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영 국민의힘 동작갑당협위원장이 서울 동작구 한 건물에 '대형견 여러분 잠시만요, 입마개로 아이들과 작은 친구들을 지켜주세요'란 현수막을 걸었다. 법적으로 입마개 의무 착용 대상은 맹견 5종 뿐이다. 대형견 보호자들은 현수막 문구가 차별과 혐오를 조장한다며, 비판을 쏟아냈다. 현수막은 결국 내려졌다./사진=장진영 당협위원장 SNS
"대형견 여러분 잠시만요. 입마개로 아이들과 작은 친구들을 지켜주세요."
대형견은 입마개를 해달란 부탁. 그 이면(裏面)엔 대형견이라면 공격할 수 있단 의미가 내포돼 있었다. '어떤' 대형견이란 말이 없으니, '모든' 대형견으로 자연스레 지칭됐다. 또 빨간 글씨로 쓴 '지켜주세요'의 대상은 아이들과 작은 친구들.
동물보호법상 입마개를 의무적으로 착용토록 돼 있는 대상은 맹견 5개종(도사견, 핏불테리어, 아메리칸 스태퍼드셔 테리어, 스태퍼드셔불테리어, 로트와일러)뿐이다. 그러나 대형견 보호자들은 산책할 때마다 "입마개 왜 안 하느냐"는 시비에 많이 걸린다고 했다.
이를 본 대다수 대형견 보호자들은, 장 위원장의 현수막을 비판했다. 대형견에 대해 사람들의 편견·혐오를 강화할 수 있단 거였다.
'대형견은 공격성이 있구나. 그러니 전부 입마개를 해야 하는 구나'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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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견 보호자들 "몸집 하나로 무섭고 사납다고 단정, 분노 치밀어"
목줄을 하지 않은 작은 소형견(흰 개)이, 목줄을 하고 얌전히 걷던 대형견 루시(검은개)를 향해 맹렬히 짖고 공격성을 보이는 모습. 대형견 보호자들이 산책시 자주 겪는 일이란다. 공격성은 크기와는 관계가 없다./사진=루시 보호자님 제공
4마리의 중대형견과 1마리의 소형견을 키운단 보호자는 "산책하는 도중에 매일 적어도 한 번, 많으면 4~5번씩 시비와 비난을 받는다"고 했다. 놀랄 정도로 소리 지르는 사람, 큰 개를 왜 여자가 데리고 다니냐는 사람, 물 것 같이 생겼단 사람 등이었다. 그는 "가장 심하게는 '보신탕 끓여 먹으면 딱 좋을 크기'란 말까지 들어봤다"고 했다.
굳이 이런 사진을 가져와야만 '대형견=공격성 혹은 위험한 개'가 아님이 애써 증명될까. 순둥순둥해 아이들이 만져도 가만히 받아주는 말라뮤트 두부./사진=말라뮤트 두부 보호자님.
공격성과 크기는 무관하단 걸, 평생 키우고 곁에서 보며 증명한 사례. 또 다른 대형견 보호자도 "우리 집 대형견도 소형견에게 엉덩이를 물린 적이 있다"며 "안 그래도 아슬아슬한 대형견 혐오를 대놓고 해서, 정말 화가 났었다"고 했다.
사모예드 노엘이와 한 아이가 함께 사진을 찍었다./사진=노엘이 보호자님
진도 장군이와 다른 소형견들이 나란히 산책을 잘하는 사진. 부천에서 키울 땐 개모차에서 뛰어내려, 장군이에게 달려든 소형견도 있었단다. 소형견 보호자는 "입마개를 안 했으니 우리 애가 달려 들었다"며 황당한 소릴 했단다./사진=장군이 보호자님
해맑게 웃으며 풀밭을 산책하는 봄이./사진=봄이 보호자님
은송이 보호자도 "개를 싫어하거나 무서운 사람도 있을 거다. 그러나 대형견 견주들은 그런 부분에 굉장히 예민하고 유달리 촉이 발달해 있다"며 "누군가 불편해하면 정말 빨리 알아채고, 길을 돌아 피하거나 배려해준다"고 했다.
동네 초등학교 학부모들 "어린이집, 초등학교 밀집…겁 먹고 놀라는 경우 많아"
/삽화=김현정 디자인기자
이들은 통학로가 좁고, 인근엔 아파트 공사 현장이 있어 차 한 대가 지나다니기도 버거운 도로라고 했다.
