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투자 시스템, 제대로 작동하고 있나"…최태원이 지적한 이유

머니투데이 최경민 기자 2023.10.19 1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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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8일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23 CEO세미나'에서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8일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23 CEO세미나'에서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SK그룹


"투자 결정 때 매크로(거시환경) 변수를 분석하지 않고, 마이크로(미시환경) 변수만 고려하는 우를 범해선 안 된다."



최태원 회장은 지난 16~18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에서 진행한 CEO(최고경영자) 세미나에서 한 말이다. 확대경영회의(6월), 이천포럼(8월)과 함께 SK그룹 3대 전략회의로 꼽히는 CEO 세미나를 통해 새로운 투자 접근 방식을 주문한 것이다.

최 회장이 이 문제를 짚은 것은 "사업 확장과 성장의 기반인 투자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투자 완결성 확보"를 강한 어조로 주문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기존에 유지해온 투자 시스템으론 새로운 글로벌 환경 속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이 읽힌다.



SK그룹은 신사업 투자에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국내 기업이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SK그룹의 합산 설비투자(CAPEX)는 지난해 35조원으로 직전 3년(2018~2021년) 평균인 20조원 대비 75% 확대됐다. 2026년까지 반도체, 배터리, 바이오 등에 247조원을 투자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투자 확대에 따라 그룹 합산 순차입금(총차입금에서 현금성 자산을 뺀 것) 규모는 지난 2017년 22조원에서 지난 1분기 87조원으로 늘었다.

문제는 글로벌 경제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는 것에 있다. 미중 갈등은 여전하고,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고금리 상황이 장기화되며 경기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하마스 간 분쟁까지 터졌다. 특정 지역에서 시장성이 있다고 해서, 특정 사업에 장래성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투자를 결정하기에는 거시환경이 우호적이지 않다는 현실을 최 회장이 짚은 것이다.

SK그룹 관계자는 "투자의 속도조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최 회장의 신사업에 대한 열망은 여전하다. 그는 지난달 울산포럼에서 "SK 모든 계열사가 추진하는 울산 친환경 투자만 8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지난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는 자금 흐름 문제를 지적하면서도 '탄소 제로' 사업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의사를 밝혔다. 8월 이천포럼에서는 "탄소제로 제품이 비싸도 '가치' 때문에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니 이제는 물건이 아니라 가치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SK그룹 관계자는 "신사업에 보다 신중하면서도 확실한 투자를 해야 한다는 취지"라며 "지정학적 문제와 국제정세가 엄청나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데, 그것들이 미시경제 환경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을 환기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8일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23 CEO세미나'에서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SK그룹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8일 프랑스 파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2023 CEO세미나'에서 폐막 연설을 하고 있다./사진=SK그룹
이런 분위기를 반영하듯 올해 CEO 세미나의 핵심 의제는 '글로벌 경영'이었다. 최 회장은 "급격한 대내외 환경 변화로 빠르게, 확실히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다"며 '서든 데스'(Sudden Death, 돌연사)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2016년 6월 확대경영회의에서 처음 언급한 '서든 데스' 화두를 다시 들고 나온 것이다. SK그룹 관계자는 "현재 그룹이 맞닥뜨린 경영환경을 그만큼 엄중히 보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해결책으로는 주요 글로벌 경제블록 별 조직 구축과 그룹 차원의 솔루션 패키지 개발 등을 주문했다. 이 연장선에서 △글로벌 전략과 통합·연계한 사회적가치(SV) 전략 수립과 실행 △미국·중국 등 경제 블록 별 글로벌 조직화 △에너지·AI·환경 관점의 솔루션 패키지 등을 제안했다. 최 회장과 CEO들은 2010년 중국에 설립한 SK차이나와 같은 그룹 통합법인을 다른 거점 지역에도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한편 올해 CEO 세미나는 부산 엑스포 유치 총력전을 위해 국제박람회기구(BIE) 총회가 열리는 파리에서 진행했다. SK그룹이 이 행사를 해외에서 연 것은 2009년 중국 베이징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최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조대식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 등 주요 경영진 30여명이 참석했다. CEO 세미나 이후에는 약 한 달간 CEO 평가를 진행하고, 이를 토대로 오는 12월 정기 인사를 발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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