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대우조선해양 파업 때 노란봉투법이 있었다면

머니투데이 이태성 기자 2023.11.13 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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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

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지난해 6월 대우조선해양의 거제·통영·고성 조선 하청지회 노조는 원청업체인 대우조선해양에 △노조 전임자 인정 △노조 사무실 지급 △임금 30% 인상 △상여금 300% 인상 등을 요구하며 작업장 입구를 점거했다. 원청업체를 대상으로 한 파업인데다가 작업장을 점거한 만큼 이 파업은 현행법 기준 명백한 불법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51일간 지속된 하청지회 파업으로 신규 선박 진수가 5주 미뤄졌고, 이로 인해 약 8000억원에 이르는 손해를 입은 것으로 파악했다. 회사는 노조원 5명을 상대로 470억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냈다.

일명 '노란봉투법' 재논의의 시발점이었던 이 사건 당시 실제로 법이 있었다면 파업은 어떻게 흘러갔을까. 국회를 통과한 노조법 개정안 2조는 직접 근로계약을 맺지 않아도 '근로조건을 실질·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사용자를 노조법상 교섭 의무가 있는 사용자로 본다. 대우조선해양에 하청업체와 교섭 의무가 있는지 여부는 명확하지 않다. 하청업체의 근로조건을 대우조선해양이 실질·구체적으로 지배·결정했는지 여부를 하나씩 따져봐야 하는데, 법원의 판단을 받아야 할 수도 있다. 이 기간 동안 노조가 파업을 지속하게 되면 회사가 입는 피해는 막대해진다. 노조를 상대로 한 회사의 협상력은 당연히 약화된다.



대우조선해양에 교섭 의무가 없다고 판단되면 이 파업은 불법이 된다. 그렇지만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노조에 묻기는 쉽지 않다. 노조법 3조 개정안은 사용자가 손해배상 소송을 걸 때 대상자의 책임을 구분해 액수를 특정하도록 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노조원 전체의 불법파업 가담 정도를 일일이 구분해 개별 액수를 산정해야 한다. 당시 파업에 참가했던 금속노조원은 120여명이었다. 회사에서 책임을 하나씩 하나씩 구분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파업으로 인한 피해를 회복하는 것이 시급한 상황에서 노조에 아예 배상 책임을 묻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이처럼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 당시 노란봉투법이 있었다면 상황은 노조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흘러갔을 것이다. 경영계에서 노란봉투법을 크게 우려하는 이유다. 경영계 관계자는 국내 제조업이 다단계 협업체계로 구성돼있는 만큼 해당 법안은 파업을 상시로 발생시킬 수 있다고 본다. 불법 파업의 피해자인 사용자의 손해배상청구가 봉쇄된다면 산업현장이 붕괴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시각이다. 더 나아가 노동 문제를 겪는 주요 기업들이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해외로 이전하거나, 국내 생산량·인력을 최소화 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미 국내 노동법은 해고자와 실업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고 있고, 개인사업자로 여겨지던 택배 노동자들의 노동조합을 인정하는 등 노조의 단결권을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여기서 노조에 더 힘을 실어주는 것은 사측의 대항권을 사실상 포기하라는 말과 같다. 파업의 유일한 대응법인 대체근로 역시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 주요 선진국들과 다르게 국내에서는 전면 금지돼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 6단체는 오는 13일 오전 9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대통령의 거부권을 요청하는 긴급 기자회견을 갖는다. 이들의 목소리가 대통령실, 더 나아가 국민에게 닿기를 바란다.

[우보세]대우조선해양 파업 때 노란봉투법이 있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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