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싱글 인 서울’에서 영호(이동욱)가 저렇게 외칠 때까지만 해도 기대가 무척 컸다. 1인가구 1000만시대인 우리나라에서 싱글의 로맨스와 삶을 그린 ‘싱글 인 서울’은 관심을 가질 타깃층이 많은 영화다. 01학번(빠른 년생이지만)인 영호와 03학번인 현진(임수정)이 주인공이란 점도 맘에 들었다. 그들과 또래이자 역시 싱글인 필자는 이 영화가 오랜만에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줄 줄 알았다. 그런데 뛰라는 심장은 잠잠하고, 눈만 호강하고 나왔다.
반면 일에는 프로페셔널하지만 일상은 매사 허당인 출판사 편집장 현진은 혼자가 싫다. “사실 혼자인 사람은 없잖아요”라고 말하며 끊임없이 ‘그린라이트’를 찾아 헤맨다. 문제는 그의 ‘그린라이트’ 감별이 적록색약의 그것처럼 잘못된 직진과 썸을 양산한다는 것. 그러나 혼자가 싫은 그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종이책을 만드는 그는, ‘책은 혼자서 만드는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사실 책 만드는 것뿐이겠나, 무인도에 살던 서목하가 아닌 이상 삶을 온전하게 100% 혼자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런데 왜 안 두근거릴까. 우선 로맨스의 개연성이 약하다. 싱글 남녀 두 사람을 붙여 놓으면 무조건 연분이 난다는 건 고릿적 부장님 마인드를 의심케 한다. 아무리 빼어난 비주얼의 남녀를 일을 매개로 얽혀 놓았다지만, 두 사람이 서로에게 스파크가 튀는 과정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걸핏하면 ‘그린라이트’로 착각하는 현진은 그렇다 쳐도, “지금 혼자가 아닌 사람, 모두 유죄”를 외치던 영호는 뭐란 말인가. 그래, 남녀 사이 스파크 튀는 건 한순간이니까 넘어간다 치자. 그 다음도 이해되지 않는다. 나이로 차별하려는 건 아니지만, 40대에 접어든 이들의 행보를 방해하는 게 첫사랑이라니. 30대 중반에 나타난 첫사랑의 거대한 존재감을 보여줬던 ‘건축학개론’도 있지만(공교롭게도 ‘싱글 인 서울’을 제작한 명필름의 작품), 40대 싱글 라이프에서 이토록 첫사랑의 존재가 부각되어야 했나는 의문이다. 작가를 꿈꾸던 영호가 첫 책을 내기 위한 과정에서 필연적(?)인 것이었다고 우겨볼 순 있겠지만, 여전히 개연성에는 고개를 갸웃하게 된다.
싱글의 삶에 대한 이해와 표현도 도식적으로 보인다. 고양이를 키우고 턴테이블로 LP를 듣고 빈티지 카메라로 사진을 찍는 남자라니, 어딘지 싱글을 주인공으로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인물 같다. 이제 막 독립하는 현진은 LTV, DTI, DSR 따위와는 담을 쌓은 것처럼 보인다. 남녀 사이를 가까이하는 매개로 ‘독립을 준비하는 여자에게 세세한 도움을 주는 남자’라는 설정을 한 것 같은데, ‘무심코 건네주는 남자 신발에 심쿵 하는 모먼트’는 ‘또 오해영’과 함께 끝난 것 아닌가 싶은데 말이지.

제목에 서울이 들어가는 만큼, 경복궁, 남산, 한강, 광화문 등 서울 곳곳의 풍경을 아름답게 담아내는데 심혈을 기울인 점도 눈에 띈다. 가을과 겨울의 정취를 담뿍 담았기에 이 계절에 퍽 어울린다. 김현철의 ‘오랜만에’와 악뮤의 ‘오랜 날 오랜 밤’ 등 풍경에 어울리는 OST도 괜찮은 선택이다. 타율이 아주 높은 건 아니지만 간간이 터지는 ‘말맛’의 대사도 재미를 더한다. 특히 싱글을 예찬하는 영호의 많은 명언(!)들이 웃겼고, ‘어그’를 지칭하는 말에선 살짝 뿜었다. 첫사랑 역의 이솜 외에 장현성, 김지영, 이미도, 이상이, 그리고 특별출연한 윤계상 등 배우들의 활약도 나쁘지 않다. 스크린 데뷔하는 이상이는 단연 눈에 띈다. 11월 29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12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