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GPKI(Government Public Key Inftra)란 정부에서 쓰이는 '공동인증서'와 비슷한 개념의 신원 인증 시스템이다. 개인들이 기업·금융사 등의 시스템에 접속해 물건을 구매하거나 계좌이체로 돈을 옮기거나 주식 등을 매매하려면 필수적으로 자신의 신원을 공동·금융인증서 등으로 인증받아야 하는 것처럼 GPKI 시스템은 행정망을 통해 국민 민원을 처리하거나 공무원들이 내부 업무를 진행할 때 필수적이다.
시도·새올 행정망과 함께 마비된 정부24 역시 주민등록 등초본 발급, 건축물 및 토지(임야) 대장 발급·열람, 지방세 납세증명서 발급 등 국민 일상 생활에 밀접한 1만2500여 서비스를 처리하는 디지털 정부 인프라의 대표 격으로 꼽힌다.
이같은 모든 업무의 시작이 바로 인증이다. 이번에 문제가 생긴 부분이 GPKI 시스템의 마비 때문에 초래됐다.
문제가 된 GPKI 인증 시스템은 대전에 있는 국가정보자원관리원에 있었다. GPKI 인증 시스템 내 L4스위치는 수많은 데이터를 각각의 서버로 배분하는 데이터 부하를 분산시키는 역할을 한다. 마치 교차로에서의 신호등이 차량 부하를 분산시키듯 L4스위치가 이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L4스위치의 문제가 인증 시스템 전체의 마비로, 또 다시 전국 온·오프라인 행정망 마비로 이어졌다는 게 행안부의 설명이다.
일각에서는 L4스위치 이상 외에 17일 장애 발생 전후로 진행된 지방 행정망 업데이트 등 부분 작업의 여파도 사태 촉발에 영향을 미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인증 시스템이 중앙화됐을 때의 여파가 얼마나 큰 지가 이번 사태를 통해 증명됐다는 지적은 여전히 유효하다.
인증 시스템의 붕괴가 전국적인 불편을 초래한 사례는 이미 있었다. 지난해 10월 판교 SK 데이터센터 화재로 카카오뱅크, 카카오T, 카카오페이 등 카카오의 제반 서비스가 전면 중단된 것이 대표적이다. 당시 카카오 먹통 사태가 5일이나 지속된 이유가 바로 화재로 인해 카카오톡과 연계된 인증 시스템 장비가 훼손돼서다. 이에 카카오는 IT인프라 이중화에 대대적 투자를 집행한 바 있다.
이번 정부 행정망 사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지적이 나온다. 한 대학교 교수는 "이번 GPKI 인증 시스템 마비가 초래한 행정망 마비 사태로 인증 시스템의 설비 확충과 이중화의 중요성이 더 커졌다"며 "인증 시스템의 물리적 분산 뿐 아니라 주요 장비의 이중화를 더 강화하는 쪽으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이번에도 L4스위치는 같은 회사가 만든 유사 기종의 장비로 평시 가동, 백업 가동이 동시에 이뤄졌다"며 "인증 시스템 설비의 물적 확충 뿐 아니라 네트워크 장비도 기술적으로 어렵더라도 이기종(異機種) 장비로 이중화하는 등 보강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