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준환 증권부장
이후 각국에서 행복한 부탄을 배우고 따라하자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과분한 욕심은 버리고 긍정적인 태도로 느긋한 인생을 사는 부탄 트렌드가 유행을 탔다. 글로벌 경제위기로 팍팍해진 현대인들에겐 정신적 탈출구가 필요했던 것이다. 급기야 2012년 UN(국제연합)은 3월20일을 세계 행복의 날로 정하고 세계행복보고서도 발간했다.
사실 부탄은 행복한 적 없었다는 분석도 있다. 실업과 자살율도 높았다. 2010년 부탄을 스타로 만든 보고서는 유럽 신경제재단(NEF)이 경제여건을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논란이 있었던 통계다. 이 해프닝에서 부탄의 소득이 없었던 건 아니다. 갈길은 멀지만 산업화 열망과 교육열이 커졌고 국민 전체의 식견이 넓어졌다.
그런데 유독 시장에서 변화가 없던 분야가 있다. 기업공개(IPO) 시장이다. 그들만의 리그로 수십년간 운영돼온 탓에 시장이 어떻게 변하는지도 모르고 과거의 행태를 지금까지 이어왔다. IPO를 하는 기업들은 공모자금에 눈이 멀어 미래의 매출을 선행실적으로 땡겨오고, 가이드 의무를 진 주관사 IB(투자은행) 부서는 이를 묵인한 채 서류를 넘긴다.
IPO 전까지 월급은 물론 법인카드도 쓰지 않던 경영진들은 IPO 문턱을 넘는 순간 돈 잔치를 벌이고, 거래처에서 당겨왔던 매출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IB 선수들은 이정도를 가벼운 일탈로 간주해 넘어갔던 게 현실이다. 최근 불거진 파두의 사기성 상장도 다르지 않았는데 '선을 너무 넘었을 뿐'이지 본질적으로 잘못된 행위라는 인식은 적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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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 인해 상장 예비기업들이 유탄을 맞아 상장일정이 무기한 연기될 정도로 시장 전반에 타격을 입혔는데도 파두 측은 거래처 상황이 좋지 못해 매출이 끊겼을 뿐 인지하진 않았다는 변명으로 일관한다. 예전처럼 시장이 어리석었다면 넘어갔을 수 있으나 지금의 시장은 어설픈 변명을 받아들이는 수준이 아니다.
피해를 본 예비상장 기업들은 아쉽겠지만 이 참에 IPO를 잠시 미루더라도 제도 전반을 점검하고 넘어가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부정적 IPO는 시장 근간을 헤치고 결국 투자자들의 외면으로 이어진다. 파두 (17,190원 ▼410 -2.33%) 사태로 외국인과 기관 투자자들이 대거 수요예측 시장에서 떠나는 모습이 나타났는데, 기본이 바뀌지 않으면 주기적으로 이런 현상이 되풀이 될 것이다. 기업과 증권사 실무자들이 경각심을 갖고 시장을 두려워하는 시각을 가져야 한다. IPO 시장이 썩는 고인물이 된다면, 한국증시는 행복한 부탄보다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