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세 누린 '대투자가' 멍거가 못 이룬 버킷리스트, 참치 낚시 [김재현의 투자대가 읽기]

머니투데이 김재현 전문위원 2023.12.0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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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대가들의 투자를 통해 올바른 투자방법을 탐색해 봅니다.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 /사진=X(옛 트위터)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 /사진=X(옛 트위터)


지난달 28일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99세의 나이로 별세했습니다. 그동안 정정한 모습을 보여줬던 찰리 멍거가 내년 1월 1일 만 100세 생일을 앞두고 갑자기 세상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고 있습니다.

미국 경제방송 CNBC의 앵커 베키 퀵(Becky Quick)도 마찬가지입니다. 퀵은 오랜 시간 워런 버핏 버크셔 회장과 멍거 부회장의 인터뷰를 도맡아 해왔으며 매년 5월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 때는 주주들이 보내온 질문을 선별해서 버핏에게 전달하는 등 각별한 인연이 있어서 더 그런 것 같습니다.



베키 퀵은 CNBC방송에서 멍거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계속 눈시울이 붉어지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퀵은 멍거의 만 100세 생일을 위한 특별 기획을 준비 중이었는데요, 몇 주 전 멍거와 진행한 미공개 인터뷰 영상을 지난 29일 일부 공개했습니다.

멍거가 못다 이룬 꿈은 200파운드짜리 참치 낚시
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의 찰리 멍거 /사진=CNBC 영상 캡쳐생전 마지막 인터뷰에서의 찰리 멍거 /사진=CNBC 영상 캡쳐
이날 퀵은 멍거에게 '버킷리스트'가 있는지, 하고 싶은 일이 있는지 묻습니다. 멍거의 버킷리스트라니, 궁금한데요.



멍거는 "아주 재밌는 질문입니다"라고 대답한 후 한참 뜸을 들이다가 말문을 엽니다.

멍거는 "좀 더 젊다면 200파운드(약 90㎏)짜리 참치를 잡기 위해서 아무리 많은 돈이라도 내놓을 텐데… 나는 한 번도 (200파운드짜리참치를) 잡아본 적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또 멍거는 "이제 96세 때와 비교하면 너무 늙고 힘이 약해져서 더 이상 200파운드짜리 참치를 잡고 싶지 않아요. 참치를 잡으려면 너무 힘들고 상당한 체력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멍거는 지금은 기회가 주어진다고 해도 거절하고 참치를 잡으러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나서 잠시 멈추더니 "시간이 지나면서 포기하게 되는 것들이 생기게 마련"이라고 덧붙입니다.


지난해 말 멍거가 인도 투자자 모니시 파브라이에게  보낸 연말 감사 카드/사진=모니시 파브라이 X(옛 트위터)지난해 말 멍거가 인도 투자자 모니시 파브라이에게 보낸 연말 감사 카드/사진=모니시 파브라이 X(옛 트위터)
젊을 때부터 낚시하는 걸 좋아한 멍거는 200파운드짜리 참치를 꼭 한 번 잡고 싶었던 것 같네요.

그런데 수많은 기부를 했음에도 26억달러(3조4000억원)의 재산을 남겼을 뿐 아니라 미국 사회에 큰 족적을 남긴 멍거의 솔직한 고백을 듣자니 인생의 무상함이 느껴집니다. 세월의 흐름은 아무리 성공한 사람도 피해갈 수 없다는 사실이 실감나구요.



하지만 멍거가 99세가 되는 동안 포기해야 했던 것들만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노년이 되면서 새롭게 받아들인 즐거움도 있습니다. 퀵이 "꽤 바쁜 일정이 있지 않느냐. 줌도 활용하고 조찬, 오찬 약속도 많은 걸로 알고 있다"고 하자, 멍거는 그런 걸 좋아한다며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제대로 된 노년의 모습"이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계획한 게 아니라 그냥 그렇게 됐고 환영하면서 받아들였다고 덧붙입니다.

