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화진 칼럼] 재미있는 공항

머니투데이 김화진 서울대 법학대학원 교수 2023.10.23 14:00
글자크기
김화진 /사진=김화진김화진 /사진=김화진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은 미국의 애틀랜타국제공항이다. 1998년에서 2019년까지 약 1억1000만 명이 이용했는데 필리핀 인구 정도다. 가장 바쁘다 보니 규모도 커서 로스앤젤레스(LA)에 있는 디즈니랜드의 39배 면적에 펼쳐져 있다.

그런데 바로 그 애틀랜타공항의 무려 일곱 배, LA공항의 아홉 배 되는 면적의 공항이 콜로라도의 덴버국제공항이다. 135.7평방킬로미터(㎢)다. 뉴욕 맨해튼의 두 배 면적이다. 물론 그래도 사우디아라비아의 킹파드국제공항보다는 작다. 킹파드의 면적은 덴버공항의 거의 여섯 배인 776㎢다. 지구상에는 그보다 작은 나라가 23개나 있다. 바레인보다 약간 더 크다. 물론 다 쓰지는 않는다. 걸프전 때 미군이 사용하느라 그렇게 된 것이다.



덴버는 로키산맥 바로 동쪽 기슭에 있어서 시가지 사진에 항상 눈 덮인 로키산맥이 배경으로 나온다. 고도가 높은데 정확히 해발 1마일이다. 별명이 '마일하이시티'(mile-high city)다. 동계스포츠 중심이어서 스키장이 많다. 미국의 대표적 겨울 휴양지, 휴가지다. 1976년 동계올림픽 개최권을 따냈는데 주민들이 반대해서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 양보했다.

고지대형의 긴 활주로 6개를 갖춘 덴버공항은 클 뿐 아니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바쁘다. 현재의 공항이 지어지기 전 시내에 있던 공항 때부터 허브였다. 덴버가 미국의 거의 한가운데 위치해서다. 주위의 와이오밍과 캔자스에 국제공항이 없다는 점도 덴버를 바쁘게 한다. 덴버를 허브공항으로 하는 UA만도 하루 평균 450편을 이착륙시킨다. 2024년에는 700편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기이한 이야기들이 덴버공항의 유명세를 더해주었다. 덴버는 2019년에 뉴멕시코 로스웰 남쪽에 있는 로스웰에어센터와 '초자연 자매공항'이 되었다. 로스웰은 미국에서 외계인 이야기의 발상지다. 두 공항은 자매결연협약서 말미에 "함께 외계와의 전쟁에 관한 전략을 공유한다"고 뻔뻔스럽게 써넣었다. 이렇게 한 것은 덴버국제공항이 알 수 없는 이유로 여러 가지 음모론에 연루되어 있어서다.

음모론은 공항이 핵전쟁 때 고위층의 벙커로 사용되도록 지어졌다느니, 세계정복을 꿈꾸는 비밀단체의 벙커로 사용될 것이라느니, 나치 세력들이 관련되어 있다느니, 지구평면론자들이 관여되어 있다느니 하는 것들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공항 곳곳에 있는 조각상과 그림 중에 특이한 것들이 적지 않아서다. 예컨대 2019년에 "일루미나티의 본거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하는 괴물 조각상이 공항에 설치된 적이 있다. 여론이 나빠서 다른 것으로 대체되었다. 수하물 찾는 곳에도 수하물을 지킨다는 뜻으로 괴물상이 있다. 사실 다른 뜻이 아니고 조각가의 유머다.

공항 측은 음모론을 적극 활용하기로 방향을 정했다. 20주년 기념으로 공항 곳곳에 조크를 하는 외계인 포스터를 붙이거나 프리메이슨, 크롭서클 이미지를 활용했다. 이런저런 기념 소품도 제작해서 판매했다. 그런 것들로 더 유명해져서 800만 달러 추가 수입이 생겼다고 한다. 음모론과 함께 공항을 더 재미있는 곳으로 만들었다.


원래 공항은 항공여행에 반드시 따르는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받는 곳이다. 출발 지연, 소지품 검색, 길게 늘어선 줄, 급기야 항공편 취소나 연결 항공편 놓치기, 부친 짐 분실 등등이다. 덴버공항처럼 공항이 좀 재미있는 곳이 되는 것도 나쁠 것 없겠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