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만 못해" vs "부정맥 시급"…물꼬 트인 비대면 진료, 엇갈린 반응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3.11.28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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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면만 못해" vs "부정맥 시급"…물꼬 트인 비대면 진료, 엇갈린 반응


정부가 비대면 진료를 재외국민(국외에 거주하면서 한국 국적을 유지)부터 제도화하겠디고 밝히면서 의료계 해묵은 과제였던 비대면 진료가 물꼬를 트였다. 이번에 재외국민을 대상으로 정한 건 정부와 의료계의 이견이 적기 때문이지만, 정부가 점차 비대면 진료의 대상을 확대할 경우 향후 의료계의 적잖은 파장이 예상된다.

그간 비대면 진료에 날을 세워온 단체는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와 대한약사회(이하, 약사회)다. 정부의 이번 비대면 진료의 첫 제도화 발표 이후 28일 현재까지 두 단체가 공식적으로 내놓은 입장은 없다. 다만 의협은 지난 5월 대한치과의사협회·약사회와의 공동 성명 때와 입장이 같다고 본지에 밝혀왔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2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비대면 진료는 지금까지 국민의 건강을 증진하고 수호해 온 검증된 방식인 대면 진료와 비교해 동등한 수준의 효과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성공적인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위해 정부는 계도기간 동안 보건의료전문가단체인 대한의사협회와 상시적인 논의를 이어가야 한다.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의 보조적 수단으로만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의료계에선 "의협이 개원가 중심의 단체이고,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는 순간 동네 의원보다 병원급으로 환자들이 몰릴 것을 우려해 강하게 반대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대한약사회가 지난 9월 실시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현황 조사에서 비급여 의약품의 종류별 처방 비율. / 자료=대한약사회대한약사회가 지난 9월 실시한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현황 조사에서 비급여 의약품의 종류별 처방 비율. / 자료=대한약사회
약사회는 정부의 재외국민 비대면 진료 제도화 발표에 대해 기존 입장을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윤영미 대한약사회 정책홍보수석은 28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약사들이 비대면 진료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겠다는 게 아니고 비대면 진료가 환자 안전과 국민 건강을 해치지는 않을지 점검해 제대로 실행하는 게 중요하다"며 "고위험의 비급여 의약품, 마약류 등향정신성 의약품, 탈모약, 호르몬제 등 위험성이 높은 약품에 대해서는 처방의 문턱을 낮추지 않게끔 안전장치를 강화해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는 비대면 진료 시 비급여 의약품 처방이 남발될 수 있다는 우려다. 실제로 지난 9월 약사회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현황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비급여의약품 처방이 57.2% 절반 이상을 차지했고, 그중에서도 사후피임약이 매우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에 참여한 약사들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의 어려움에 대해 ▲처방전 진위여부 확인(30.3%) ▲환자 본인확인(27.6%) ▲사전 상담 등의 행정업무 가중 등을 꼽았다. 김대원 약사회 부회장은 "비대면 진료 시범사업을 적어도 6개월은 관찰해야 정확한 흐름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대한부정맥학회는 비대면 진료 합법화를 가장 먼저 적용해달라는 입장이다. 차태준(고신대 복음병원) 대한부정맥학회장은 "부정맥 환자의 편의와 안전을 위해 '심장 내 삽입 장치(CIED)'에 대한 비대면 진료의 일환으로 원격 모니터링을 할 수 있는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간 부정맥 환자의 심장에 이식해온 CIED는 원래 환자의 부정맥 정보·신호를 의사에게 보내는 원격 모니터링 기능을 갖추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원격 모니터링이 불법이라는 점에서 이 기능을 지난 30여년간 아예 꺼두고 사용해온 실정이다. 현행법상 환자에 대한 원격 모니터링 등 원격 의료를 시행하는 게 불법이기 때문이다.

"대면만 못해" vs "부정맥 시급"…물꼬 트인 비대면 진료, 엇갈린 반응
차태준 부정맥학회장은 "부정맥 환자에게 심장 리듬의 변화가 불시에 나타나면 매우 치명적일 수 있다"며 "기존엔 환자가 병원에 정기적으로 내원해야 CIED로부터 정보를 분석할 수 있었지만, 원격 모니터링 제도가 도입되면 내원 일정과 무관하게 담당 의사가 중요한 정보를 얻어 빠른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원격 모니터링 합법화 시도에 대해 의협의 반발은 거세다. 이필수 의협회장은 "의료의 본질과도 같은 '환자 대면 원칙'이 훼손되면 국민 건강에 커다란 위해를 초래할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의협은 △원격의료가 대면 진료를 어느 정도 보조할 수 있는지 과학적 분석자료와 정확한 통계자료가 아직 없다는 점 △원격의료의 안전성과 효과성이 충분히 검증되지 않았다는 점 △우리나라는 대문만 열고 나가면 즉시 원하는 전문의에게 진료받을 수 있을 정도로 병·의원 접근성이 좋다는 점 등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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