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자 "주사 맞으세요"…이들 설득에 노숙인들 팔 걷었다[르포]

머니투데이 천현정 기자, 김지성 기자 2023.10.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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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 서울 용산구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한 노숙인이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사진=천현정 기자26일 서울 용산구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한 노숙인이 독감 예방접종을 하고 있다./사진=천현정 기자


"주사 아픈 거 아니에요? 안 맞을래."
"에이, 그래도 맞으셔야 합니다."

26일 오후 1시 서울 용산구 서울역 근처 노숙인 지원센터인 서울시립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센터) 앞에서 작은 실랑이가 벌어졌다. 독감 예방접종을 맞히려는 센터 활동가들과 머뭇거리는 노숙인 사이에서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지방자치단체 등 유관기관이 주거 취약계층인 노숙인 보호 활동으로 분주하다. 아직 가을이지만 정해진 주거 시설 없이 바깥에서 지내는 노숙인들은 아스팔트 바닥에서 올라온 냉기에 쉽게 추위를 느끼기 때문이다.



서울역 인근에는 벤치 앞과 건물 외벽에 기대 자리를 잡은 노숙인들이 곳곳에 보였다. 급격히 쌀쌀해진 날씨에 박스를 여러 겹 덧대거나 우산, 이불 등을 활용해 바람을 막고 누울 자리를 마련한 모습이었다.

이날은 서울시 나눔진료봉사단, 행동하는의사회,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 등이 의료 취약계층인 노숙인과 쪽방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독감 예방접종을 시행하는 날이다. 서울시 등은 이들의 건강 관리를 돕기 위해 제약사와 협력해 매년 한 차례 무료 예방접종을 시행하고 있다.



센터를 찾은 노숙인들은 예방접종 시작 시각인 오후 1시가 되기 전부터 길게 줄을 섰다. 접종이 시작되자 센터 관계자에게 예진표를 받아 들고 차례로 입장했다. 체온 측정, 신원 확인, 예진표 체크를 한 뒤 의사 문진을 마치고 접종 구역으로 이동해 순서대로 팔을 걷었다.

몇몇 노숙인들은 자신의 주민등록번호를 몰라 신원 파악에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런 경우 먼저 접종을 마친 뒤 추후 신원을 파악하도록 센터는 운영하고 있다.

예방접종을 하려는 이들이 몰리면서 시작 30분 만에 100여명이 예방접종을 마쳤다. 한 노숙인은 "여기에서 늘 예방접종을 해줘서 10년 동안 매년 맞았다"고 말했다.


26일 서울 용산구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노숙인·쪽방 주민 대상 무료 독감 예방접종이 진행되고 있다./사진=천현정 기자26일 서울 용산구 다시서기종합지원센터에서 노숙인·쪽방 주민 대상 무료 독감 예방접종이 진행되고 있다./사진=천현정 기자
센터 관계자 등은 이 시기가 되면 서울역 부근을 돌며 예방접종 독려 활동에 나서곤 한다. 센터 관계자는 "노숙인들은 만성질환 발병이 쉬운 의료 취약계층"이라며 "더 많은 참여를 위해 방문 상담에 나섰을 때 예방접종에 참여하라고 독려한다"고 밝혔다.

센터는 예방접종 외에도 겨울철 노숙인들을 위한 다양한 활동에 나선다. 이들에게 숙소를 제공하거나 연계해주는 임시 주거지원 사업도 그중 하나다.

한 관계자는 "겨울 동안 노숙인들이 실내에서 지낼 수 있도록 고시원 등과 노숙인을 연결하고 있다"며 "일부 고시원 업주들이 선행 차원에서 동참해주신다. 기존 30만원 정도인 월세를 5만원으로 낮춰 제공하는 지원이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들 활동가는 노숙인의 자립을 위해 서울역에 상주하는 노숙인을 대상으로 상담도 진행한다. 센터 활동가는 "한 40대 노숙인을 3주 동안 설득한 끝에 어제 병원에 입원하도록 했다"며 "평소 정신질환을 비롯해 환청, 환시, 환각과 알코올 중독 등을 앓고 있어 자칫 위험한 상황에 놓일 수 있는 분인데 설득이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한편 올해 예방접종은 다음달 3일까지 서울역과 영등포 현장 접종(25개소), 의료진이 시설로 찾아가는 방문 접종(7개소), 시설 촉탁의 및 협력병원을 활용한 접종(7개소) 등으로 진행된다.

시는 예방접종 기간 이후에도 서울역 노숙인 무료 진료소에서 잔여 백신 소진 시까지 접종 기회를 놓친 노숙인, 쪽방 주민들에게 추가 접종을 진행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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