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CRO 산업은 코로나19(COVID-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수혜로 지난해까지 고속 성장을 구가했다. 팬데믹 시기 백신과 치료제 개발 수요가 폭증하면서 CRO 역시 호황을 누렸기 때문이다. 이를 토대로 2020년 드림씨아이에스 (3,680원 ▲35 +0.96%), 2021년 에이디엠코리아 (2,985원 ▼65 -2.13%)와 씨엔알리서치 (1,196원 ▲56 +4.91%), 2022년 디티앤씨알오 (6,160원 ▲100 +1.65%) 등 여러 CRO가 코스닥 시장에 입성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상황은 급변했고, 실적 악화와 시장가치 하락이란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CRO의 실적 악화는 고스란히 시장가치에 반영됐다. HLB바이오스텝, 코아스템켐온, 에이디엠코리아, 드림씨아이에스, 바이오톡스텍 등 여러 CRO의 현재주가는 올해 고점 대비 반토막 수준이다. 최근 수년간 다수 CRO가 줄줄이 상장하며 주식시장에서 바이오의 한 축으로 자리잡을 것이란 전망도 나왔지만 아직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또 올해부터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에 진입하면서 관련 치료제나 백신 개발 수요가 감소한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고금리 기조와 글로벌 경기 침체 우려 등 대외 여건도 CRO 수요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CRO 업계에선 2012년 정부의 일괄약가인하 때 수준으로 임상시험 수요가 움츠러들었단 하소연까지 나온다.
키움증권에 따르면 코스닥 바이오텍 업체(바이오 기술 기업)들의 올해 1분기 합산 연구개발비는 3516억원에서 2분기 3153억원으로 감소했다. 허혜민 키움증권 연구원은 "CRO의 고객사인 바이오텍이 고금리와 자금조달 어려움 등으로 자금난을 겪고 있다"며 "바이오텍의 비용 통제 등 소극적 투자 기조는 2024년 1분기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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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 국내 주요 바이오 기업들은 운영자금을 아끼기 위해 일부 파이프라인의 연구에 집중하는 전략으로 선회하거나 전임상 단계 후보물질의 임상시험 규모를 축소하는 등 비용 절감에 나서고 있다. 정부 과제에 뽑히지 못한 파이프라인의 연구는 후순위로 미루는 등 분위기도 감지된다.
결국 국내 CRO 시장 회복은 전방산업인 제약·바이오 산업의 부활에 달렸다. 바이오 기업의 활발한 R&D(연구개발) 활동이 수반될 때 CRO가 반등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여러 바이오 기업이 적극적으로 신약 후보물질을 발굴하고 비임상 및 임상시험에 나서는 시장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 또 바이오에 대한 주식시장 평가가 개선되고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조달 등으로 유동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
이날 종근당 (114,500원 ▲1,600 +1.42%)이 글로벌 제약사인 노바티스와 약 1조7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소식을 알린 점은 호재다. 대규모 기술수출로 국내 제약·바이오에 대한 주식시장 기대감이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수한 기술이전 사례는 바이오에 대한 시장 평가를 높이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 CRO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내 바이오 산업은 고금리와 시장 신뢰 하락 등으로 연구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자금난을 겪는 기업도 많아 임상시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어려운 국면"이라며 "이 때문에 비임상과 임상시험을 가리지 않고 CRO 시장의 침체가 지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종근당의 대규모 기술이전처럼 좋은 이벤트가 마련된 만큼 바이오 업계에서 신약 개발에 대한 분위기가 살아나길 바란다"며 "기술 경쟁력을 갖춘 국내 바이오의 활약이 있어야 CRO 산업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