상도초등학교 학부모 회장은 "통학로 자체가 위험한데, 교육 시설이나 인근 어린이집이 밀집돼 있다. 대형견이 입마개를 하지 않고 오면 아무래도 덩치에 대한 위압감이 있으니 겁 먹고 놀라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런 고충이 있으니 서로 조심하자는 취지에서 양해를 요청하는 현수막이었다"며 "대형견 보호자들 입장도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 분들도 타인을 배려하고 상생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장진영 위원장 "주민 민원 들어와 설치, 현수막은 내려…간담회로 의견 수렴하겠다"
장진영 국민의힘 동작갑 당협위원장 SNS에 쏟아진, 대형견 보호자들의 비판들./사진=장진영 위원장 SNS
당사자에게 현수막을 설치한 취지와 비판에 대한 입장을 들으려 연락했다.
장 위원장은 "초등학교 앞에만 현수막을 달았다. 아이들이 많고 길이 좁아, 개까지 나오면 피할 데가 없어 힘들단 주민들 민원이 많았었다"고 했다. 그는 "그 지점을 어린이보호구역 같은 개념으로 만들 필요가 있단 차원에서 (대형견 보호자들에게) 협조 요청을 한 것"이라고 했다.
즐겁게 산책하는 월이와 뭉이. 평범한 반려견과의, 평온한 산책을 바랄뿐이란다./사진=월이와 뭉이 보호자님
장 위원장은 "현수막은 일단 내렸고, 간담회를 통해 각자의 입장과 의견을 청취하려 한다"며 "안전에 관해선 견주들과 일반 주민들 생각 차이가 크다. 그런 부분은 자꾸 논의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종착점은 개를 아무나 키우게 하면 안 된단 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 "개의 성격은 크기가 아니라, 기질과 양육으로 결정…현수막이 잘못된 인식 심어줄 수 있어"
밤 산책을 하는 봄이 모습./사진=봄이 보호자님
이규상 트레이너는 "개의 성격은 크기가 아닌 기질과 양육으로 결정된다"고 했다. 공격성이 크기와 무관하단 얘기다. 그러면서 그는 "현수막 사진과 문구는 개물림 사고에 대한 건전한 토론이 아닌, 대형견에 대한 혐오 의식을 키우고, 큰 개들은 입마개를 해야 한단 잘못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독일 사례를 들려줬다. 2000년대 초 독일에서도 개물림 사고로, 개의 위험 분류를 체고와 무게 등으로 손쉽게 구분하는 논의가 있었단다. 그러나 오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주마다 맹견이나 공격성이 있는 개에게만 '베젠테스트'란 체계적 평가를 하게 했다. 이를 거쳐 입마개 착용 여부를 결정하게 한 거다.
다른 개와 나란히 걷는 루시의 즐거운 산책길./사진=루시 보호자님
설채현 놀로 행동클리닉 원장 수의사도 저서 '그 개는 정말 좋아서 꼬리를 흔들었을까?'에서 입마개 논란과 관련해 언급한 바 있다.
쓰다듬어 주는 이들 사이에서 얌전히 있는 사모예드 노엘이./사진=노엘이 보호자님
공격성에 대한 건 몸체 크기와 무관하다. 특히나 공격성 검증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내년부터 '기질 평가' 제도를 도입하는 거다. 동물 건강 상태, 행동, 소유자 통제 능력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서 공격성을 판단한다. 대상 역시 맹견이거나, 맹견은 아니지만 위해를 가한 개, 공격성이 있는 경우 등에 한해서만 기질 평가를 한다.
"키 180센티미터가 넘는 남자한테 맞으면 더 아프다는 이유로 그런 사람들에게 집 밖에 나갈 때마다 수갑을 차라고 요구하는 건 비합리적이지 않은가요?"
봄이가 앞발을 보호자에게 살포시 포갰다. 둘이 맞잡았다. 순한 봄이는 산책할 때 아무런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그런데도 다가와 시비거는 이들이 많다. 사진을 찍으며 신고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저런 개 못 다니게 해달라고 들으란듯 혐오한다. 가끔 봄이 보호자님 남동생이 산책을 시킬 때가 있다. 그럴 땐 시비 걸린 적이 없다고. 누구도, 함부로, 그렇게 차별하고 혐오할 권리는 없다./사진=봄이 보호자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