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팔아" 묻지마 '빚투' 최후…대공황 부른 '검은 목요일'[뉴스속오늘]

머니투데이 김미루 기자 2023.10.24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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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10월24일 월스트리트 대폭락…'검은 목요일'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기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29년 10월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모인 사람들. /사진제공=Federal Reserve History1929년 10월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모인 사람들. /사진제공=Federal Reserve History


"팔아. 빨리 팔아. 얼마라도 좋다. 팔기만 하면 된다."

1929년 10월24일 목요일 오전 11시.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에 위치한 '뉴욕 증권거래소' 사람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매도 주문이 갑자기 늘어나더니 곧 눈덩이처럼 늘어났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대폭락 사태가 발생한 것. 이후 이날은 '검은 목요일'이라고 불린다.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가 20% 하락했다. 이날 하루 거래된 주식은 1290만주. 종전 하루 최대 거래량인 400만주의 3배가 넘었다. 시카고와 버팔로 주식거래소는 낮 12시30분에 아예 문을 닫았다.

같은 해 9월20일 영국에서 있었던 런던 증권거래소 대폭락 이후 월스트리트 대폭락까지 이어지면서 12년 동안 서구권 전체에 엄청난 대공황이 시작됐다.



미국판 '빚투'가 이끈 상승장…거품 있었다
1920년 1월2일부터 1954년 12월31일까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일일 종가. 지수는 1929년 9월3일에 381.17로 마감하며 정점을 찍었다. /사진제공=FRED1920년 1월2일부터 1954년 12월31일까지 다우존스 산업평균지수 일일 종가. 지수는 1929년 9월3일에 381.17로 마감하며 정점을 찍었다. /사진제공=FRED
1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경제는 호황을 누렸다. 자동차와 건설을 비롯해 전 분야에서 생산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7초에 자동차 한 대가 나온다고 했다. 경제가 번영하자 1920년대 미국 증권시장은 1921년 이후 8년 동안 상승세를 달렸다. 골드만삭스 같은 투자신탁회사가 월스트리트에 속속 등장했다.

미국인들이 주식시장에 모여들었다. 재산 대부분을 주식에 투자했다. 상당수 미국인은 주식을 사려고 은행에서 대출받았다. 이른바 미국판 '빚투'(빚내서 투자)다. 주식시장에는 버블이 형성됐다. 미국의 제31대 대통령 허버트 후버는 1929년 3월 대통령 취임사에서 "빈곤에 대한 최후의 승리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장담했다.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시장 전문가들은 거품의 붕괴를 우려했다. 같은 해 연방준비제도 이사회(FRB)는 과도한 투기를 지적했고 투기 세력에 대한 대출을 금지했다. 그러나 하루 만에 내셔널 시티뱅크 사장은 연준 이사회에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 투기 세력에 2500만달러의 대출을 해주겠다고 발표한 것.


은행이 '빚투'를 종용하자 6월부터는 다시 주식시장이 상승세를 기록했다. 9월에는 다우지수가 20% 가까이 급등했다. 신기록인 381.17포인트를 기록했다. 9년 만에 10배가 상승한 결과였다.

런던 증시 대폭락 후 한 달…개장 동시에 11% 하락
1929년 대폭락 이후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투자자들이 모인 모습. /사진제공=Federal Reserve History1929년 대폭락 이후 뉴욕 증권거래소 앞에 투자자들이 모인 모습. /사진제공=Federal Reserve History
하지만 이미 강철 생산량이 줄어 건설업이 부진해졌고 자동차 판매량도 줄어든 상태였다. 미국인들은 많은 부채를 가지고 있었다. 로저 뱁슨 금융전문가는 "대폭락이 다가오고 있다"는 내용으로 칼럼을 냈다. 다음 날 주식시장에서 주가지수가 3%가량 하락했다. 이 폭락을 '뱁슨 대폭락'이라며 시장의 일부에서는 건강한 시장 조정세라고 판단했다.

같은 해 9월20일 영국 런던 증권거래소에서는 현지 최대 투자자들이 사기 및 위조죄로 체포되면서 주가가 대폭락했다. 런던 증시 대폭락은 미국에서도 해외시장 투자에 대한 불안감을 일으켰다. 시장은 날이 갈수록 불안정해졌다.

결국 10월 중순에 들어서자 매도세가 격렬해졌다. 10월24일에는 개장과 동시에 주문이 접수돼 11% 하락으로 시작했다. 이날 하루 동안 1290만주가 팔렸다. 결국 낮 12시30분 시카고와 버팔로의 거래소는 긴급히 거래를 중지하고 문을 닫았다. 투자자 11명이 극단적인 선택을 한 이후였다.

월스트리트 주요 은행은 낮 1시쯤 회동을 가졌다. 당시 뉴욕 증권거래소 부이사장 리처드 휘트니는 은행가에서 재정 지원을 받아 US 스틸 주식을 시장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대규모 매입하자고 제안했다. 또 다른 우량주에 대해서도 비슷한 매입을 시도했다. 1907년 공황을 끝낸 방법이었다.

하락세는 겨우 진정됐다. 이 같은 장세는 같은 달 25일(금요일)과 26일(토요일) 오전까지 이어졌으나 1907년과 달리 해결되지 않았다.

'뱅크런'에 은행 도산…1930년대 대공황 시작
/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사진=임종철 디자인기자
같은 달 28일 월요일에는 수많은 마진 콜이 접수됐다. 투자자들은 시장을 떠나기로 했다. 다우지수 하락은 계속됐다. 이날 하루에만 13%가 폭락해 폐장 때 260.64포인트를 기록했다. 29일 화요일에도 1640만주가 거래됐다. 이날 다우지수는 12% 더 하락했고 같은 해 11월13일 최저점인 198.69포인트까지 하락했다.

이 같은 대폭락은 1920년대 경제 호황 직후에 발생했다. 당시 철강 생산, 건물 건설, 소매 매출, 자동차 판매, 철도 운송량 등은 매년 기록을 경신했다. 제조회사나 무역회사는 1929년 상반기 순이익이 전년 대비 36%까지도 증가했다. 주식시장도 과열돼 1928년 주가는 무려 43.8% 상승했다.

결국 주식 시장 붕괴로 시장에 돈이 말라버렸다. 도산 위기에 몰린 은행들은 대출을 회수하려 했지만 대량 예금 인출 사태(뱅크런)가 발생하면서 결국 문을 닫았다. 1930년대 전 세계를 강타한 대공황이 발생했다.

※참고자료
'Federal Reserve History'(미 연방준비제도 역사관)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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