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2일 오후 서울 종로 인근에서 검거된 강화 해병대 총기 탈취사건 용의자 조모씨가 서울 용산경찰서로 이송되는 모습./사진=뉴시스
이날 오후 5시 30분쯤 인천시 강화군 길상면 황산도 초소에서는 전역을 2개월 앞둔 이 모 병장과 입대 7개월 차였던 박 모 일병이 경계 근무 후 부대로 돌아오고 있었다.
차량에 치인 박 일병은 도로 옆 갯벌로 곤두박질 쳤고, 이 병장은 도로에 쓰러졌다. 이 차량은 두 사람을 친 뒤 충격에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이들을 향해 다시 돌아왔다.
이 병장이 개머리판으로 조씨의 머리를 내리치는 등 완강히 저항하자 조씨는 갑자기 길이 20㎝ 흉기를 꺼내 마구 휘둘러 중상을 입혔고, 끝내 총을 빼앗았다.
이어 조씨는 인근에 쓰러져 있던 박 일병에게 다가갔고 저항하는 박 일병을 수차례 찔러 탄약, 수류탄 등을 빼앗았다. 이 과정에서 크게 다친 박 일병은 결국 그 자리에서 숨을 거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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軍 최고 경계태세 발령에도…총기탈취범 유유히 탈주조씨가 챙긴 건 유효사거리 600m, 최대 사거리 3300m인 K2 소총과 실탄 75발, 유탄 6발, 살상반경이 15m인 수류탄 등이었다.
최전방 지역에서 무장한 군인을 대상으로 한 범행에 군과 경찰은 비상이 걸렸고, 사고 50여 분 만인 오후 6시30분 경 인천 강화·경기 김포·일산 일대에 최고 경계태세인 진돗개 하나가 발령됐다.
경기도 화성 인근에서 불에 탄 채 발견된 강화 총기탈취 사건 범인의 차량./사진=뉴시스
군의 경계망을 뚫고 남쪽으로 달린 조씨는 경기도 화성에서 차량을 불태운 뒤 종적을 감췄다. 전소된 차량은 2개월 전 도난된 차량이었고, 범퍼 구조와 차량 번호판이 변조된 상태였다.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 용의자 몽타주./사진=뉴시스
강화도 해병대 총기 탈취 사건 범인이 작성한 편지 봉투 위 글과 편지. /사진=SBS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방송 화면
편지는 범인 조씨가 보낸 것으로 추정됐고, 편지 속 "전남 장성 백양사휴게소 인근에 총기를 묻었다"는 내용에 따라 수색한 결과 전남 장성군 백양사휴게소 200m 인근 수로에서 곧바로 무기를 회수할 수 있었다.
또한 편지에는 조씨의 지문이 남아있었다. 경찰은 정밀 감식 결과 찾아낸 지문으로 조씨의 신원을 특정했고, 다음날인 12일 조씨 친구의 도움으로 서울에 숨어 있던 조씨를 검거했다. 사건 발생 6일 만이었다.
"헤어진 여자친구에 파멸하는 모습 보여 앙갚음 하려 해"당초 경찰은 범행수법과 경찰 추적을 따돌려온 것 등을 고려해 범인이 특수부대나 해병대 전역자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수사해왔으나 조씨는 추정과는 다른 인물이었다.
조씨는 금속공예를 전공해 대학원까지 나온 고학력자로, 육군 포병으로 제대한 뒤 귀금속 세공업과 인테리어업에 종사해왔으며 별다른 전과도 없었다.
2007년 12월 12일 오후 서울 종로인근에서 검거된 강화 총기탈취사건 용의자가 용산경찰서로 이송되고 있다./사진=뉴시스
조씨는 "애인과 지난 9월 헤어진 뒤 다시 만나 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하자 내가 파멸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심리적인 고통을 주고 싶었다"고 진술했다.
조씨는 우발적 범행을 주장했지만 범행을 철저히 계획한 사실이 드러났다. 2주 전부터 강화도 해병초소 주변을 돌며 병사들의 근무 현황을 파악했으며, 범행 당일에는 오후 5시부터 범행 현장에 차량을 세워놓고 40분간 기다리고 있다가 병사들이 나타나자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에 사용한 흉기도 범행 3개월 전 서울 남대문 시장에서 구입한 사실이 확인됐다.
또한 조씨는 자신의 신원이 노출되는 걸 막기 위해 범행 과정에서 찢어진 앞머리 부위를 서울 용산구 자신의 집에서 마취도 하지 않은채 거울을 보며 일반 실과 바늘로 6바늘을 꿰맨 것으로도 밝혀졌다.
군사 재판 받은 탈취범, 사형→징역 15년 감형…지난해 출소조씨는 민간인 신분이었지만 군 무기를 탈취하고 군인을 해쳤기 때문에 초병살해, 군용물강도살인, 초병상해, 군용물강도상해 등의 군법을 적용해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았다.
1심인 해병대사령부 보통군사법원은 2018년 4월 "사전에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고 총기탈취 목적 달성을 위해 흉기를 휘두르고 급기야 초병을 살해했다"며 사형을 선고했다.
하지만 조씨는 항소했고, 2심인 고등군사법원은 조씨가 병사들과 충돌 시 브레이크를 밟았고 처음부터 흉기를 사용하지 않았던 점 등을 근거로 "초병살해 고의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1심 판결을 파기하고 징역 1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근무 장소가 민간 횟집과 숙박업소가 산재하고, 민간인의 통행이 자유로운 곳인 점 등을 고려할 때, 피고인이 피해자들이 초병인지 인식했다고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근무 중인 군인이 범행 당한 위치가 민간인도 통행하는 길이라 초병살인죄가 아닌 일반살인죄가 적용됐고, 대법원도 같은 해 12월 2심 판결을 그대로 확정했다.
조씨는 지난해 12월 11일 만기 출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