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쟁에 막힌 '한국판 NASA'…골든타임 넘기면 "총선이 변수"

머니투데이 변휘 기자, 김인한 기자 2023.11.1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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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리포트]우주항공청 골든타임(上)

편집자주 우주항공청의 운명을 가를 골든타임이 채 30일도 남지 않았다. 21대 국회 마지막 정기국회는 내달 9일 종료한다. 연내 우주항공청 출범을 확정 짓지 못할 경우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법안 통과는 더욱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여야 쟁점 사안 분석과 내실 있는 우주항공청 출범을 위한 미래지향적 제도와 구조를 모색한다.

날아오르기도 바쁜 우주항공청, 100일 넘게 국회 문턱도 못넘었다
①'정쟁'에 멈춘 우주항공 미래

정쟁에 막힌 '한국판 NASA'…골든타임 넘기면 "총선이 변수"


우주항공청의 연내 개청을 위한 '골든타임'이 앞으로 1개월 남짓이다. 지난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우주항공청 특별법'을 처리하겠다는 여당의 목표는 불발됐고, 남은 정기국회 일정과 혹시 모를 임시국회 일정을 고려해도 시간은 빠듯하다. 국회는 물론 정부와 관계기관까지 그간의 핵심 쟁점을 큰 틀에서 해소했지만, 결국 해법은 이번 주 야당의 결정에 달렸다.



11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는 이번 주 우주항공청 특별법 논의를 재개할 전망이다. 일각에서는 오는 13~14일쯤 과방위가 그간의 안건조정위원회(안조위) 결과를 보고받을 가능성이 거론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31일 시정연설에서 "우주항공청법에 의원님들의 각별한 관심과 협조를 부탁드린다"고 콕 짚은 만큼, 여당은 속도전의 태세를 갖췄다. 하지만 과방위의 우주항공청 논의 '주도권'은 여전히 야당이 쥐고 있다.



지난 4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우주항공청 특별법' 제출 본격화된 우주항공청법 논의는 거듭된 파행 속 야당의 요구로 7월 26일 안조위가 구성되며 전환점을 맞이했다. 안조위는 특정 쟁점의 압축적 논의로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90일간 활동한다. 우주항공청법 안조위도 여러 입장차를 좁히며 성과를 거뒀지만 끝내 우주항공청의 R&D(연구·개발) 수행 관련 이견을 좁히지 못한 채 지난달 23일 활동을 종료했다.

이에 여야는 법안을 과방위로 넘겨 추가 협의를 이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선 국회법 제57조의 2(안건조정위원회) 8항에 따라 안조위원장이 과방위에 심사 경과를 보고해야 하는데, 안조위원장은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법안 처리의 '키맨'이 조 의원인데, 여기서부터 가로막혀 있다는 게 여권의 시각이다.

앞서 안조위의 성과를 가로막던 쟁점도 사실상 해소된 상태다. 애초 여야는 우주항공청을 과기정통부 산하기관으로 두되 국가우주위원회 구조를 일부 변경하는 등 조직·거버넌스 측면에서 합의했지만, 정부·여당은 우주항공청이 R&D 기능을 갖고 외부 임무센터에 연구를 맡기는 구조가 미국항공우주국(NASA)형 모델이라고 강조한 반면 야당은 이미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한국천문연구원이 있어 '옥상옥'이라며 반대했다.


조승래 국회 과방위 안건조정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3.10.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조승래 국회 과방위 안건조정위원장이 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안건조정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3.10.5/뉴스1 Copyright (C) 뉴스1.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및 재배포, AI학습 이용 금지.
그러나 지난달 27일 과기정통부 국정감사에서 갈등 해소의 실마리를 찾았다. 이종호 과기정통부 장관은 당시 "항우연과 천문연의 (우주항공청) 소속 기관화에 동의한다"며 전향적 입장을 밝혔다. 이들이 우주항공청 산하로 편입되면 각 기관이 하나로 묶인 만큼 '중복연구' 우려가 적다. 지난달 31일에는 이재형 과기정통부 우주항공청설립추진단장이 이상률 항우연 원장, 박영득 천문연 원장과 잇달아 미팅을 갖고 우주항공청 연내 출범을 전제로 후속 조치를 논의했다. 핵심 이해관계자 간 이견은 말끔히 해소된 셈이다.

우주항공청의 R&D 범위라는 최대 쟁점은 해소된 만큼 서둘러 법안을 처리하고 세부 방안은 차차 조율해나가자는 게 정부·여당의 구상이다. 연내 우주항공청법이 과방위와 법제사법위원회, 본회의를 차례로 통과해야 하고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관 정부조직법 개정까지 뒤따라야 하는 만큼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여야가 합의한 정기국회 내 본회의 일정은 이달 23일과 30일, 내달 1일뿐이다.

