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최인호의 뮤지컬 '겨울나그네'

머니투데이 박동우 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2023.11.22 0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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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우(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박동우(무대미술가·홍익대 공연예술대학원 교수)


'박동우와 나는 상당히 취해 있었다. 주로 술은 박동우가 마시고 나는 듣는 편이었으나 두 병의 위스키를 나눠 마셨으므로 우리는 이미 몸을 가눌 수 없을 만큼 취해 있었다. 그러나 박동우는 정신이 말짱하였다. 그는 자기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는데 취해 있는 것 같았다.'

1999년 4월19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최인호의 연재소설 '상도'의 일부분이다. 그로부터 며칠 전 뉴욕의 한 호텔 방에서 있었던 일을 그대로 묘사한 장면이다. 뮤지컬 '겨울나그네'를 마치고 다음 뮤지컬 '몽유도원도'를 제작하기 위해 창작진 몇 명이 함께 여행을 떠났다. 나는 내 오랜 우상인 최인호 선생님과 여행 내내 한방을 쓰는 행운을 얻었다. 선생님은 트렁크에서 위스키 한 병을 꺼냈고 나는 함께 술을 마시며 저 소설에서처럼 말했다. 중학생 시절부터 나의 우상인 선배님의 뒤를 따라 연세대학교에 입학했고 연세극예술연구회(연희극회)에도 들어갔다. 그리고 지금도 연극을 하고 있다. 선배님이 나를, 내 인생을 여기까지 데리고 온 사람이다. 오, 그래? 이거 참 대단한 인연인 걸? 내가 동우를 더 일찍 알았더라면 '겨울나그네'의 주인공이 민우가 아니라 동우였을 텐데…. 하하…. 아니야 지금도 방법이 있지, 그럼. 있고 말고. 자 마시자. 그렇게 나는 어느 날 소설 '상도'에 불쑥 카메오로 등장했다.



영원한 청년작가로 불리는 최인호(1945~2013년)는 '별들의 고향' '바보들의 행진' '고래사냥' '겨울나그네' 등 청춘과 사랑을 다룬 대중적이고 상업적인 소설들로 잘 알려졌지만 창작 후반기에는 한국인으로서의 역사적 정체성을 다룬 역사소설 창작에 집중했다. '잃어버린 왕국'(1985년)에서는 광개토대왕비의 비문과 칠지도의 명문을 훼손·왜곡한 일본의 집요한 역사왜곡을 비판했으며 고구려의 역사를 다룬 '제왕의 문', 가야의 역사를 다룬 '제4의 제국'에서도 일관된 관심을 보여줬다. 그는 단순히 역사자료 속 흥미로운 소재를 찾아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역사학자처럼 사료를 뒤지고 현장을 답사하고 인터뷰하며 역사의 행간에 숨어 있는, 역사에 기록되지 못한 진실을 찾아내기 위해 땀과 시간을 바쳤다. "김부식의 삼국사기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만 계산에 넣는 역사관이 지배하는데 그건 가야라는 제4의 제국의 존재를 빠뜨린 것이다, 게다가 가야는 지금의 일본을 세운 세력이라는 점에서 가야의 역사는 일본 역사의 비밀을 밝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는 작가의 말은 임나일본부라는 헛된 늪에 빠져 허우적대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식민사관을 지켜볼 때 그의 때이른 타계를 더 가슴 아프게 한다.

최인호는 연극인이기도 하다. 서울고 2학년 때 연극에 처음 참여한 후 그 매력에 빠져 연세대에 입학하자마자 연희극회에 입단해 연극활동을 이어갔다. 연희극회 그리고 외부에서 배우와 연출가, 제작자로 활동했다. 그리고 졸업 후 1971년 첫 희곡 '달리는 바보들'을 극단 현대에서 올리고 1974년 첫 장막희곡 '가위바위보'를 극단 산울림에서 임영웅 연출로 공연했다. 그리고 1977년 장막희곡 '향기로운 잠'을 같은 극단에서 무대화했다. 그리고 뮤지컬 '겨울나그네'와 '몽유도원도'에 이르기까지 그는 연극인이기도 했다.



최인호 선생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됐다. 저 여행에 함께했던 공연제작자이자 그의 친구인 연출가 윤호진 선생이 최인호 10주기를 기념해 뮤지컬 '겨울나그네'를 무대에 올린다. 1997년 초연에 이어 완전히 새로워진 '겨울나그네'는 오는 12월15일부터 내년 2월25일까지 한전아트센터에서 공연된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윤호진은 '명성황후'와 '영웅'을 공연한 뉴욕의 링컨센터 뉴욕주립극장에서 2025년 뮤지컬 '몽유도원도'를 올리기 위해 준비 중이다. 물론 최인호의 소설 '몽유도원도'가 원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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