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병' 코 앞에 둔 한국인 무려 1600만명…허벅지 키웠더니 위험 '뚝'

머니투데이 정심교 기자 2023.11.20 1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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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심교의 내몸읽기]

당뇨병으로 가는 관문이자, 정상 혈당으로 돌아갈 마지막 기회가 공복혈당장애다. 우리나라에서 공복혈당장애와 내당능장애 등 당뇨병 전(前)단계에 놓인 사람만 1600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에 혈당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지 않으면 당뇨병으로 이행할 수밖에 없다. 만약 이들이 모두 당뇨병으로 진행한다고 가정하면 국내 당뇨병 환자가 최대 2200만 명에 달하게 되는 셈이다. 전문의들의 조언으로, 공복혈당장애의 원인과 건강 단계로 옮겨갈 수 있는 비책을 알아본다.

섭취한 포도당의 70%는 허벅지 근육에서 소모된다. 잉여 포도당을 효과적으로 소모하기 위해 허벅지 근육을 단련해야 하는 이유다.섭취한 포도당의 70%는 허벅지 근육에서 소모된다. 잉여 포도당을 효과적으로 소모하기 위해 허벅지 근육을 단련해야 하는 이유다.


인슐린 분비 기능 떨어지면서 혈당 조절 오작동
정상인의 공복혈당(8시간 이상 공복 시 정맥혈 혈장 포도당 농도 기준)은 70~100㎎/㎗로 유지되고, 식후 혈당도 140㎎/㎗를 넘지 않는다. 즉, 혈당이 올라가면 췌장에서 인슐린이 분비돼 혈당을 140㎎/㎗ 미만으로 낮추고, 혈당이 70㎎/㎗ 아래로 내려가면 인슐린 분비가 억제돼 혈당이 더는 내려가지 않는다.



이런 혈당조절 기능에 이상이 생겨 8시간 이상 공복시 혈당이 정상(100㎎/㎗ 미만)과 당뇨병(126㎎/㎗ 이상) 사이인 100~125㎎/㎗에 해당하면 공복혈당장애로, 126㎎/㎗ 이상으로 올라가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한림대 강남성심병원 내분비내과 문신제 교수는 "공복혈당장애는 인슐린 분비 기능이 떨어져 혈당을 일정하게 조절하려는 인체의 항상성 기전이 깨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복혈당장애는 공복혈당이 당뇨병 진단의 기준치보다는 낮지만, 정상보다 높은 상태이며 현재의 생활 습관을 지속한다면 향후 당뇨병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크다. 문 교수는 "공복혈당이 높다고 해서 모두 곧바로 당뇨병이 되는 건 아니지만 생활 습관을 적극적으로 개선하지 않으면 대부분 당뇨병으로 진행한다"며 "고혈당은 고혈압, 복부비만, 고지혈증 등이 복합적으로 유발되는 대사증후군의 한 요소로, 심장병, 뇌졸중 등 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위험을 높인다"고 경고했다.



공복혈당장애 같은 당뇨병 전단계에 놓인 사람의 당뇨병 발생 위험은 정상인보다 5~17배나 높다. 이들에겐 당뇨병뿐 아니라 당뇨병 전단계에서도 당뇨병의 미세혈관 합병증(당뇨병성 망막병증, 당뇨병성 신증 등), 심혈관계 질환이 동반될 수 있다. 또 당뇨병 전 단계는 비만, 특히 내장비만과 관련 있고, 고지혈증(이상지질혈증), 고혈압과도 관련성이 높다.

당뇨병 전단계 지표 중 일반적인 건강검진에서 누구나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공복혈당장애다. 공복혈당장애는 몸속 혈당 관리 시스템에 '노란 불'이 들어왔다는 신호로 해석해야 한다.

'이 병' 코 앞에 둔 한국인 무려 1600만명…허벅지 키웠더니 위험 '뚝'
혈액 속 포도당 넘치면 인슐린 저항성 커져
몸속 혈당을 관리하는 호르몬이 인슐린이다. 인슐린은 세포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우리가 섭취한 포도당을 근육이나 간, 지방세포 등에 집어넣어 주는 촉매제인 것이다. 강동경희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정인경 교수는 "우리가 배고플 때는 코르티솔이나 에피네프린, 성장호르몬, 글루카곤 등이 나와서 저장한 에너지를 뇌·세포에서 쓸 수 있도록 도와준다"며 "하지만 에너지를 저장하도록 돕는 호르몬은 인슐린이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혈액 속 포도당이 이미 넘쳐, 세포들이 이미 배가 불러 있으니 에너지를 거부한다. 이렇게 되면 인슐린이 분비돼도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이를 '인슐린 저항성'이라고 한다. 정인경 교수는 "당뇨병 환자의 특징을 보면 서양인에는 '인슐린 저항성'이 많고,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에선 인슐린 부족에 의한 경우가 많다"며 "인슐린 분비 능력이 태어날 때부터 서양인보다 떨어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서양인보다 날씬한 동양인이 당뇨병에 잘 걸리는 이유다. 에너지원인 당이 남아돌아서 혈액에서 떠돌아다니는 현상을 '내당능장애'라고 하는데, 이런 상태가 지속돼도 당뇨병으로 진행한다.

