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규제 현황판부터 부활해야"

머니투데이 박선춘 씨지인사이드 대표 2023.12.05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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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춘의 여의도 빅데이터]

▲박선춘 씨지인사이드 대표▲박선춘 씨지인사이드 대표


“1년 내내 꽃이 피면 누가 꽃구경 가나.” 2016년 박근혜 前 대통령이 5차 규제개혁회의에서 한 발언이다. 규제혁신의 ‘골든타임’을 강조하기 위한 말이다. 박 前 대통령은 이런 말도 덧붙였다. “우리가 특별한 자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인재와 우리의 제도적 노력이 미래 성장동력이 될 텐데 (규제혁신의 기회를) 이 시간에 놓치면 우리는 영원히 잃게 될 것입니다.”

2022년 전경련이 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규제개혁 체감도 조사결과는 95.9점으로 나타났다. 100점이면 규제개혁 체감도가 보통이고 100점을 초과하면 만족하는 수준을 나타내는 것이니 규제개혁 성과에 대해 기업들은 대체로 만족하지 못한 셈이다. 조사에 따르면 규제개혁에 만족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규제가 계속 신설된다’는 것이고, 다음으로 ‘핵심규제 개선 미흡’과 ‘보이지 않는 규제 해결 미흡’이 뒤를 잇고 있다.



역대 정부의 규제개혁과 성과
제5공화국과 제6공화국 당시의 규제개혁은 행정개혁의 일환으로 추진됐다. 실질적 의미의 규제개혁은 최초의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 때부터다. 김영삼 정부 때 우리나라 규제개혁의 기본법이라고 할 수 있는 「규제완화특별조치법」과 「행정규제기본법」이 제정되었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대통령 직속의 규제개혁위원회를 설치하고 규제등록제를 실시했으며 감축대상 규제의 총량을 명시하도록 하는 등 실질적인 규제개혁 성과를 이끌어냈다. 그 결과 1998년 1만185개였던 규제 수가 2001년 7248개로 28.8%나 감축됐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민관합동의 규제개혁기획단을 운영했고, 규제일몰제 및 규제총량제를 실시했으며, 현재까지도 규제일몰제도가 실시되고 있다. 규제총량 관리에 관심이 높았던 때문인지 5년이 경과한 2006년에는 2001년 대비 규제 수가 836개(10.3%) 증가하는 데 그쳤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기치로 내걸었던 이명박 정부에 들어서 규제 수가 오히려 크게 증가했다. 2011년 기준 규제 수가 1만4065개였으니 2006년 대비 73.9%인 5981개나 증가했다. 박근혜 정부에 들어와서는 규제는 원수, 규제는 암 덩어리, 손톱 밑 가시, 신발 속 돌멩이 등과 같은 수많은 용어를 양산하며 규제혁신 정책을 추진했다. 그 결과 2015년 기준 규제 수는 1만4685개로 2011년 대비 4.4%(620개) 증가하는 데 그쳤다.

어찌 된 일인지 2016년 이후부터는 우리나라의 규제 총량 데이터를 확인할 방법이 없다. 2015년 10월부터 우리나라 총 규제 수를 알려주는 ‘규제현황판’이 슬그머니 사라져버렸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규제 현황판부터 부활해야"
규제 현황판을 부활해야 하는 이유
명칭은 중요하지 않다. 규제 ‘현황판’이든, ‘전광판’이든, 명칭과 관계없이 정부는 당장 오늘부터 규제 총량관리에 나서야 한다. 2015년 규제 총량관리를 포기한 이래로 규제는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2023년 10월 말 기준 우리나라의 규제 수가 8만7830개이니, 2015년 10월 이후 8년 동안 무려 5.2배나 증가했다. 8년 동안 매년 평균 9143개씩 규제가 증가한 셈이다. 규제 총량 관리를 포기한 대가로 치부하기엔 참으로 뼈아픈 정책실패다.


규제 총량 관리는 규제혁신의 출발이자 핵심이다. 규제 총량 관리는 경제 활동에 대한 안전망 역할을 한다. 규제 정책은 개별 사업과 시민들의 행동이 사회 전체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결정돼야 하기 때문이다.

둘째, 규제 총량은 경제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한다. 자원의 지속 가능한 이용은 글로벌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상황에서, 각종 산업과 개인의 활동이 자원 소모를 고려한 규제하에 이뤄져야 한다. 규제 총량 관리는 에너지, 자원, 환경 등의 측면에서 과도한 소비와 오남용을 방지하며 지구 환경을 보호하는 데 일조한다.

규제 총량은 경제의 공정성을 증진시킨다. 규제가 과도하게 강화되면 경제 활동이 제약을 받아 혁신과 경제 성장이 어려워질 수 있지만, 반대로 규제가 미흡하면 부정경쟁과 불공정한 시장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규제 총량 관리는 이러한 균형을 맞추어 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유도한다.

나무도 보고 숲도 보아야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보는 것도, 나무만 보고 숲을 애써 외면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 규제 샌드박스와 같이 신기술과 신서비스 분야에 규제 특례를 적용하는 제도와 함께 규제 총량을 관리하는 ‘규제 전광판’ 제도도 시행돼야 한다. “총량 관리에 치중하다 보면 양적인 결과에만 치중할 것”, “정작 필요한 규제는 손도 못 대고 해결하기 쉬운 규제만 해결하려 할 것”이라는 변명은 하지 말자. 이러한 변명으로 일관한 결과, 1만4685개였던 규제가 8년 만에 8만7830개로 증가했으니 말이다.

규제 전광판에는 매일 매일의 규제 변동이 기록되고 관리돼야 한다. 중앙정부의 규제는 물론이고 지방자치단체의 규제까지 포함해 관리돼야 한다. 우리나라의 규제가 몇 개인지, 어느 지역, 어느 산업, 어느 분야에 규제가 몇 개나 존재하는지, 국민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투명하고 정확하게 공개돼야 한다. 규제 혁신의 시작과 끝은 규제 총량 관리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2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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