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종 못 지킨 손자의 눈물 "할머니께 우승 선물 드리기 위해", 벼랑 끝 슈퍼맨을 신도 도왔다 [PBA]

스타뉴스 안호근 기자 2023.12.01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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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재호가 11월 30일  '하이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PBA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울먹이고 있다. /사진=PBA 투어조재호가 11월 30일 '하이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PBA 결승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울먹이고 있다. /사진=PBA 투어


 우승을 확정하고 기뻐하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우승을 확정하고 기뻐하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엄마 같았던 할머니다."

그런 외할머니의 마지막을 지키지 못했다. 조재호(43·NHJ농협카드)는 더욱 절실해졌다.



조재호는 30일 강원도 정선군 하이원 그랜드호텔에서 열린 '하이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PBA 결승전에서 '벨기에 강호' 에디 레펀스(SK렌터카)를 세트스코어 4-1(15-13, 15-5, 12-15, 15-5, 15-11)로 꺾고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 시즌 왕중왕전 격인 월드챔피언십에서 정상에 섰던 조재호는 7개 투어, 8개월 만에 다시 우승을 맛봤다. 통산 4번째 우승이다.



다비드 마르티네스(스페인·크라운해태)와 다승 공동 2위로 어깨를 나란히 했다. 우승 상금 1억 원을 보탠 그는 시즌 상금랭킹도 14위에서 3위(1억 1550만 원)로 끌어올렸다. 통산 상금은 6억 1850만 원으로 4위에서 3위로 올라섰다.

뒤늦게 프로 무대에 합류한 조재호는 지난 시즌 개막전 프로 첫 우승 후 최단 기간에 4회 우승이라는 쾌거를 썼다. 종전 기록은 프레드릭 쿠드롱의 844일(27개월 22일)이었는데 조재호는 521일(17개월 3일)로 크게 앞당겼다.

 조재호가 샷을 고민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조재호가 샷을 고민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샷 이후 공을 바라보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샷 이후 공을 바라보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결코 쉽지 않은 여정이었다. 조재호는 128강부터 16강까지는 윤영환, 이반 마요르(스페인), 조건휘(SK렌터카), 황형범을 차례로 모두 셧아웃시켰다. 문제는 8강 이후였다. 이영훈(에스와이)에 풀세트 접전 끝에 3-2로 이겼는데 마지막 5세트도 11-10으로 진땀승을 거뒀다. 준결승에선 안토니오 몬테스(스페인·NH농협카드)에게 4-3으로 역전승을 거뒀는데 7세트는 역시나 11-10으로 이겼다.


두 차례나 탈락 위기를 견뎌내고 올라선 조재호에게 결승 무대는 오히려 수월했다. 1세트 7-11로 끌려갔지만 7이닝 6득점을 몰아치며 13-11로 역전했고 8이닝 13-13으로 동점을 이룬 레펀스를 뒤로하고 2점을 더해 세트를 마무리했다.

2세트에도 5점과 7점 하이런을 앞세워 15-5로 손쉽게 승리를 챙겼다. 승리의 여신이 조재호를 향해 웃는 듯 했다.

그러나 레펀스는 3세트 반격했다. 12-8로 앞서 있었지만 레펀스가 7이닝에 7점을 몰아치며 단숨에 세트를 따냈다.

기세를 쉽게 넘겨주지 않았다. 4세트 선공을 잡은 조재호는 초반부터 6득점했고 2이닝에서 8점을 내며 세트포인트에 도달했다. 3이닝째에 나머지 한 점을 더한 조재호는 우승까지 단 한세트만을 남겨뒀다.

5세트 레펀스가 선공을 잡고도 3이닝 동안 공타에 그치자 조재호는 2-2-3점을 차곡차곡 쌓으며 7-0으로 크게 앞서갔다. 4이닝과 5이닝에도 득점을 보탠 조재호는 무섭게 추격해 10-11 역전에 성공한 레펀스에 밀리지 않고 한 번에 5득점, 경기를 끝냈다.

 조재호(가운데)가 우승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조재호(가운데)가 우승 후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사진=PBA 투어
 시상식에서 두 팔을 번쩍들고 기뻐하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시상식에서 두 팔을 번쩍들고 기뻐하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두 팔을 번쩍 들며 기뻐한 조재호는 경기장에서 펼쳐진 공식 인터뷰에서 눈물을 흘리며 돌아가신 외할머니에 대한 애정을 나타냈다.

PBA에 따르면 시상식 후 가진 우승자 인터뷰에 나선 조재호는 이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지난달 12일 NH농협카드 챔피언십 32강전에서 응우옌 프엉린(하이원리조트)에게 패한 조재호에게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아내였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비보였다. 발인은 바로 다음날 새벽이었다. 발인은 놓치지 않았지만 대회를 치르느라 임종은 지킬 수 없었다.

조재호는 "시합을 하고 있으니 이모들과 어머님이 일부러 연락을 안 하셨던 것"이라며 "곧바로 달려가서 발인까지 마치고 잘 보내드렸다. 사실 내 어릴 때 부모님이 일을 하셔서 할머니 손에 컸다. 엄마 같은 할머니"라고 말했다.