만약 인슐린 분비 능력이 부족한 사람이 비만해지면 인슐린을 분비하는 췌장에 과부하가 걸린다. 정인경 교수는 "승용차 엔진을 달고 태어났는데 그 위에 트럭 차체를 얹어놓은 꼴"이라며 "체중을 줄이고, 남는 칼로리를 운동으로 태워 적정 체중을 유지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혈당이 높아졌을 때 인슐린이 췌장에서 많이 분비돼 혈당을 낮춘다. 혈당수치가 빠르게 높아질수록 췌장은 바빠진다. 인슐린이 모자라거나 제대로 일을 못 하는 상태가 되면 혈당이 상승하는데, 혈당이 높은 상태가 지속하면 당뇨병으로 진단된다. 당뇨병 전 단계에 해당할 땐 혈당을 빠르게 올리지 않고, 잉여 포도당이 생기지 않는 생활 습관을 유지하는 노력만으로도 당뇨병이 생길 위험성을 60% 정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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섭취한 포도당, 허벅지 근육 많을수록 소모 잘 돼
이를 위해선 먼저, 체중을 줄여 지방을 소모해야 한다. 내장지방에선 염증 물질이 많이 나오고, 남은 유리지방산은 혈관을 타고 돌아다니다가 간·근육에 쌓인다. 흔히 고기의 지방 부위를 가리키는 '마블링'은 근육층에 쌓아놓은 잉여 지방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로 간·근육에 지방이 많이 쌓이면 인슐린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인슐린 저항성이 증가한다. 특히 유리지방산은 인슐린을 생산하는 췌장을 공격한다. 이 같은 '지방 독성'으로 췌장이 망가지면 '불량 인슐린'이 생산되거나 인슐린 분비가 약해져 혈당이 관리되지 않는다. 남성은 적정 허리둘레를 90㎝, 여성은 85㎝로 유지해야 한다.

체질량지수가 23㎏/㎡ 이상인 경우 추가로 체중의 5~10%를 감량한 후 유지해야 제2형 당뇨병의 발병을 늦추거나 예방할 수 있다. 체질량지수가 23㎏/㎡ 이상인 당뇨병 전 단계의 성인(30~70세)의 경우 의사와 상의하고 제한적으로 '메트포민(metformin)' 복용을 고려할 수는 있다. 메트포민은 식이·운동 요법으로 혈당이 충분히 조절되지 않는 제2형 당뇨병 성인 환자의 치료에 사용되는 약물이긴 하지만 부작용으로 저혈당을 잘 일으키지 않아 당뇨병 전 단계의 환자에게서도 사용할 수 있다. 당뇨병 치료제인 'TZD', 'SGLT2 억제제'가 당뇨병 전 단계에서 당뇨병으로의 진행을 예방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둘째, 허벅지 근육을 키워야 한다. 경희대병원 가정의학과 원장원 교수는 "온몸 근육의 3분의 2 이상이 허벅지에 모여 있다"며 "섭취한 포도당의 70% 정도가 허벅지 근육에서 소모될 정도로 혈당 조절에 허벅지 근육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허벅지가 가늘수록 당뇨병 발병 위험이 커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2013년 연세대 보건대학원이 30~79세 남녀 32만 명의 건강검진 자료를 분석했더니 허벅지 둘레가 1㎝ 줄어들 때마다 당뇨병 발병 위험이 남성은 8.3%, 여성은 9.6%씩 높아졌다. 허벅지 둘레가 43㎝ 미만인 남성은 60㎝ 이상인 남성보다 당뇨병 발병 위험이 4배 높았고, 43㎝ 미만인 여성은 57㎝ 이상인 여성보다 5.4배 증가했다.

셋째, 정제된 탄수화물(단순 당) 섭취를 줄이고 정제하지 않은 통곡물(복합 당) 형태의 식품으로 탄수화물을 섭취해야 한다. 흰쌀이나 밀가루는 정제된 탄수화물이다. 개인별 식습관을 고려한 '의학영양요법'에 따르면 식이섬유가 풍부한 현미처럼 통곡물 형태로 정제하지 않은 탄수화물을 섭취하는 게 권장된다. 당류 섭취는 최소화하되 단맛을 끊기 어렵다면 인공감미료를 사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단백질 섭취는 제한하지 않으며 포화지방산과 트랜스지방산이 많은 식품은 불포화지방산이 풍부한 식품으로 대체한다. 나트륨 섭취는 하루 2300㎎ 이내로 권고되며, 가급적 금주해야 한다. 서울대병원 내분비대사내과 곽수헌 교수는 "목이 마를 때 설탕이 든 음료수는 가급적 피하고, 물을 마시거나 홍차·녹차에 레몬을 띄워 마시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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