멍거가 못 잡은 200파운드짜리 참치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점은 두 가지 같습니다. 먼저, 우리가 200파운드짜리 참치를 잡을 기회가 있는 동안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참치를 잡기 위해 나서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서 포기해야 할 때는 미련 두지 말고 우리 앞에 놓인 새로운 기회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멍거는 버크셔 해서웨이가 어떻게 거대한 기업이 됐는지에 대한 소회도 밝혔습니다. 멍거는 "워런과 자신이 작고 보잘것없는 규모로 시작할 때만 해도 수천억 달러는 고사하고 1억달러 규모가 될 거라고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결과입니다"라고 감탄했습니다.



무엇이 성공을 이끌었냐는 퀵의 질문에 대해, 멍거는 "다른 사람들보다 덜 미쳤고 다른 사람들보다 덜 멍청했던 게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대답합니다. 또 "우리가 90대까지 살면서 대부분의 사람들보다 훨씬 오래 달릴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며 이 두 가지가 정말 큰 도움이 됐다고 말합니다. 물론 멍거와 버핏이 갈수록 현명해진 것도 도움이 됐구요.

올해 버핏이 꼽은 멍거 어록
99세 누린 '대투자가' 멍거가 못 이룬 버킷리스트, 참치 낚시 [김재현의 투자대가 읽기]
올해 2월 발표된 워런 버핏의 주주서한에서 특이한 대목은 버핏이 오랜 파트너인 찰리 멍거의 어록을 거의 한 페이지에 걸쳐 나열한 부분입니다. 버핏은 멍거와 자신이 생각하는 게 비슷하지만 자신이 한 페이지로 설명할 때 멍거는 한 문장으로 요지를 설명한다고 칭송했습니다. 또 멍거의 설명은 언제나 논리정연하고 기교적이며 어떤 사람이 보기에는 직설적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버핏이 뽑은 멍거 어록 15개 중 10개를 골라봤습니다.

1. 내가 알고 싶은 전부는 내가 어디에서 죽을 것인지이며 나는 결코 그 곳에 가지 않을 것이다. 관련된 생각으로는 일찍 여러분이 바라는 자신의 부고를 쓰고 거기에 맞춰 행동하는 게 있다.
2. 세상은 어리석은 도박꾼들로 가득 차 있으며 이들은 인내심 있는 투자자만큼 좋은 성과를 올리지 못할 것이다.
3. 만약 여러분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면, 왜곡된 렌즈로 바라보면서 무언가를 평가하는 것과 같다.
4. 인내심은 배울 수 있다. '긴 주의 지속 시간(long attention span)'과 한 가지에 오랫동안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는 것은 엄청난 이점이다.
5. 만약 항해할 수 있는 보트로 헤엄쳐갈 수 있다면 가라앉는 보트의 물을 퍼내지 마라.
6. 훌륭한 기업은 여러분이 일하지 않을 때도 계속해서 일한다. 그저 그런 기업에게는 어림없는 일이다.
7. 벤저민 그레이엄이 말하길 "단기적으로 주식시장은 투표기(voting machine)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체중계(weighing machine)와 같다." 만약 여러분이 무언가 가치있는 걸 계속해서 만든다면, 현명한 사람들이 알아채고 사기 시작할 것이다.
8. 투자에 있어서 100% 확실한 기회는 없기 때문에 레버리지 사용은 위험하다. 높은 수익을 연달아 올려도 한번 제로(0)를 곱하면 결국 0이 된다. 두 번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지 마라.
9. 훌륭한 투자자가 되고 싶다면 여러분은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 세계가 변하면 여러분도 변해야 한다.
10. 워런, 좀 더 생각해보게. 자네는 똑똑하고 나는 옳으니까.



버핏은 멍거와 통화할 때마다 항상 웃으면서 새로운 걸 깨달았다며 멍거 어록에 자신의 원칙 하나를 덧붙였습니다. "아주 영리하고 훌륭한(high-grade) 파트너(여러분보다 약간 나이가 많으면 더 좋다)를 찾아서 그가 말하는 걸 매우 주의깊게 들어라."

그동안 우리에게 아낌없이 지혜와 가르침을 나누어 준 고(故) 찰리 멍거(1924~2023)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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