이어 "돌아가시기 전까지 TV에서 제 경기만 찾아서 보시고, 경기도 의정부에 계셨기 때문에 틈틈이 시간이 날 때마다 찾아뵀다"며 "이번 대회 오기 전에 할머니 생각하면서 다음 시합 때는 정말 열심히 쳐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께 우승을 선물 드리자는 마음으로 왔는데, 생각보다 빨리 이뤄져 너무 기쁘다"고 우승의 기쁨을 돌아가신 외할머니께 돌렸다.

운도 많이 따랐다. 조재호는 "지난 시즌 월드챔피언십 우승 이후 이번 시즌 개막전부터 1회전(128강) 탈락은 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지만 32강~8강에서 탈락이 반복되다 보니 이게 더 좋지 않더라"며 "4강 이상의 입상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있었다"고 전했다.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행운도 겹치며 우승까지 거머쥘 수 있었다. 조재호는 "이전 대회 때는 8강과 4강에서 쉽게 이기면 항상 결승에서 지더라. '저승사자'라고 하지 않나. 죽다 살아나서 돌아오면 잘 친다는 말이 있다. 8강에서는 정말 졌다고 생각했는데 살아났다"며 "4강에서 같은 상황이 반복되다 보니 '이건 우승해야한다'고 생각했다. 신이 도와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결승 초반에 더욱 집중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결승을 돌아보면 레펀스 선수에게 공이 조금 아쉽게, 나에게는 풀어 칠 수 있는 찬스가 왔다. 1세트 13-13에서 레펀스 선수가 시도한 뱅크샷이 다소 두껍게 맞으면서 실패했고 내게 온 기회를 살린 것이 승부처가 됐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결승에서 격돌한 레펀스(왼쪽)과 포옹을 나누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결승에서 격돌한 레펀스(왼쪽)과 포옹을 나누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효하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우승 트로피를 들고 포효하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다만 그의 우승을 두고 누구도 행운의 결과라 말하지 않는다. 조재호는 지난 시즌 시즌 최우수선수(MVP)로 등극했고 벌써 다승 2위로 올라섰다. 이날도 경기 후 휴식할 시간이 충분치 않았지만 결국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며 우승을 일궈냈다.

통산 상금 랭킹 순위를 끌어올린 그는 "돈도 중요하다(웃음). 올해 벌써 7차전이 끝났다. 지난 시즌에는 잘 했는데 올해 성적을 못 내서 아쉬웠다"며 "일각에서는 '좋은 선수 몇 명 들어오니 조재호도 안 되네'라는 얘기도 들었다. 1년에 한 번씩 우승해야겠다는 목표를 잡았는데 시즌이 끝나기 전에 우승을 이뤄 다행"이라고 전했다.

자존심을 되찾은 대회였다. "한 층 성숙해질 수 있는 계기가 된 대회였다. 포기하지 않는다는 마음이 중요하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절대 포기하지 않다 보니 역전이라는 것이 나왔다. 그래서 이 트로피까지 든 것이다. 한 순간도 포기하지 말자는 생각이 가장 중요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최강자의 자리에 올라선 조재호지만 이변이 넘치는 PBA 무대에선 절대 방심할 수 없다. 그는 "라이벌과 경기하는 게 가장 편하다. 졌을 때 '질 수 있지' 싶고 부담이 없다"며 "그런데 잘 알려지지 않는 선수와 경기가 잡히면 '그 경기는 이겼네요'라고 (주변에서) 말할 때가 가장 부담스럽다. (그냥) 이기는 게 어딨나. 세계 최강도 어디서 질 지 모르는 것이 PBA다. 이름값이 떨어진다고 그 선수는 이겼다고 하면 내게도 역시 상처가 된다. 그래서 부담스럽다. 만약 세미 사이그너 선수나 다니엘 산체스 선수와 경기하면 오히려 신난다. 그런 경기를 앞두고 있으면 '또 어떤 명승부가 나올까', '관심이 집중이 됐으면 좋겠다' 싶다. PBA가 잘 돼야 선수들도 좋은 환경에서 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큰 짐 하나를 덜었다. 다음 목표는 이제 곧 재개될 팀 리그다. 조재호는 "개인 목표를 이뤘으니, 우리 팀(NH농협카드)을 우승 시키는 게 가장 큰 목표"라며 "이제 4라운드가 시작하는데 팀원들을 잘 다독여서 포스트시즌 정상까지 가겠다. 우선 우승했으니 우승 턱을 한번 쏘겠다. 그리고 좋은 성적으로 팀리그 포스트시즌 마무리를 잘 하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조재호(왼쪽)가 이삼걸 하이원리조트 대표이사와 우승 트로피를 함께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PBA 투어 조재호(왼쪽)가 이삼걸 하이원리조트 대표이사와 우승 트로피를 함께 들어올리고 있다. /사진=PBA 투어
 우승 후 주먹을 불끈쥐고 있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우승 후 주먹을 불끈쥐고 있는 조재호. /사진=PBA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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