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게인3’, 감동 끌어올리는 치트키는?

머니투데이 이설(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11.29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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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르네상스기 연 1990년대 음악을 다시 듣는 기쁨

68호, 사진=방송 영상 캡처68호, 사진=방송 영상 캡처


JTBC ‘싱어게인’이 처음 방송된 건 2020년 10월이다. 엇비슷한 오디션 프로그램의 범람 이후 서서히 이런 서바이벌 포맷이 싫증 날 무렵 나왔다. 당연히 큰 기대는 없었다. 오히려 뭐가 더 있을까 하는 피로감이 앞섰다. 그러나 재야의 고수, 무명 신인, 재기를 노리는 가수 등 다양한 사연을 간직한 ‘뉴페이스’의 등장으로 단숨에 시청자들의 눈길을 붙들었다. 일련번호 아래 자신의 이름을 숨긴 채 오로지 실력으로 경쟁하는 모습이 아름답고 감동적이었다. 시즌1의 톱3인 이승윤, 정홍일, 이무진. 2021년 시즌2의 우승자 김기태 등 스타가 탄생했다.



지난 10월 26일 시작된 시즌3는 기대와 우려가 교차했다. 이제 3번째 시즌을 맞이하는데 자기복제의 한계를 넘을 수 있을까. 새로운 감동을 자아낼 수 있을까. 그런데 의구심이 무색할 정도로 관심을 끌고 있다. 첫 회 시청률 4.8%로 시작해 2회 6.7%, 3회 7.3%, 4회 6.8%, 5회 7.1% 등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 이번에도 출연자들이 가슴에 번호표를 달고 있는 건 그대로다. 개인전을 하다가 단체전을 하고 심사위원들이 점수를 매기는 방식은 여전하다. 하지만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다.

참가자들이 빼어난 가창력으로 또 한 번 기대를 초월하고, 심사위원들이 따뜻하고 진심 어린 심사평을 전달하기 때문이다. 가슴을 울리는 열창과 실력자를 알아보는 심사위원들의 심미안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나 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선곡(選曲)의 미학’이다.



개인전 첫 순서로 나온 1호부터 선곡이 심상치 않았다. 그가 선택한 곡은 빛과 소금의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 1991년에 발표된 곡이다. "제발 내 곁에서 떠나가지 말아요/그대 없는 밤은 너무 싫어∼". 이별의 쓸쓸함과 그리움을 발라드 선율에 맞춰 서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1호의 깊고 풍부한 가창력과 함께 잊고 있던 추억을 되살렸다. 빛과 소금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곡이 ‘샴푸의 요정’이지만 이 곡 또한 1990년대 K-팝의 감성을 상징적으로 잘 드러내는 것 같았다.

59호,사진=방송 영상 캡처59호,사진=방송 영상 캡처
하이톤의 59호는 1990년 발표된 이상은의 ‘사랑할거야’로 ‘7어게인’을 받으면 1라운드를 통과했다. ‘사랑할거야’는 1988년 MBC 강변가요제 대상을 받으며 혜성처럼 등장한 이상은이 히트곡 ‘담다디’에 이어 내놓은 곡이다. "우∼리 이제는 좋아하게 될 거야/지나 버린 시간들이/다시 되돌아오면∼". 빠른 템포지만 중력이 느껴지는 발라드로 큰 인기를 모았다. ‘우∼리’라는 첫 소절만 들어도 금세 같이 따라 하게 되는 마법이 있었다.


통기타를 들고 수수한 매력을 뿜어낸 68호의 선곡도 놀라웠다. 1999년 롤러코스터가 발표한 ‘습관’. 롤러코스터 1집에 수록된 이 곡은 국내에 낯설었던 애시드 재즈(Acid Jazz)라는 장르를 알린 작품이다. "Bye Bye/Bye Bye Bye/얼마나 많이 기다렸는지/너를 내게서 깨끗이 지우는 날∼습관이라는 게 무서운 거더군/아직도 너의 사진을 물끄러미 보면서∼". 원곡자인 보컬 조원선의 음색에선 프로페셔널한 분위기가 가득한데 부스스한 머리의 68호가 통기타로 뽑아내는 보이스에선 아마추어적이지만 맑고 순수한 감성이 반짝반짝 빛났다.