그러나 야당이 속도전에 동참할지는 미지수다. 조 의원 측은 R&D 범위에 대한 이견은 좁혀졌지만 이를 구체화하는 법 조문 등의 실무 절차가 더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더욱이 연말 예산심사, 민주당의 이동관 방통위원장 탄핵 움직임으로 소관 상임위인 과방위가 연말까지 '정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높다.

자칫 우주항공청법이 내년으로 넘어갈 경우, 4월 총선을 앞두고 돌출 변수가 등장할 수도 있다. 일각에선 여야 합의가 끝난 입지마저 불안 요소로 본다. 정치권 관계자는 "대통령이 경남 사천 설치를 공약한 우주항공청이 직접 R&D를 하면, 대전의 항우연·천문연이 빈 껍데기만 남는다는 게 R&D 범위 논란의 숨은 본질"이라며 "지역 공약이 빗발치는 총선 시즌에 우주항공청 입지를 두고 또다시 갈등이 빚어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항우연·천문연 합쳐 '공학·과학' 시너지…우주항공청 R&D 생존법
② '한국판 NASA' 성공 방정식

항우연(왼쪽)과 천문연.항우연(왼쪽)과 천문연.
우주항공청(KASA) 설립 시 최우선 과제로 '한국항공우주연구원(항우연)과 한국천문연구원(천문연)의 통합'이 꼽힌다. 두 기관은 그동안 우주개발 임무에서 '공학기술이 먼저냐 과학임무가 먼저냐'를 두고 늘상 신경전을 벌여온 기관이다. 항우연 엔지니어들과 천문연 과학자들이 초기 연구기획부터 막판 임무수행까지 'R&D(연구·개발) 협력 시너지'를 내려면 화학적 결합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1일 과학계에 따르면 우주항공청 설립 후 항우연과 천문연을 통합하려면 '우주항공천문연구원법'(가칭)과 같은 새로운 법안 제정이 필요하다. 여야 합의대로 '우주항공청 설치·운영에 관한 특별법'에 현재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소속 항우연·천문연을 우주항공청 소관기관화하는 근거조항을 마련하면, 추후 통합 과정에선 연구원법만 원포인트 논의하면 된다.

당초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국민의힘은 우주항공청에 R&D 컨트롤타워격인 우주항공임무본부를 신설하고 외부센터에 R&D를 맡긴다는 구상이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30여년간 국가 우주개발을 이끈 항우연·천문연을 우주항공청 산하에 두고 R&D 전권을 줘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 때문에 항우연·천문연을 통합해 '우주항공청 R&D(연구·개발) 컨트롤타워'를 맡기는 구조는 정부·여당과 야당의 주장을 모두 충족할 수 있다.

◇NASA 1958년, JAXA 2003년, KASA 2023년

우리는 연내 우주항공청 출범을 자신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미국항공우주국(NASA)과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는 수십년 전 우주항공청보다 위상이 높은 범부처 조직으로 태동했다. 특히 두 기관 모두 출범 당시 R&D 조직이 중심이었다.

NASA는 1958년 10월 출범하면서 NACA(미국국가항공자문위원회)를 확대하면서 랭글리 항공연구소, 에임스 항공연구소, 월롭스 로켓발사장, 루이스 비행추진연구소, 캘리포니아주 에드워즈 공군기지 고속비행추진시설 등을 모두 가져왔다. 이들 기관을 중심으로 외부 임무센터와 R&D를 협력했다.

JAXA는 2003년 10월 문부과학성 우주과학연구소(ISA), 독립법인 항공우주기술연구소(NAL), 특수법인 우주개발사업단(NASDA)을 통합하며 출범했다. 그 뒤로 일본 내각부 우주개발전략본부(본부장 총리)를 설치하면서 범부처 우주정책을 조정·관리했다. 우리나라도 '과기정통부 외청인 우주항공청'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현재 국무총리가 위원장을 맡는 국가우주위원회를 대통령 기구로 격상한다는 방침이다.

정쟁에 막힌 '한국판 NASA'…골든타임 넘기면 "총선이 변수"
◇항우연은 대체로 긍정적..."천문연 중심 과학임무 국제협력 수월"

우주항공청 산하에 항우연·천문연이 들어가고 궁극적으로 두 연구기관을 통합하는 방안은 항우연에선 대체로 긍정적이고 천문연에선 일부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두 기관이 통합하면 기관 운영에 들어가는 예산을 줄일 수 있고, 이에 따른 처우·제도 개선이 이뤄질 수 있다는 기대감도 있다.

