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하지만 뻔하지 않아 매력적인 '최악의 악' 지창욱

머니투데이 이덕행 기자 ize 기자 2023.10.20 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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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사진=월트디즈니컴퍼니코리아


경찰이 비밀리에 범죄 조직에 잠입, 위장 수사 활동을 다루는 언더커버 장르는 형사물 중 하나의 축으로 자리잡았다. 영화 '무간도'와 이를 리메이크한 '디파티드'가 대표적이며 국내에서는 '신세계'가 이에 해당한다. 디즈니+ 오리지널 '최악의 악'은 이러한 언더커버를 내세운 작품이다. 중심이 되는 틀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익숙하다는 생각이 들 수 있지만, 절대 뻔하지는 않다. 모든 사건의 중심이 되는 배우 지창욱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공개된 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최악의 악'은 1990년대 한-중-일 마약 거래의 중심 조직 강남연합을 일망타진하기 위해 경찰 박준모(지창욱)가 조직에 잠입 수사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지창욱이 맡은 박준모는 마약 사범 아버지를 둔 경찰이다. 집안 때문에 처가에서도 무시받고 진급에도 어려움을 겪는 박준모는 두 계급 특진이라는 조건을 걸고 권승호라는 가상의 인물이 되어 강남연합에 잠입한다.



/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사진=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이제는 많이 익숙해진 언더커버 장르. '최악의 악'은 그 중에서도 유독 영화 '신세계'를 연상시킨다. '최악의 악' 연출을 맡은 한동욱 감독이 '신세계' 조연출 출신이기 때문이다. 준모에게 "너 서울 가서 새로운 일 해볼래?"라고 제안하는 석도형(지승현)에게서 '신세계'의 강형철(최민식)이 떠오르는 것이 대표적이다.



어찌 보면 '아는 맛'이다. 쉽게 질릴 수도 있는 '아는 맛'이지만 뻔하지는 않다. 가장 큰 차이를 보여주는 지창욱의 연기 때문이다. 먼저 눈에 띄는 건 액션이다. 지창욱은 첫 누아르 장르에 도전했다는 점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강도 높은 액션을 보여준다. 매 에피소드 액션신이 나오지만, 지루하지 않게 감상할 수 있는 건 다채로운 변주를 통해 새로움을 주는 지창욱의 연기가 있기 때문이다.

화려한 액션뿐만 아니라 다양한 상황에서 마주친 감정 연기도 일품이다. 조직 간부들의 의심을 걷어내고 신뢰를 얻기 위해 준모는 저돌적으로 임무를 수행한다. 물론 그 임무라는 것이 마냥 합법적이고 정의로운 건 아니다. 박준모라는 캐릭터가 사명감, 정의로움으로 똘똘 뭉친 인물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책감을 느끼는 건 어쩔 수 없다. 지창욱은 그 순간 순간의 머뭇거림과 고뇌를 짧지만 강하게 표현하며 깊은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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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최악의 악'이 가진 하나의 차별점이 있다면 언더커버 요원 준모와 그의 아내 의정(임세미), 조직의 보스 기철(위하준)이 삼각관계로 얽혀있다는 점이다. 지창욱은 정체가 들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작전을 빌미로 계속해서 가까워지는 의정과 기철의 모습에서 생기는 의구심 등 다양한 감정이 요동치는 준모의 감정을 섬세하게 풀어내고 있다.

대표적인 장면이 4화에서 장모를 떠나보내는 장면이다. 누구보다도 자신을 아껴준 장모님이지만, 잠입 수사 중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배웅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느끼는 슬픔과 허탈함, 분노 등을 압축해서 보여준 지창욱은 보는 이를 순식간에 빨아들였다.

7화부터는 점차 악에 물들어 가는 준모의 모습을 보여줬다. 준모는 의심을 받더라도 사람을 죽이는 것만은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자신과 의정의 정체를 알게 된 천 사장이 도주하는 과정에서 건물에서 추락하자, 천 사장을 살릴 수 있음에도 진실을 덮기 위해 이를 외면한다. 18일 공개된 8·9화에서는 한발짝 더 나아갔다. 얼굴에 피칠갑을 한 채 재건파 조직원을 헤치우는 지창욱의 모습은 그전과는 달라진 준모의 모습을 여실히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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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2화에서는 준모의 액션과 감정이 더욱 요동칠 가능성이 높다. 기철의 신임이 두터워지며 준모는 마약 거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악의 맛'을 보며 죄책감이 옅어지는 준모가 어떻게 악에 물들어 가는 과정을 어떻게 보여줄지도 관심사다.

또한, 준모-기철-의정으로 이어지는 삼각관계에도 변화의 조짐이 보인다. 중국 마약공장의 핵심 유통책 해련(김형서)이 준모에게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준모는 마약 거래를 재개시키기 위해 해련을 이용하려 든다. 의정 역시 기철에게 마음을 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연기와 실제를 오가는 감정 사이에서 네 사람이 계속해서 마주치며 감정은 계속해서 극대화되고 있다.

결말 역시 관심을 모은다. '신세계'의 이자성(이정재)은 경찰을 배신하고 골드문 그룹의 일인자가 되며 '무간도'의 유건명(유덕화)은 조직을 배신하고 경찰이 되기를 선택한다. 준모는 이들과 달리 아직 자신의 최초 목표를 잃어버리지 않고 있다. 다만, 8·9화에는 배신에 대한 떡밥이 계속해서 뿌려졌다. 그렇기 때문에 준모가 설사 기철을 배신하고 조직의 일인자가 되더라도 큰 반전은 아니다. 그럼에도 기대가 되는 이유는 이미 익숙한 것들을 뻔하게 보여주지 않은 지창욱이 한 번 더 그리 해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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