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CU, 진짜 ‘마블민국’에게 이러기야?

머니투데이 영림(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11.13 1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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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동석 박서준 활용법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 커져

사진='더 마블스' 예고편 영상 캡처사진='더 마블스' 예고편 영상 캡처


영원할 것 같던 친구와의 우정도 시간이 흘러 풍화되어 흐릿해지고 어떤 시련이 와도 굳건할 것 같던 천년의 사랑도 사소한 계기로 짜게 식는 법이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말이 세상에 유일한 진리라는 말이 새삼 크게 다가온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MCU)와 대한민국의 사이도 이제 ‘권태기’를 맞은 지 오래다. 최근 개봉한 ‘더 마블스’가 개봉 첫날 9만 1000여 명의 관객을 동원하는데 그치고 개봉 3일차가 지나고도 누적 관객수가 21만 명에 머문 것을 보면 ‘마블민국’이라는 말은 이제 옛말이 아닌가 싶다.



특히 이번 ‘더 마블스’에 국내 정상급 배우인 박서준이 출연했다는 점에서 국내 관객들의 실망감이 더 컸다. MCU와 한국의 인연은 이렇게 권태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각자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일까.

MCU에서 한국을 소비했던 첫 번째 방식을 기존의 다른 할리우드 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아이언맨2’에서 토니 스타크의 청문회가 열릴 때 북한 무수단리에서 ‘아이언맨’ 수트를 가피한 ‘전쟁 한 벌’을 만들어 보려다 실패하는 장면으로 처음 MCU에서 한글이 등장했다.



이후 MCU가 한국을 가장 많이 활용한 작품은 ‘어벤져스: 에이지 오브 울트론’이었다. 무려 이 작품에서 배우 수현이 헬렌 조 역할을 맡아 꽤 비중 있는 활약을 했다.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수현,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 수현,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먼저 울트론, 캡틴 아메리카, 스칼렛 위치가 이 작품에서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시티를 배경으로 전투를 벌였다. 우리가 익숙한 한글 간판 사이로 블랙 위도우가 모터바이크를 타고 빠져나갈 때 한강의 새빛 둥둥섬에서 마인드스톤을 이마에 박은 비전이 태어났을 때 ‘마블민국’의 자부심은 하늘을 찌를 듯 솟구쳤다,


여기에 MCU는 ‘블랙팬서’에도 부산을 등장시켰다. 블랙팬서 슈트를 입은 트찰라가 광안대교 위에서 카 스턴트를 펼치고 부산 자갈치 시장 아줌마가 등장해 국적 불명의 사투리를 선보였다. 거의 한국어가 아닌 수준의 발음이었지만 이미 차오를 대로 차오른 ‘국뽕’은 이마저도 관대하게 넘어갈 수 있게 했다.

이후 MCU는 장소나 언어에 더해 사람으로 눈길을 돌렸다. 국내 배우를 MCU 작품에 직접 출연시킨 것이다. 이런 흐름의 변화는 ‘이터널스’의 마동석(길가메시 역), 이번 ‘더 마블스’의 박서준(얀 왕자) 캐스팅이라는 파격적인 일이 가능했다.

물론 기존에도 MCU는 주요 작품마다 한국계 배우들을 기용해 왔다. 대표적인 예로 랜들 박이 연기한 ‘앤트맨’, ‘완다비전’ 시리즈의 지미 우 요원이나 ‘가디언즈 오브 갤럭시’의 폼 클레멘티에프를 들 수 있다.

'이터널스' 마동석,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이터널스' 마동석, 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그럼에도 마동석, 박서준의 MCU 출연은 앞서 언급한 이들과 느끼는 심리적 거리가 확연하다. 다만, 아쉬운 것은 역시 배우들의 활용 방식이다. 마동석이 ‘범죄도시’ 시리즈를 비롯해 다른 작품에서 보여준 존재감, 박서준이 ‘이태원 클라쓰’ 등에서 보여준 연기력을 생각하면 MCU가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했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지만 마동석이 ‘이터널스’에서 테나(안젤리나 졸리)를 위해 조금 빠른 퇴장을 하거나, 박서준을 굳이 MCU로 소환해 뮤지컬을 하게 만드는 활용은 아쉬움을 넘어선다.

MCU라는 거대한 프랜차이즈에 우리가 아는 장소가, 우리의 언어가 더 많이 등장하는 것은 기뻐할 일이다. 자체적으로 양질의 K-콘텐츠를 생산해 알리는 것만큼이나 거대한 프랜차이즈에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것도 분명히 중요하다.

하지만 이제 쓰는 쪽도 어떻게 쓸지를 제발 신중하게 고민하고 배역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 배우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은 또 다른 방식의 폭력이다.

그리고 쓰이는 쪽도 나름대로 신중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다. 배우 개인의 커리어로만 본다면 두 번 다시 없을 기회이며 새로운 도전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국내 관객의 아쉬움도 아주 조금은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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