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지ㅣ우리를 13년간 설레게 한 마성의 슈퍼스타

머니투데이 이설(칼럼니스트) ize 기자 2023.10.27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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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두나', 사진=넷플릭스'이두나', 사진=넷플릭스


지난 20일 공개된 넷플릭스 새 시리즈 ‘이두나!’의 첫 장면. 꿈을 안고 상경한 대학생 이원준(양세종)이 셰어하우스에 들어서다가 은퇴한 걸그룹 멤버 이두나(수지)와 마주친다. 초미니 스커트 차림의 두나는 상대가 무안하리 만큼 당당하게 담배를 피우고 있다. 성실한 모범생 원준이 먼저 인사를 건네도 대꾸 하나 없이 빤히 쳐다보기만 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몹시 기분이 상할 법한 ‘시츄에이션’. 그러나 일명 ‘히메컷’(긴머리 레이어드 컷 )을 한 두나의 얼굴 클로즈업을 보고 있노라면 ‘싸가지’는 일단 둘째치고 압도적인 외모에 빠져들게 된다. 내년이면 30세가 되는 수지는 진짜 나이를 거꾸로 먹고 있는 것은 아닐까.



13년 전 수지가 걸그룹 미쓰에이로 데뷔할 때가 그의 나이 16세였다. 지아, 페이, 민, 수지의 4인조 중 막내. 그러나 고교생이라는 신분이 무색할 정도로 성숙한 분위기로 눈길을 끌었다. 박진영 JYP엔터테인먼트 총괄PD의 전폭적인 후원 아래 미쓰에이는 2010년 싱글 앨범 ‘배드 벗 굿(Bad but Good)’의 타이틀 곡 ‘배드 걸, 굿 걸(Bad Girl Good Girl)’로 데뷔해 파란을 일으켰다. 곧이어 ‘굿바이 베이비(Good-bye Baby)’, ‘터치(Touch)’, ‘허쉬(Hush)’ 등을 연달아 히트시키며 최정상의 아이돌 걸그룹으로 성장했다. 민의 보컬, 중국인 멤버 지아와 페이의 하모니도 성공의 원동력이었지만 ‘센터’를 지킨 수지의 비중이 더 컸다고 할 수 있다. 풋풋하고 청순한 얼굴에 도발적인 스타일. 귀엽고 사랑스러운 이미지로 대변되던 기존의 걸그룹과는 확실한 차별화가 이뤄졌다.

하지만 미쓰에이는 엄청난 인기에도 불구하고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마의 7년’을 넘기지 못하고 결국 2017년 12월 해체됐다. 그러나 해체는 또다른 탄생의 씨앗. 그동안 간간이 연기 활동을 병행해오던 수지는 이를 계기로 가수보다 연기자로서의 활동에 더 중점을 두게 됐다.



연기자로 데뷔한 KBS2 드라마 '드림하이' 당시 기자간담회에 나선 수지. 사진=스타뉴스DB연기자로 데뷔한 KBS2 드라마 '드림하이' 당시 기자간담회에 나선 수지. 사진=스타뉴스DB
수지가 처음 연기자로서 시청자와 만난 것은 미쓰에이 데뷔 후 이듬해인 2011년 초였다. KBS 2TV를 통해 방영된 월화극 ‘드림 하이’에서 슈퍼스타를 꿈꾸는 예술고의 여학생을 연기했다. 이 드라마는 박진영과 그의 절친 배용준이 의기투합해 제작한 기획물. 두 사람이 머리를 맞댔다는 것도 화제였지만, 당대 최고의 아이돌 스타들이 총출동하는 것으로도 관심이 뜨거웠다. 수지를 비롯해 티아라의 함은정, 2PM의 옥택연, 그리고 떠오르는 신성 김수현이 출연했다. 이때의 수지 연기가 기억에 남아 있다. 부유한 집 딸이지만 성격은 비뚤어진 주인공 고혜미 역을 맡았는데 연기력이 기대한 만큼에는 미치지 못했다. 노래와 춤을 연습하기도 바쁠 시간에 연기까지 해야 했으니 쉽지 않았을 것이다. 김수현과 옥택연 사이에서 섬세한 멜로 감정을 표현해야 하는 것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시청률은 스타성에 힘입어 최고 17.9%까지 치솟았다.

연기자로서 수지의 진가가 발휘된 작품은 2012년 3월 22일 개봉한 영화 ‘건축학개론’이다. 아시다시피 첫사랑에 관한 이야기다. 사랑에 서툰 남자 승민과 ‘국민 첫사랑’ 서연의 15년간의 인연을 보여준다. 극중 스무 살 때의 승민과 서연을 각각 연기한 이제훈과 수지는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첫사랑의 추억을 애틋하고 달콤하게 재현했다. 특히 수지는 맑고 순수한 첫사랑의 표본 같은 모습으로 많은 남성 관객들을 설레게 했다. 외모로부터 드러나는 수지의 장점이 극대화된 사례였다. 흥행에도 성공해 411만 명을 동원하는 데 성공했다.


