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갈 아닙니다" 주말 새벽 단체 출근한 넥슨 직원들

머니투데이 최우영 기자 2023.11.27 1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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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 판교사옥 전경. /사진=넥슨넥슨 판교사옥 전경. /사진=넥슨


게임업계가 때 아닌 '남혐(남성혐오)' 논란에 휩싸였다. 남성혐오 커뮤니티에서 한국 남성을 조롱하는 뜻으로 쓰이는 손 모양이 게임 PV(홍보영상) 곳곳에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인지한 일부 게임업체 직원들은 주말 새벽 출근을 불사하며 문제의 영상을 온라인에서 내리는 등 즉각적인 대응에 나섰다.



해당 PV의 원화(그림) 작업을 맡은 외주사 역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애니메이터를 모든 작업에서 배제하며 진화에 나섰다. 외주제작사나 해당 일러스트레이터가 의도를 가지고 원화에 해당 손 모양을 넣어 피해를 입혔을 경우 게임사들이 민사 소송까지 제기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게이머들 경악한 '나쁜 손' 뭐길래?
2017년 폐쇄된 메갈리아 대표 이미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2017년 폐쇄된 메갈리아 대표 이미지. /사진=온라인 커뮤니티
논란은 지난 25일부터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시작됐다. 넥슨, 넥슨게임즈, 호요버스 등 다수의 게임사 PV 영상에서 '메갈리아' 손 모양을 억지로 넣은 정황이 포착됐다는 증언이 이어졌다. 이 손 모양은 과거 폐쇄된 메갈리아부터 여전히 활동 중인 워마드 등 여성 우월주의 커뮤니티로 알려진 곳에서 "한국 남성의 작은 성기"를 비하하기 위해 쓰이는 '밈'(온라인에서 유행하는 표현)으로 알려졌다.



해당 손 모양은 2021년 편의점 GS25의 행사 포스터에도 등장해 논란이 된 바 있다. 소비자들의 항의가 이어지자 조윤성 GS리테일 (22,850원 ▲150 +0.66%) 당시 사장이 직접 사과에 나섰다. 이후에도 BBQ, 무신사, 신한은행 등의 홍보 이미지에서도 유사한 손 모양이 발견되면서 각 기업들이 서둘러 포스터를 수정하거나 게재를 중단하는 일도 벌어졌다.

이번에 문제가 된 게임 영상을 만든 '스튜디오 뿌리'는 지난 26일 공식 소셜미디어에 올린 입장문에서 "게임을 즐기는 유저들, 믿고 일을 맡겨주신 업체들, 이 사태를 지켜보는 많은 분께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면서도 "의도하고 넣은 동작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주요 고객 '남성'인 게임사들의 기민한 대처
던전연파이터 1주년 PV. /사진=유튜브 캡처던전연파이터 1주년 PV. /사진=유튜브 캡처
해당 애니메이터가 관여한 작업량이 상대적으로 많은 넥슨은 지난 26일 새벽 '비상 동원령'을 내렸다. 누리꾼이 발견한 10여가지 문제 영상을 삭제 조치하고, 이 밖에도 해당 애니메이터가 관여한 영상을 모두 들여다보기 위해서였다. 일부 영상에서는 프레임 단위로 해당 손 모양이 정교하게 삽입된 점도 확인됐다.


이 같은 대처는 앞서 3년 전 벌어졌던 '메갈 사태'에 따른 학습효과라는 평이다. 2018년 XD글로벌이 서비스하는 게임 '소녀전선' 캐릭터의 일러스트를 그린 작가의 소셜미디어에서 메갈리아지지 글이 발견된 뒤 남성 위주로 구성된 게이머들의 대대적인 불매가 이어졌다. 당시 나딕게임즈의 클로져스, 스마일게이트의 소울워커 원화를 외주 제작한 일러스트레이터들도 같은 논란에 휘말리며 제작사의 사과, 일러스트레이터 교체 등이 단행됐다.

업계 관계자는 "게임사 상당수가 남성을 주요 고객으로 하지만, 서브컬처 장르는 특히나 남성 비중이 높은 편"이라며 "스튜디오 뿌리에서 원화를 작업한 게임 중 상당수가 서브컬처 팬덤을 보유하고 있고, 이들이 불매에 나설 경우 게임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울 수 있다는 판단 아래 게임사들이 즉각 대처에 나선 것"이라고 바라봤다.

구체적 손해 산정되면 민사소송까지 가능
4.19와 5.18을 일베식으로 표현한 이터널 클래시. /사진=이터널 클래시4.19와 5.18을 일베식으로 표현한 이터널 클래시. /사진=이터널 클래시
이번 사태는 과거 기업들이 홍역을 앓았던 '일베' 사태와 유사한 측면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2016년 게임사 '네시삼십삼분'이 서비스하던 게임 '이터널 클래시'는 챕터 4-19를 '반란 진압', 챕터 5-18을 '폭동'으로 이름 지어 논란이 됐다. 4.19혁명을 반란으로, 5.18 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바라보는 일베식 역사관이 담겼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네시삼십삼분과 개발사 벌키트리 모두 대표가 직접 사과하며 진화에 나섰다.

2013년에는 도서출판 미래인이 미국 작가 제임스 패터슨의 작품 '내 인생 최악의 학교' 번역본을 내면서 '바보처럼 당했다'는 표현을 "민주화됐다"는 일베식 표현으로 써 논란이 됐다. 당시 출판사와 번역자 모두 사과하고 도서를 전량 회수 조치했다. 이 밖에도 일베 유저들이 일베식 밈을 합성해 만든 각종 이미지가 공중파 뉴스와 교과서 등에 삽입되는 등의 논란도 있었다.

당시 일베 논란으로 손해를 입은 일부 기관의 경우 피해를 끼친 구성원 등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번 게임 PV 사태 역시 일러스트레이터와 스튜디오 뿌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나온다.

법조계 관계자는 "영상에 삽입된 손 모양이 온라인에서 남성 혐오의 뜻으로 쓰이는 밈을 의미한다는 게 확실하다거나 일러스트레이터가 의도를 갖고 그린 게 맞다면, 이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게임사들이 새벽에 출근하는 등 조치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가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다"면서도 "영상 속 손 모양이 진짜 해당 밈인지 아니면 '우연히' 일치한 것인지에 대해 다퉈보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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