감독은 이런 현실과 판타지의 괴리를 효과적으로 잘 녹여냈다.

마지막으로는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하는 ‘서울의 봄’ 연쇄효과다. 500만 관객을 넘어서면서 ‘서울의 봄’은 이제 슬슬 ‘머스트 시(Must See)’ 무비가 되고 있다. 트렌드에 민감한 2030 세대로선 그냥 거를 수 없는 작품이 됐다. 이에 따라 이미 관람한 관객들을 중심으로 ‘서울의 봄’ 디테일이 SNS와 인터넷 밈에 번져가고 있다. MBC는 약 20년 전에 방송됐던 12·12 소재의 드라마 ‘제5 공화국’을 다시 편성했다. 한번 바람을 타면 이후엔 그저 바람에 몸을 맡기고 즐기면 된다. 2개월 전, 2030 세대에 대한 김 감독의 우울한 전망이 보기 좋게 빗나가 반갑다. ‘서울의 봄’이 올 연말 한국영화 부활의 전환점으로 작용하길 간절히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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