항우연 관계자는 "그동안 항우연은 공학기술, 천문연은 과학연구 등 기관 이익만 초점을 맞추면서 공동임무가 만들어지고 뒤늦게 이를 조정하는 한계가 있었다"며 "과학자와 엔지니어를 한 기관에 두고 연구기획부터 임무수행까지 함께할 경우 협력 시너지가 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천문연 관계자는 "천문연·항우연의 우주항공청 소관기관화와 함께 일원화도 충분히 논의할 수 있는 의제"라면서 "특히 항우연 주도의 우주개발 시스템을 벗어나 두 기관이 달·화성 탐사와 같은 미래 임무를 공동 기획·조정할 수 있는 통합 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있을 것"이라고 제언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지구환경이나 우주탐사 등과 같은 범지구적 과학연구는 국제협력이 훨씬 수월하다"며 "천문연이 NASA와 수행해오던 공동연구에 항우연 기술역량까지 추가되면 국제협력 시너지가 클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두 기관이 통합해 순수 과학임무를 중심으로 국제협력을 펼친다면 기회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일원화에 회의적인 시각도 존재한다. 그동안 항우연과 천문연의 각개전투식 우주개발 임무를 상호 협력할 수 있도록 우주항공청이 조정·운영하는 구조가 바람직하다는 시각이다. 우주항공청이 도전적 R&D를 지향하고 실패를 용인하는 제도를 만든다면, 통합하지 않고도 항우연과 천문연이 개별기관 이익에만 얽매이지 않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는 목소리도 있다.

'누리호 기술유출' 의혹 수사…우주항공청 필요성 보여준 장면
③ 민간 우주시대 '기술·인력 이전' 대응해야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대전 본원 전경. /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한국항공우주연구원 대전 본원 전경. / 사진=한국항공우주연구원
누리호(KSLV-Ⅱ) 기술유출 의혹에 따른 검찰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수사는 우주항공청의 필요성이 드러나는 상징적 장면이다.우주개발 주도권이 공공에서 민간으로 넘어가는 '뉴스페이스 시대' 길목에서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우주항공청이 민간 기술 이전과 산업 육성 등을 위한 규정·체계를 확립하고 경험을 축적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대전지검은 지난달 31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감사실로부터 수사의뢰를 받고 한화에어로스페이스 (217,000원 ▼4,500 -2.03%) 이직을 앞둔 항우연 연구자 4명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이들이 항우연의 누리호 기술자료를 여러 차례 열람했는데, 이 같은 행위가 적절했는지 여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항우연과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지난해 10월 기술이전 협약을 체결하고, 그에 따른 누리호 기술료 협상을 진행 중이다. 또 새로운 2조원 규모 차세대발사체(KSLV-Ⅲ) 입찰에도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입찰 참여는 기정사실이다. 만에 하나 이직 예정자들의 행위가 기술유출로 판명난다면, 향후 협상 및 입찰에 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게 검찰 수사의 명분이다. 반면 연구자들은 의혹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과학계는 이번 사건의 실체와 별개로, 앞으로 공공 우주기술의 민간 이전 과정에서 이와 유사한 사례가 얼마든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또 우주산업 생태계 육성을 위해서는 기술 이전과 인력 교류의 바람직한 모델이 정립돼야 하며, 이는 국내 우주 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인 우주항공청의 핵심 역할 중 하나다.

특히 지난 30여년 간 국가 우주개발을 이끌어 온 항우연과 한국천문연구원 등은 이번 검찰 수사가 우주항공청 설립·운영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이에 따라 앞으로 설립될 우주항공청은 공공 우주기술의 민간 이전 과정에서 '네거티브 규제(우선 허용 후 규제)'를 원칙으로 우주산업 생태계의 도전과 혁신을 장려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방효충 KAIST(한국과학기술원)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공공 우주기술이 민간으로 넘어가는 시작 단계부터 기술 유출 의혹이 불거졌다"면서 "우주항공청의 최우선 임무는 민간 우주산업 육성이지만, 이번 문제로 자칫 관련 규제가 강화되고 민간 기술 이전 인력 교류 등이 위축될까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또 "이번 문제와 별개로 우주항공청은 민간 우주산업을 파격 육성할 수 있도록 제도 미비점을 보완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항공우주국(NASA) 인력과 기술 지원으로 스페이스X가 성장한 것처럼, 우리나라 우주산업이 크려면 공공 인력과 기술이 민간으로 흘러가는 흐름은 바람직하고 장려해야 할 방향"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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