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허물어진 온·오프 경계, 누가 시장지배자인가

머니투데이 정인지 기자 2023.12.01 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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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유통업계 관계자들에게 e커머스 시장이 확대된 뒤 가장 큰 변화를 꼽으라면 의외로 '빠른 배송'보다 '가격 비교'를 꼽는다. 파 한단, 두부 한 모를 100원 더 싸게 사기 위해 마트를 굳이 오가는 소비자들은 많지 않다. 그러나 핸드폰에서 손가락을 몇번 움직이는 것으로 물건을 더 싸게 살 수 있다면? 당연히 소비자들은 최저가를 찾는 데 익숙해진다.

가격 비교는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구매 선택권을 주는 동시에 온·오프라인 유통 경계를 허물었다. 가구전시장에서 침대를, 백화점에서 옷을, 가전판매점에서 TV를 실물로 본 뒤 온라인에서 최저가를 검색해 구매하는 소비 패턴은 이제 사람들에게 익숙한 일이다. 최근 팝업스토어에서는 '경험'만 제공하고 아예 물품을 판매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화장품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화장품은 소비자들이 직접 체험해보고 사는 오프라인 중심 상품으로 여겨졌지만, 젊은이들은 코로나19(COVID-19)를 거치면서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 후기를 보고 사는 데 익숙해졌다. 한 업계 관계자는 "화장품도 결국 기성제조품 중 하나"라며 "같은 브랜드의 같은 제품이라면 소비자들은 보다 저렴한 곳에서 구매하게 돼 있다"고 말한다. 쿠팡이 지난 7월 럭셔리 뷰티 브랜드 전용관 '로켓럭셔리'를 공식 출시하고 화장품 사업을 강화한 것도 오프라인 매장없이 온라인만으로도 승부해 볼 수 있다고 판단해서다.

화장품 기업들도 소비자들이 몰리는 유통채널을 찾아 빠르게 변화에 적응하고 있다. 크리니크, 맥, 에스티로더 등 유명 브랜드를 다수 보유한 세계 3위의 화장품 기업 에스티로더는 온라인 매출 비중이 29%며, 특히 중국에서는 60%가 넘어간다. 아모레퍼시픽은 방문판매 조직을 대폭 축소하고 고급 브랜드인 설화수까지 온라인 판매에 나섰다. 소비자도, 기업도 물건을 사고 파는 게 중요하지 그 공간이 온라인인지 오프라인인지 따지지 않는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조만간 H&B(헬스앤뷰티)스토어 CJ올리브영의 불공정행위와 시장지배력 남용 여부에 대한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올리브영의 시장을 오프라인으로 한정하면 올리브영의 시장점유율은 71%까지 치솟는다. H&B 형태의 유통업체가 거의 없는 데다 코로나19 이후 가두점들도 대폭 사라진 탓이다. 반면 온라인까지 합하면 점유율이 15%로 급격히 떨어진다. 쿠팡을 비롯한 e커머스들이 뷰티 사업을 키우고 있고, 화장품 기업들은 자사몰을 내세우고 있다.

공정위가 시장을 어떻게 구분하느냐에 따라 올리브영에 부과될 수 있는 과징금은 수천억원의 차이가 난다. 역대 최대 과징금이 부과될 수도 있다. 하지만 시장이 올리브영 제재를 주목하는 이유는 역대 최대 과징금이 부과될지 여부 때문만은 아니다. 온오프의 경계가 허물어진 시장에서 시장지배적 사업자를 보는 정부의 판단 기준이 담기기 때문이다. 공정위의 '역사적 판단'이 임박했다.

정인지 산업2부정인지 산업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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