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재 바람' 여긴 비껴가…中팹리스, 韓기업 시총 10배만 7곳 [차이나는 중국]

머니투데이 김재현 전문위원 2023.11.26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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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차이 나는 중국을 불편부당한 시선으로 바라봅니다.

중국 반도체산업전시회에서 발표중인 웨이샤오쥔 교수/사진=중국 인터넷중국 반도체산업전시회에서 발표중인 웨이샤오쥔 교수/사진=중국 인터넷


중국 반도체 산업을 생각하면 사람들은 "미국 제재로 막다른 길에 몰려 있으며 아직 기술력이 없어서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D램과 낸드플래시를 대량 구매한다"를 가장 먼저 떠올릴 것 같다.



하지만 팹리스(반도체설계), 파운드리(반도체수탁생산), 후공정(팩키징·테스트)으로 연결되는 반도체 밸류체인에서 중국이 우리나라를 월등히 앞서가는 분야가 있다. 바로 팹리스다.

얼마 전 국내 최초의 팹리스 유니콘으로 각광받던 파두의 2분기 매출이 5900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뻥튀기 상장' 논란이 불거졌다. 파두의 시가총액은 약 1조원으로 LX세미콘(시총 1조5100억원)에 이어 상장 팹리스 기업 중 2위다.



중국 팹리스 기업 규모는 파두와 비교도 되지 않는다. 매출은 나중에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중국 팹리스 기업 중 원화로 계산한 시가총액이 10조원 이상인 기업만 7곳에 달한다. 중국은 파운드리 분야는 미국의 제재로 반도체 제조장비 도입이 어려워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팹리스 기반은 탄탄하게 다져 놓은 상태다.

지난 10일 중국 반도체 학계의 대부 웨이샤오쥔(魏少軍) 칭화대 반도체학과 교수가 광저우에서 열린 중국 반도체산업전시회(ICCAD 2023)에서 중국 반도체설계 산업 현황을 소개했다. 이날 웨이 교수는 화웨이의 '메이트60 프로'와 창장메모리(YMTC)의 3D 낸드플래시도 언급했는데, 이들이 중국 반도체 산업에서 가지는 중요성을 알 수 있다. 중국 팹리스 산업을 살펴보자.

中팹리스 기업은 3451곳…팹리스 시총 1위는 28조원
'제재 바람' 여긴 비껴가…中팹리스, 韓기업 시총 10배만 7곳 [차이나는 중국]
웨이샤오쥔 교수는 중국 반도체산업협회의 반도체설계분회 이사장을 맡고 있는 중국 반도체설계 최고 권위자다. 지난 10일 중국 반도체산업전시회에서 웨이 교수는 최근 몇 년간 중국 팹리스 기업 수가 계속 증가했지만, 올해 증가 속도가 둔화됐다고 밝혔다. 2023년 중국 팹리스 기업 수는 3451곳으로 작년(3243곳) 대비 208곳 늘었지만, 증가속도는 2020~2022년 대비 느려졌다.


중국 팹리스 매출도 성장을 지속했지만, 역시 성장속도는 둔화됐다. 웨이 교수는 올해 중국 팹리스 매출 예상치로 5774억위안(104조원)을 제시하며 지난해 대비 8% 성장할 것으로 내다봤지만, 증가율은 전년보다 8.5%포인트 둔화됐다.

'제재 바람' 여긴 비껴가…中팹리스, 韓기업 시총 10배만 7곳 [차이나는 중국]
중국 팹리스의 성장속도는 둔화됐지만, 개별 팹리스 기업을 들여다보면 이미 규모의 경제를 달성한 기업이 많다. 지난 22일 오전장 주가를 기준으로 중국 상장 팹리스 7대 기업을 정리해봤다. 중국 팹리스 시가총액 1위는 서버용 CPU를 설계하는 하이곤(HYGON)으로 시총이 1560억위안(28조원)에 달했다.

하이곤은 AMD로부터 이전받은 x86기술을 이용해, 서버용 CPU를 개발했으며 중국 내수시장에서 인텔, AMD와 경쟁하고 있다. 올해 1~3분기 누적매출은 39억4000만위안(7100억원)을 기록했다.

중국 팹리스 시총 2위는 윌 세미컨덕터(Will Semiconductor)로 시총 1254억위안(22조5700억원)이다. 이미지센서(CIS), 디스플레이 구동칩(DDI), 전력관리반도체(PMIC), 아날로그 칩을 개발하는 중국 최대 팹리스 기업이다. 앞서 언급한 국내 LX세미콘도 주로 DDI를 개발해서 LG디스플레이, 중국 BOE에 납품하고 있다. 올해 1~3분기 윌 세미컨덕터의 매출은 150억8000만위안(2조7100억원)으로 하이곤을 멀찌감치 따돌렸지만, 수익성은 하이곤에 뒤처진다.

윌 세미컨덕터는 중국 기업 중 유일하게 올해 2분기 전 세계 팹리스 '톱10'에 진입하며 9위를 차지한 업체이기도 하다.

