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자식들 반성문 쓰게 만드는 '3일의 휴가'

머니투데이 정수진(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12.05 1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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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샘 자극하며 긴 여운 선사하는 김해숙 신민아의 열연

'3일의 휴가', 사진=쇼박스'3일의 휴가', 사진=쇼박스


울지 않을 재간이 없다. 마냥 신파로 밀어붙이는 건 아니고, 그렇다고 압도적인 슬픔의 파고를 몰고 오는 것도 아니지만, 콧날이 시큰거리고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하늘의 도리로 맺어졌기에 끊으려 해도 끊을 수 없다는 부모 자식 간, 그 중에서도 엄마와 딸의 관계를 담은 영화 ‘3일의 휴가’(감독 육상효) 이야기다.



살아 생전 시골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던 엄마 복자(김해숙)는 세상을 떠난 지 3년이 되었다. 하늘에서 열린 백일장에서 입상한 그는 부상으로 3일간 이승에서의 휴가를 받는다. 귀신이기에 모습을 드러낼 수도 목소리를 들려줄 수도 그리운 이의 얼굴을 어루만질 수도 없지만, 못내 그리웠던 하나뿐인 딸 진주(신민아)를 만날 수 있다는 기쁨에 벅차다. 그런데 요상하다. 딸은 미국 명문대라는 ‘우크라 대학’(UCLA를 지칭하는 복자의 말) 교수인데, 하늘나라 가이드(강기영)를 따라 도착한 곳은 자신이 살던 김천의 시골집이다. 심지어 딸 진주는 자신이 운영하던 백반집을 운영하고 있다. 이게 대체 무슨 노릇인지 복자는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 없다.

영화는 복자와 진주의 관계를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보여준다. 모든 부모 자식 관계가 그렇듯, 이들 사이에도 구메구메 사연이 많다. 홀로 자식을 키워야 했던 복자는 어린 진주를 남동생 부부의 집에 맡긴 채 남의 집을 전전하며 돈을 벌고, 딸의 교육을 책임질 수 있다는 이와 원치 않던 재혼까지 하며 끝없이 자신을 희생한다. 딸도 엄마의 희생을 안다. 그러나 어린 자신을 버렸다는 원망도 컸고, 그 원망은 커서도 이어져 엄마와 못내 살갑지 못하다. 멀리 미국까지 간 것도 어쩌면 엄마와의 그 애증의 관계에서 도망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다 엄마가 황망하게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으니 관계의 응어리를 풀지 못한 셈이다.



사진=3일의 휴가사진=3일의 휴가
세상을 떠난 엄마와 살아 있는 딸의 관계를 이어주는 매개는 음식이다. 엄마가 자랑하던 오래도록 아삭함을 유지하는 장독 속 김치를 활용한 스팸 김치찌개, 매운 것을 못 먹던 딸을 위해 무를 넣어 만들었던 슴슴한 만두, 딸에게 면박당하고 홀로 맥도날드에 앉아 손에 흘러내리면서도 쥐고 있던 아이스크림콘 등 엄마와의 기억을 담은 음식들이 엄마와 딸의 추억을 환기시키며 서로 사랑하고 아꼈으나 통하지 못했던 모녀의 관계를 회복시킨다.

엄마와 딸이라는 ‘눈물 치트키’를 극대화하는 건 배우들의 힘이다. 자타공인 ‘국민 엄마’로 불리는 배우 김해숙의 엄마 연기는 명불허전. 많은 작품에서 무수히 많은 엄마를 연기한 그이지만, 누구 하나 겹쳐지는 느낌 없이, 오롯이 복자의 모습이 되어 관객들에게 또 한 번 잊을 수 없는 엄마를 인식시킨다. “문디 가시나” “지랄하고 있네”라며 억센 사투리로 욕설을 퍼붓다가도 이내 먹먹한 울음을 삼키게 만드는 노련한 완급 조절은 김해숙이 왜 ‘국민 엄마’인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를 뒷받침하는 딸 신민아의 단단함도 돋보인다. 김해숙이 신민아와의 케미에 대해 “진짜 딸과 연기한 느낌”이라 할 만큼, 신민아는 엄마에 대한 원망과 서러움, 죄책감, 그리움과 사랑을 담담하고도 애절하게 표현한다. 가이드 역의 강기영과 진주의 단짝 미진으로 분한 황보라는 무거울 수 있는 극에서 과하지 않은 웃음을 주며 모녀의 관계에 힘을 실어준다.

사진=쇼박스사진=쇼박스
‘3일의 휴가’는 세상의 모든 부모 자식들에게 통용될 만한 영화다. 엄마는 항상 자식이 그립지만, 자식은 그 마음을 알면서도 상황에 따라 외면하고 다음으로 연기한다. 그런 모습을 영화에서 가장 잘 표현하는 건 통화 연결음이다. 복자가 진주에게 전화를 걸지만, 진주는 바쁘다며 짧게 통화를 끝내거나 아예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이때 통화 연결음으로 하염없이 울려 퍼지는 것이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 이 노래는 진주처럼 부모의 전화를 잘 받지 않는 자식들의 마음을 시큰하게 만든다.

오늘도 걸려오는 부모님의 전화를 바쁘다고, 귀찮다고, 언제든 연락할 수 있다고 여겼던 자식들이라면 ‘3일의 휴가’를 보며 새삼 다짐하게 될 것이다. 최소한 부모님 전화는 잘 받자는 다짐. 그리고 영화에서 나온 “기억이라는 게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연료 같은 것”이란 대사처럼 부모님과 많은 기억을 쌓자는 다짐. 그 다짐을 만드는 것으로 ‘3일의 휴가’의 의의는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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