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봄'으로 돌아본 역대 전두환은?

머니투데이 윤준호(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11.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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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사진=플러스엠엔터테인먼트


영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이 겨울 극장가에 봄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불과 개봉 엿새 만에 200만 고지를 넘어섰다. 올해 중순 개봉돼 ‘1000만 고지’를 밟은 영화 ‘범죄도시3’ 이후 가장 빠른 흥행세다.

반응도 뜨겁다. 단순히 "재미있다"로는 설명이 안 된다. "보는 내내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평이 줄잇는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해 스트레스와 심박동 지수를 체크한 후 이를 인증하는 챌린지까지 유행이다.



단연 주목받는 캐릭터는 전두광이다. 배우 황정민이 연기했다. 전두광이 1979년 발생한 12·12사태를 주도한 전두환 씨를 극화시킨 캐릭터라는 것은 세상이 다 안다. 하지만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는 ‘홍길동전’처럼 전두환을 전두환이라 부르지 못하고 있다. 영화적 상상력을 배가시키기 위한 장치라 볼 수 있다. 그런데 곰곰이 따져보면 그동안 여러 작품 속에서도 이런 사례는 많았다. 과연 그동안 전 씨는 어떻게 그려졌을까?

스크린 속 전두환 씨가 등장했던 대표적인 영화 ‘26년’(2012)였다. 강풀 작가의 원작을 스크린으로 옮긴 이 작품 속에서 정확한 배역명은 ‘그 사람’이었고, 배우 장광이 맡았다. 이 영화는 ‘그 사람’의 암살 시도를 다뤘다. 그러니 상대적으로 실명을 쓰는 것이 더 부담스러웠을 법하다. 그런데 정광이 전 씨를 연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그는 이보다 앞서 MBC 드라마 ‘삼김시대’(1998)에서 전 씨 역을 맡은 바 있다. 그의 헤어스타일이 전 씨와 유사한 것이 그 이유였던 것으로 해석된다.



전 씨가 보다 직접적으로 영화 속에 등장한 건 우민호 감독이 연출한 ‘남산의 부장들’이다. ‘서울의 봄’ 제작사가 만들었던 이 작품은 12·12사태 직전 박정희 전 대통령 암살 사건을 다뤘다. 여기서는 배우 서현우가 전 씨를 연기했고, 극중 이름은 ‘전두혁’이었다. 출연 분량이 많진 않지만 전 씨의 모습이 보다 직접적으로 노출됐기 때문에 눈길을 끌었다. 게다가 극 중 전두혁은 비열한 인물로 그려졌다. 대통령이 암살되는 10·26 발생 직후, 대통령 집무실에 숨어든 전두혁은 금고를 열고 현금과 금괴를 훔쳐 나온다.

12·12사태를 전면에 다룬 영화는 ‘서울의 봄’이 최초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12·12사태를 비롯해 전 씨를 등장시킨 작품이 다수 제작됐다. 2005년 방송된 MBC 드라마 ‘제5공화국’(2005)이 대표적이다. 여기서는 전두환이라는 실명이 작품 속에서 그대로 사용됐고, 배우 이덕화가 그 역을 소화했다. 평소 가발을 쓰는 것으로 잘 알려진 이덕화가 가발을 벗고 이 역을 맡았다는 점과 함께 이덕화의 연기력을 새삼 확인할 수 있는 기회였다.

'26년' 장광, 사진=청어람'26년' 장광, 사진=청어람

하지만 대한민국에서 ‘전두환 전문 배우’로 잘 알려진 배우는 따로 있다. 지난 2013년 숨진 박용식이다. 1967년 TBC 공채 탤런트 4기로 데뷔한 박용식은 민머리 때문에 1980년대 전두환과 닮았다는 이유로 방송 출연을 금지당하는 고초도 겪었다. 당시 그가 10년간 방앗간을 운영하며 생계를 유지했다는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후 연기활동을 재개한 박용식은 드라마 ‘제3공화국’(1993), ‘제4공화국’(1995)에서 전두환 역을 맡았다.

전 씨는 자신으로 인해 박용식이 연기 활동을 할 수 없었던 것에 대해 사과를 전하기도 했다. 박용식은 사망 전 한 방송에 출연해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닮았다는 이유로 억지로 방송출연 정지 처분을 받아야 했다. 분하고 억울했다. 화도 났지만 방법이 없었다"면서 "나중에 퇴임 후 ‘내가 만나서 사과라도 해야 되겠다’고 해서 만났다. 사람이 살다보면 피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도 있는 것 같다"고 심경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왜 전 씨 관련 작품들은 대부분 실명 사용을 피하는 것일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에는 적잖은 각색이 들어간다. 극적 재미를 높이기 위한 장치다. 그런 과정 속에서 사실 왜곡이나 비하 논란이 불거질 수도 있다.

‘서울의 봄’을 연출한 김성수 감독은 ""처음에는 실명을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면서도 "이름을 조금이라도 바꾸니까 되게 자유로워지더라. 그 사람을 영화 속에 넣은 것이 아니라, 그 시대를 겪으면서 내가 느끼고 생각하는 인물을 그 안에 집어넣으니까 훨씬 자유로워지더라. 그들은 승리했고, 그날 그런 사진을 찍은지도 몰랐다. 자리까지 일일이 배치해서 승리했다며 사진을 찍었더라. 그들의 승리의 역사로 기록되기 싫었다"고 실명을 사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실명 사용은 여러모로 제작진에게 부담을 준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손 치더라도, 과거의 일이기 때문에 디테일한 부분까지 검증해 팩트 만을 이야기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실명을 쓴 ‘제5공화국’의 경우도 법률 자문을 받으며 표현 수위를 고민했다. 하지만 방송 직후 박철언 전 의원은 "‘제5공화국’ 제작진이 ‘수지김 간첩 조작사건’과 관련해 허위사실을 방영해 명예를 훼손했다"며 MBC를 상대로 10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고, 재판부가 화해권고를 결정했으나 박 전 의원 측이 이에 불복해 이의신청을 제기했다. 그 결과 2007년 재판부는 "피고들은 원고에게 2000만 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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