56호가 건반을 두드리며 부른 박진영의 ‘니가 사는 그집’도 1993년을 강타했던 노래다. 강렬한 외모의 박진영은 매우 파격적인 의상과 퍼포먼스, 통속적이긴 해도 섬세한 가사로 1990년대 K-팝 장르를 한층 더 풍성하게 했다. "니가 사는 그 집/그 집이 내 집이었어야 해∼/니가 타는 그 차/그 차가 내 차였어야 해∼".

이 밖에도 ‘싱어게인3’의 선곡에선 귀에 익거나 혹은 편한 20∼30년 전 K-팝이 쏟아져 시청자의 귀를 호강시키고 있다. 47호가 로맨틱한 감성의 끝을 보여준 김성호의 ‘회상’(1992년). "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지/그녀는 조그만 손을 흔들고∼보고 싶은 마음 한이 없지만/찢어진 사진 한 장 남질 않았네∼". 46호+56호가 듀엣으로 열창한 댄스곡 김건모의 ‘스피드’(1996년). "널 처음 본 순간 느꼈어/널 이제 내 여자로 만들고 싶어∼". 18호+26호가 하모니를 맞춘 조용필의 컨템포러리 장르 ‘슬픈 베아트리체’(1992년). "슬픈 그대 베아트리체/떠나버린 나의 사랑아∼사랑이여 사랑이여/이 생명 다하는 날까지∼". 비록 탈락했으나 3호+52호가 합작한 김건모의 슬픈 발라드 ‘아름다운 이별’(1995년). "눈물이 흘러∼이별인 걸 알았어/힘없이 돌아서던/너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듣고 있으면 가슴이 울리고 추억이 돋았다. 이런 명곡이 있었지 하는 감탄에 빠졌다.

실로 수많은 명곡들이 오디션 곡으로 선택됐는데 이들은 모두 1990년대를 관통하는 K-팝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56호, 사진=방송 영상 캡처56호, 사진=방송 영상 캡처
1990년대 K-팝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성에 있다. 1970년대가 통기타를 중심으로 한 포크 뮤직과 한국적 록의 태동기였다면 1980년대는 록 기반의 밴드 음악이 본격화하고 한국형 발라드가 탄생한 시기였다.

아울러 음악을 즐기는 연령층도 낮아지면서 1980년대 말부터 젊은 가수들이 대거 약진하고, 음악적 장르는 무척 다양해졌다. 발라드 변진섭, 댄스 김완선, 록 신해철, 팝 발라드 015B 등이다. 그리고 1992년 댄스와 록, 랩과 힙합을 버무린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다. 현대적인 K-팝의 시작이었다.

이즈음 SM엔터테인먼트 같은 K-팝 전문 기획사가 등장했고, 스타 작곡가와 프로듀서가 생겨났다. 이들 전문가들의 손길을 거쳐 H.O.T, 젝스키스 같은 소위 1세대 아이돌이 탄생한 것도 1990년대 중후반이다.

즉, 1990년대는 다양한 형태의 K-팝이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뜨겁게 혼재하는 시대였다. 장르로는 록, 발라드, 댄스, 트로트 등 한계가 없었고, 가수의 존재방식으로는 솔로는 물론 듀오나 혼성그룹, 아이돌 등 제한이 없었다.

아울러 1990년대 K-팝은 모든 세대 친화적이었다. 4050 세대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노래였고, 당시의 K-팝을 겪지 못한 2030 세대에겐 전혀 새로운 장르이자 동시에 매우 신선한 레트로 센세이션이었다.

특히 요즘처럼 아이돌 그룹이 장악하다시피 한 국내 음악시장에서 1990년대 K-팝은 상대적이고 차별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다. 변화무쌍한 장르와 멜로디, 기승전결이 분명한 리듬과 가사, 그리고 무엇보다 청중들이 함께 따라부를 수 있다는 점에서 공감과 카타르시스의 매력이 굉장하다고 할 수 있다. ‘싱어게인3’는 바로 이것을 영리하게 엮어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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