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보러 온대" 그날 살해된 아내…18년 만에 잡힌 그놈 변명[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홍효진 기자 2023.10.27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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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사진은 기사 내용과 직접적 관련 없음. /사진=게티이미지뱅크


1998년 10월27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가정주부 A씨(당시 35세)의 시신이 발견됐다. 이웃 주민의 신고로 출동한 119 구급대와 경찰이 수습한 시신은 목과 입 등이 결박되고 목뼈가 부러져 있었던 데다 입고 있던 옷도 거의 벗겨진 상태였다. 강간 살인이 의심된 사건은 용의자 특정에 실패하면서 미제로 남았지만 18년이 흐른 2016년, 기적처럼 범인이 검거됐다.

목 조르고 성폭행 후 살인…최초 목격자는 초등학생 딸이었다
/사진=E채널 '용감한 형사들2' 캡처/사진=E채널 '용감한 형사들2' 캡처
A씨의 시신은 허리띠로 결박된 상태였다. 옷이 거의 벗겨진 시신의 목뼈는 강한 압박으로 부러져 있었고 얼굴에는 울혈(몸속 장기나 조직에 피가 몰리는 증상)점과 일혈(실핏줄이 파열된 흔적)점이 올라와 있었다. 이는 오랜 시간 압박을 가했을 때 벌어지는 현상으로 피해자의 사인도 경부압박질식사로 확인됐다.



시신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은 A씨의 초등학교 5학년 딸이었다. 하교 후 집에 돌아온 딸은 현관문이 열려있고, 집 안에 어머니가 엎드려 있는 모습을 보고 옆집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간 살인이 의심되는 정황에 경찰은 피해자 몸에서 확보한 체액과 체모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에 보내 DNA 분석을 의뢰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DNA 분석으로 성별과 혈액형 정보만 알 수 있었고, 분석 결과 용의자는 AB형 남성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남편은 "그날 아내가 '어떤 남자가 집 보러 온다'고 얘기했었다"며 해당 남성을 범인으로 의심했다. 실제 전화기록 조회 결과 A씨는 사건 당일 2차례에 걸쳐 누군가와 통화한 것으로 조사됐지만, 해당 전화는 모두 공중전화로 걸려 온 것으로 확인됐다.



이후 남편은 피해자 명의의 신용카드가 사라졌다는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수사 결과 용의자는 사건 당일 오후 3시쯤 중구 을지로 지하상가 ATM(현금자동입출금기)에서 10차례에 걸쳐 총 151만원을 인출, CCTV에 얼굴을 남겼다.

경찰은 공개수배를 결정했다. 같은 해 12월, KBS '공개수배 사건 25시'에서 용의자의 인상착의가 공개되자 제보가 빗발쳤지만 단서는 나오지 않았다. 소득이 없자 사건을 맡았던 도봉경찰서 수사본부도 2000년 해체되면서 사건은 미제로 남게 됐다.

사건 후 18년…끈질긴 수사 끝 '범인 검거'
2016년 11월11일, 노원 가정주부 살인사건 범인 오우진이 검거되고 있다. /사진=YTN 캡처2016년 11월11일, 노원 가정주부 살인사건 범인 오우진이 검거되고 있다. /사진=YTN 캡처
18년이 흐른 2016년 6월, 사건 당시 수사본부 막내였던 김응희 경위가 서울시경찰청 광역수사대로 부임한 뒤, 재수사에 들어갔다. 그러나 살인사건에 대한 공소시효(15년)는 끝난 상황. 2015년 8월 살인죄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일명 '태완이법'이 시행됐지만, 이는 2000년 8월 이후 사건에만 적용됐다.


다행히 길은 있었다. 2010년 성폭력처벌법 제정으로 DNA 등 과학적 증거가 있는 사건은 공소시효 기한이 10년 더 연장된 것. 국과수 확인 결과 당시 A씨의 몸에서 채취한 체액이 보존돼 있었다.

20대 중반~30대 초반(사건 당시)으로 범인을 추정한 경찰은 1965~1975년생 중 비슷한 수법의 전과자 8000여명을 추려, 용의자 후보를 소거해갔다. 후보는 125명으로 압축됐고 이들의 얼굴 사진을 사건 당시 ATM CCTV에 찍힌 사진과 한 명씩 대조했다. 범인으로 확신한 사람은 단 1명. 이름은 오우진, 44세 남성이었다.

남은 건 물증이었다. 형사들은 오씨가 사는 경기 양주시의 한 아파트 인근에서 잠복하며, 그가 버린 쓰레기봉투에서 담배꽁초를 확보했다. 이후 국과수에 DNA 분석을 요청한 결과 1998년 확보한 DNA와 일치한다는 결과를 받았다.

2016년 11월11일, 오씨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서 긴급체포 됐다. 오씨는 가정을 꾸리고 회사에 다니는 등 평범하게 지내고 있었지만, 18년 전 범행 후에도 청소년 성매매 알선으로 유죄 판결을 받는 등 반성 없이 살아온 사실이 확인됐다. 살인 이전에도 여성을 상대로 3번이나 특수강도 범행을 저질렀다.

범행 당시 26세였던 오씨는 생활정보지에서 전셋집 정보를 보고 A씨 집을 방문, 범행을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그는 사건 당일 오후 12시32분 노원역에서, 12시43분에는 상계동 상가의 공중전화에서 A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후 집에 도착한 오씨는 A씨에게 "전세 보증금 감액이 가능하냐"고 문의했다가 이씨에게 "보증금도 없이 집을 보러 다니냐"는 소리를 듣고 화가 나 '우발적 살인'을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살인 고의는 없었다는 지속된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2017년 4월4일 재판부는 오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고, 대법원도 확정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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