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노동부가 지난 9일 전국 중소기업 사업장들에 배포한 '안전보건교육기관 사칭 주의보 안내'. 고용노동부도 불량 교육, 컨설팅 업체들이 공식 허가나 인증을 받았다며 중소기업을 속이는 불량 교육기관들이 있다는 사실을 안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허가받고 인증받았다 하지만 정식 명칭은 등록 교육기관"이라며 "산업안전보건공단 홈페이지에 등록기관을 공개했으니 사설 교육을 받기 전에 반드시 확인하시라"라고 말했다./사진제공=고용노동부.
#경기도의 모 금속가공 업체도 올초부터 팩스, 전화로 "중대재해법 교육받으시라"는 연락을 매일 한통 이상씩 받는다. 팩스에 보면 "재해 단속 기간입니다", "교육 미이수 사업장 안내"라는 문구가 있어 김모 대표는 겁이 났다. 교육을 안받으면 처벌받을 것 같았다. 나중에 알고보면 고용노동부나 산업안전보건공단 허가, 인증을 받았다는 문구는 전부 사기였다. 한 팩스는 윗단에 "정부 기관을 사칭하는 불법업체가 기승하니 주의 바랍니다"라고 써놓고, 본인들도 미등록 업체였다. 하지만 김 대표는 올초에 이 사실을 몰랐고, 수백만원을 들여 컨설팅을 받았다.
23일 본지가 중소기업들이 받은 팩스에 적힌 컨설팅 업체들 이름을 고용부 데이터베이스에 검색하니 미등록, 미허가 업체가 수두룩하다. 자체적으로 법률 자문을 받을 수 있는 중견기업, 대기업은 속을 리 없지만 중소기업은 행정력 부족으로 법을 숙지하지 못하고, 공포감에 컨설팅을 받는다. 더구나 고용부, 산업안전보건공단의 '공식 컨설팅'이 부실하고 수혜 기업도 적어 문제다.
그런데 등록업체, 심사 통과 업체를 사칭하는 불량 업체들이 기승이다. 고용부가 이들 규모를 정확하게 파악은 못했지만, 지난 4월 피해 접수기간을 운영해 경찰에 수사 의뢰도 했다. 지난 9일에는 공식 카카오톡 오픈채팅방 '중대재해 사이렌'에 사칭 주의보 안내를 했다.
직원이 10명 남짓 되는 경기도의 한 금속가공 업체가 지난달에 받은 팩스. 본인들이 고용노동부 인증 기관이라며 중대재해처벌법 대비 교육을 해준다고 했다. 이런 팩스가 날마다 매일 다른 업체에서 하나씩 온다고 한다. /사진제공=경기도 금속가공 업체 A사
더구나 중대재해법의 용어가 안전관리자, 보건관리자, 안전보건관리담당자 등 법률 전문성이 없는 중소기업인들이 이해하기에 어렵고, 50인 미만 기업에도 대기업과 동일한 수준의 '행정 준비'를 요구하니 영세 기업들 사이에는 '누가 컨설팅을 해주면 좋겠다', '뭘 준비하라는 건지 모르겠다'는 분위기가 상존한다. 대기업에 재직하다가 중소기업으로 이직한 한 임원은 "법 요구사항을 보면 대기업도 전담팀을 만들어 대응할 분량"이라며 "그런데 우리 기업은 행정 직원이 두명"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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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대재해법은 작업별로 '위험성 평가'를 해야 하는데 평가 양식을 만드는 행정 부담이 크다. 양식을 공들여 만들어도 제대로 만든 건지, 나중에 뭘 빠뜨렸다고 문제가 되진 않을지 기업들은 불안해한다. 1000만원 컨설팅을 받은 세제 제조업체 대표는 "누구도 제대로 도와주지 않으니, 준비를 하면서도 불안하다"며 "나중에 사고가 났을 때 '난 충분히 준비했다'고 소명하려고 컨설팅비를 결제했다"고 말했다.
고용부, 산업안전보건공단(공단)의 '공식 컨설팅'이 부실하다는 지적은 꾸준하다. 경상북도의 모 화학 기업은 공장이 수백평인데 공단 직원 한명이 한시간 둘러보고 "다른 업체들도 가야 한다"며 떠났다. 참고할 자료라도 줘야 하는데 "복사를 안 해왔다"며 공단 직원이 가져온 서류를 보여주기만 했다. 해당 업체도 1000만원을 내고 사설 컨설팅을 받았다. 부실한 컨설팅이라도 받으면 다행이다. 공단 컨설팅을 지난해 50인 미만 기업 1만4000곳, 올해 1만6000곳밖에 못 받았다. 50인 미만 기업 68만곳의 4.4% 수준이다.
중소기업들은 내년 1월 적용 예정인 중대재해법을 최소 2년 추가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같은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22일 열린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상정되지 않았다. 더불어민주당은 중소기업들이 준비를 하지 못한 데 정부가 사과하고, 2년 유예하면 정부가 어떻게 지원할지 로드맵을 제시해야 법 개정에 동참한다고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