맥스센드 테크놀러지(Maxscend Technologies)는 시총 723억위안(13조원)으로 중국 팹리스 시총 3위를 차지했다. 이 회사는 무선 주파수 집적회로(RFIC)에 특화된 기업이다. 올해 1~3분기 매출은 30억7000만위안(5530억원)을 기록했다.

중국 팹리스 시총 4위는 시총 705억위안(12조6900억원)의 화룬 마이크로(CR Micro)다. 전력반도체가 주력 제품이며 자체 파운드리 사업도 가지고 있는 업체로 올 들어 9월까지 75억3000만위안(1조355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이 밖에도 몬타지 테크놀로지, 기가 디바이스, 궈신 마이크로의 시총이 600억위안(10조8000억원)을 뛰어넘는 등 중국 팹리스 상장기업 중 7개사 시총이 10조원을 초과했다. 매출 역시 모두 스타트업 수준을 훌쩍 뛰어넘은 수준이다.

또한 비상장기업 중 화웨이 자회사 하이실리콘도 빼놓을 수 없다. 이번에 화웨이가 내놓은 '메이트60 프로'에 탑재된 7나노(㎚·1나노미터=10억분의 1m) 칩도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칩이다. 하이실리콘은 이미 2020년 5나노공정의 '기린9000'을 설계해서 대만 TSMC에서 생산했으나 미국 제재로 생산이 중단됐다. 하이실리콘은 2020년 상반기 글로벌 10대 반도체 기업에 중국 기업으로는 최초로 진입했으나 그해 8월 미국이 화웨이 및 모든 계열사에 대한 수출 제한 조치를 취하면서 매출이 급감해 순위권 밖으로 밀렸다.

中팹리스의 두 가지 문제점과 한 가지 건의
'메이트60 프로'에 탑재된 기린9000s/사진=wccftech닷컴'메이트60 프로'에 탑재된 기린9000s/사진=wccftech닷컴
지난 10일 중국 반도체산업전시회에서 웨이샤오쥔 교수가 지적한 중국 팹리스 산업의 5대 현상 중에서는 두 가지 문제점이 눈에 띈다.

'국산대체'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
웨이 교수는 반도체 '국산 대체'가 가져온 기회를 냉정하게 직시하고 기회를 살려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수십년간 수입 반도체에 의존해오던 대규모 전자설비를 중국산 반도체로 전환해야 하기 때문에 중국 반도체 기업이 직면한 도전이 크다는 얘기다. 예컨대, 기존 시스템 사양에 기반한 시스템 공급업체의 교체 요구 사항은 국산 칩의 호환성에 대해 매우 까다로운 잣대를 갖다 대고 있다. 웨이 교수는 여기에 대한 중국 팹리스 기업의 준비가 충분한지 물었다.

첨단반도체 개발 미비
중국 반도체 산업에서 첨단반도체 개발은 가장 중요한 전략적 목표이지만, 대부분의 중국 팹리스기업은 중저가 반도체 개발에 몰두하고 있으며 일부 선두업체만 첨단반도체를 개발하고 있는 상황이다. 웨이 교수는 미국이 반도체 수출통제를 통해 중국에게 첨단반도체를 안 팔 뿐 아니라 중국이 첨단반도체를 생산하는 것도 억제하고 있다며 이로 인해 중국의 슈퍼컴퓨터, 인공지능(AI)에 필요한 고성능반도체 조달에 문제가 생겼다고 지적했다.

웨이 교수가 다른 한편으로는 "외국 제품이 자발적으로 철수한 시장을 중국 팹리스 기업이 채울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라고 말한 것도 재밌는 대목이다. 다만 웨이 교수는 적지 않은 기업들이 이 점을 알고 상당한 노력을 쏟고 있지만, 첨단반도체 부문은 여전히 부진하다고 평가했다.

웨이 교수가 중국 팹리스 업계에 던진 건의 중에서도 눈에 띄는 게 있다. 바로 '기술 축적 집중과 지속적인 설계 역량 향상'이다. 웨이 교수는 반도체는 탄생부터 혁신이 견인해온 산업이라며 기술진보와 기술축적을 강조하면서 기술혁신을 통해서 3나노까지 발전한 공정 기술 진보와 반도체설계자동화(EDA) 도구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것을 주문했다. 미국은 반도체 수출 통제를 통해 중국의 10나노이하 공정 개발을 노골적으로 막고 있으며 미국 텃밭인 EDA의 대중국 수출제재에도 나선 상황이다.

여기서 웨이 교수가 재밌는 말을 했다. "14나노, 심지어 28나노 반도체로 7나노 제품의 성능을 내는 게 진정한 고수"라는 발언이다. 웨이 교수는 SMIC가 제조한 7나노칩이 탑재된 화웨이의 '메이트60 프로'와 YMTC의 3D 낸드플래시를 중국 반도체 기술 집적의 성과로 들었다.

과연 중국 팹리스기업이 14나노로 7나노 반도체의 성과를 창출할 수 있을지 지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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