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 자네가 잘못 생각한 거야"…직설 날렸던 고 찰리 멍거

머니투데이 김재현 전문위원 2023.11.2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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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근처 살았지만 1959년에야 첫 만남,
버핏의 투자 방식 바꾸는 데 큰 영향 준 '파트너'…
멍거 부회장, 100세 생일 한 달가량 앞두고 별세

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AP=뉴시스워런 버핏과 찰리 멍거/AP=뉴시스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이 향년 99세로 28일(현지시간) 별세했다. 멍거 부회장은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의 파트너로서 둘은 버크셔를 오늘날 시총 7850억달러(1020조원)의 거대 기업으로 키웠다.

블룸버그, FT(파이낸셜타임스) 등 외신에 따르면 버크셔는 보도자료를 내고 멍거 부회장이 이날 아침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병원에서 평화롭게 영면했다고 밝혔다. 버핏은 "찰리의 영감, 지혜, 동참이 없었다면 오늘날의 버크셔 해서웨이를 만들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1965년 버핏은 쓰러져가는 방직업체 버크셔 해서웨이를 인수했으며 버크셔는 1965년부터 2022년까지 주주들에게 S&P 500지수의 두 배에 달하는 연평균 19.8%의 수익률을 안겨줬다. 57년간 누적 수익률은 무려 378만7464%에 달한다.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에 따르면 멍거는 약 22억달러(약 2조8600억원)어치의 버크셔 지분을 보유하고 있으며 전체 자산은 약 26억달러(약 3조3800억원)에 달한다.



버핏은 직설을 꺼리지 않는 멍거를 '끔찍한 노맨(abominable no-man)'이라고 장난스럽게 부를 정도로 깊이 신뢰했다. 버핏은 2002년 버크셔 주총에서 멍거를 옆에 두고 "'자네는 제대로 판단하고 있지 않아'라고 말할 수 있는 파트너를 가진 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다"고 말한 바 있다.

1950년대 초기 투자시절 버핏은 '가치 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의 영향으로 별 볼일 없는 회사를 싼값에 사는 '담배꽁초 투자(Cigar Butt Investing)'에 집중했지만, 1959년 멍거를 만난 후 점차 사업의 질과 성장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투자 철학이 바뀌었다.

1972년 멍거의 조언으로 버핏은 순자산이 800만달러에 불과한 고급 초콜릿업체 씨즈캔디를 주가순자산비율(PBR) 3배가 넘는 2500만달러라는 거금에 매수하면서 저평가된 주식에 투자하는 담배꽁초 투자방식에서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훌륭한 기업에 투자하는 방식으로 전환하기 시작한다. 버핏의 명언 중 하나인 "적당한 회사를 훌륭한 가격에 사는 것보다 훌륭한 회사를 적당한 가격에 사는 게 훨씬 낫다"도 씨즈캔디를 통해서 깨달은 교훈이다.


이후 버핏의 깨달음은 1988년 코카콜라 주식 매수를 거쳐 2016년 애플 주식 매입으로까지 이어졌다.

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 /사진=블룸버그찰리 멍거 버크셔 해서웨이 부회장 /사진=블룸버그
버핏과 멍거는 모두 미국 중서부 네브라스카주 오마하에서 태어났지만, 버핏이 오마하에서 계속 살아온 반면 멍거는 서부 로스엔젤레스에서 주로 생활했다. 멍거가 공화당을, 버핏이 민주당을 지지한 데서 볼 수 있듯 둘의 생각이 항상 동일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멍거와 버핏은 미국의 의료보험 개혁, 정부의 금융산업 감독 등 여러 주요 이슈에서 같은 의견을 드러냈다.

찰리 멍거는 1924년 1월 1일 오마하에서 알프레드 멍거와 플로렌스 멍거의 세 자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연방 판사였으며 아버지도 하버드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한 변호사였다.

멍거의 집은 버핏이 살던 곳 근처였으며 멍거와 버핏 모두 어릴 때 버핏의 할아버지 어네스트 버핏이 운영하던 식료품 가게에서 일했으나 당시에 서로 만나지는 못했다.

17세 때 멍거는 미시건대에 입학해서 수학을 전공했다. 2학년 때인 1942년 멍거는 미 육군항공대에 입대한 후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칼텍)으로 보내져 기상학을 배웠으며 알래스카에서 기상장교로 복무했다. 1946년 멍거는 학사 학위 없이 하버드대 로스쿨에 지원했다 떨어졌으나 가족의 친구였던 전임 하버드 로스쿨 학장이 개입한 후 입학허가를 받았다. 멍거는 로스쿨 재학 중 '하버드 로 리뷰'에 참여했으며 335명 중 12명만이 수여받은 마그나 쿰 라우데(Magna cum laude·우수) 자격으로 졸업했다.

졸업 후 멍거는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로펌에서 일하기 위해 캘리포니아로 이주했다. 나중에 멍거는 '멍거, 톨스 & 힐스'라는 로펌을 설립했으며 1962년에는 '휠러, 멍거 & CO'라는 투자 파트너십을 시작했다.

이후 버핏의 영향으로 멍거는 로펌을 그만두고 투자자로 변신한다. 이에 앞서 1959년 부친상을 당해 오마하에 들른 멍거는 버핏과 처음으로 만났으며 이후 2023년 11월 28일 멍거가 사망할 때까지 둘은 파트너로서 서로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1960~1970년대 버핏과 멍거는 매일 서너 시간씩 전화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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