영화 '건축학 개론'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영화 '건축학 개론' 스틸. 사진=롯데엔터테인먼트
수지의 연기가 좀더 주목을 받았던 작품은 2013년 4∼6월 방송된 MBC 월화극 ‘구가의 서’다. ‘드림 하이’나 ‘건축학개론’이 수지가 가지고 있는 순수 이미지를 십분 활용한 것이라면, ‘구가의 서’는 퓨전 사극이라는 점에서 변신을 꾀한 작품으로 분류된다. 수지는 여자 주인공 담여울을 연기했다. 남장 차림의 무술 고수이자, 반인반수 최강치(이승기)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지는 인물이다. 이때도 수지의 빛나는 외모는 한복 남장으로도 가려지지 않았다. 최고 시청률은 역시 19.5%나 나왔다. 그러나 이는 수지의 힘이라기보다는 이승기의 지분이 더 커 보인다. 그리고 극 초반부 구월령(최진혁)-윤서화(이연희) 커플의 애절한 스토리가 일찌감치 많은 시청자를 불러들인 덕분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 어쨌거나 수지가 색다른 변신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연기에 자신감을 얻었던 것일까. 수지의 다음 선택은 매우 의외였다. 2015년 11월 25일 개봉한 정통 사극 ‘도리화가’로 돌아왔다. 도리화가는 조선 시대 최초의 여자 소리꾼에 관한 이야기다. 여자는 소리를 할 수 없다는 편견을 깨고, 남장을 불사하며 최고의 경지에 도전했던 소녀 진채선(수지)을 그리고 있다. 스토리는 흥미로워 보이지만 대중적인 공감을 이끌어내는 데에는 실패한 것으로 판단된다. 입장 관객 수가 고작 31만 명에 그쳤다. 드라마는 출연했다 하면 시청률 최소 10%, 영화는 관객 동원 400만 명 이상을 했던 수지로서는 처참한 실패였다. 변신이 너무 과했던 탓으로 풀이된다. 캐릭터 변신을 향한 수지의 노력은 높이 살 만하지만 정작 관객들이 수지를 통해 보고 싶어 하는 이미지는 아직 그렇게까지 가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안나', 사진=쿠팡플레이'안나', 사진=쿠팡플레이
수지가 스타가 아닌 배우로서 인정받게 한 작품은 지난해 공개된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다. 숨 쉬는 거 빼고 모든 게 거짓말인 리플리 증후군의 캐릭터를 완벽히 소화해내 올해 초 청룡 시리즈 어워드를 비롯해 각종 시상식에서 연기상을 수상했다. 수지의 연기자로서 자질에 의문을 갖고 있던 사람도 그 선입견을 버릴 만큼 흡인력 있는 열연을 펼치며 배우로서 한 단계 성장했다.

'안나'의 성공 뒤 선보인 ‘이두나!’에서도 물이 오를 대로 오른 연기력을 마음껏 과시한다. 연기에 뛰어든 지도 이제 12년. 이제 더 이상 '아이돌 가수 출신'이란 수식어가 필요없는 완벽한 배우로 자리매김을 했다.

‘이두나!’는 한마디로 수지를 위한 움직이는 화보집 같다. 앞서 두나의 첫 등장 장면에서 비치듯, 수지는 자신이 지닌 매력과 장점을 숨김없이 발산한다. 관능과 순수가 교차하는 아름다움, 오만함과 배려심이 엉킨 복잡한 심리를 시시각각 변화무쌍하게 보여준다. 줄담배를 피우는 수지를 상상이나 했겠나. "X발"과 "X나"를 입에 달고 있는 수지를 생각이나 했겠나. 만약 다른 사람이었다면 드라마에 몰입하기도 전에 거부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지가 하니까 용서가 된다. 그렇게 된 사연이 궁금해진다.

'이두나!', 사진=넷플릭스'이두나!', 사진=넷플릭스
아름다운 것을 보면 눈길이 머물게 마련이다. 연출진도 수지가 뿜어내는 아우라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연출을 맡은 이정효 PD는 수지가 등장할 때마다 어김없이 클로즈업이나 슬로모션을 사용한다. 출연배우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 없으면 나오기 어려운 프레임들이다.

그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던 수지는 맡은 역할 이름이 작품명인 '안나'와 '이두나!' 두 작품을 통해 비로소 배우라는 타이틀을 각인시켰다. ‘건축학개론’이나 ‘구가의 서’ 등에서 이미 연기자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지만 성에 차지는 않았다. 배우보다는 스타의 이미지가 컸던 탓이다.

하지만 ‘이두나!’는 누가 뭐래도 ‘수지의 드라마’다. 파트너 양세종의 역할이 상대적으로 축소된 것 같아 조금 아쉽지만 앞으로 수지 앞에 붙는 수식어가 ‘이두나!’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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