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 窓]의사는 의료기관 내에서만 진료해야 하는가?

머니투데이 최혁용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한의사 2023.10.18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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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만 의료를 할 수 있다(의료법 제2조 제2항 제1호, 제27조 제1항). 그러나 의사도 아무데서나 진료를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의사가 환자를 보고 싶으면 의료기관을 개설해야 한다. 그리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그 의료기관 내에서만 의료업을 하여야 한다(제33조 제1항).

너무 당연한 말 아니냐고? 그렇지 않다.



60-70년대 의사의 진료형태에는 왕진도 포함되었다. 왕진을 잘 가지 않는 의사에 대한 사회적 비난도 흔한 풍경이었다. 환자 진료를 의료기관 내에서만 하라는 규정은 1973년 의료법 개정으로 처음 도입되었다. 당시에는 무면허의료업자가 큰 사회문제였다. 무면허 낙태 수술로 인한 사고도 많았고 위생병 출신의 포경수술 전문 돌팔이도 있었다. 부정의료업자의 척결이 부정부패 일소를 위한 국가적 과제였다. 의료기관 내에서만 진료하라는 강제는 바로 이런 상황에서 등장했다.

법의 적용은 법원의 해석을 전제로 한다. 대법원은 의사가 진료실을 벗어나서 환자를 보게 될 경우 의료의 질이 떨어지고 보건위생상 심각한 위험이 생길 거라고 우려한다. 규제의 밀도와 강도는 생각보다 높다. 우선 형사벌이 예정되어 있다(제90조). 의료법 위반으로 의사 자격이 정지되고 건강보험법 위반으로 진료비도 환수된다.



보건복지부 의료기관 개설 및 의료법인 설립 운영편람에 따르면 정기적, 계속적으로 불특정 다수의 환자를 진료하는 경우에는 '의료기관을 개설하지 아니 하고 의료업을 영위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의료인은 자신이 개설한 의료기관에서 의료업을 하는 것이 원칙이다. '환자의 요청에 따라' 다른 병원에 가서 그 환자를 보더라도 마찬가지로 처벌받는다. 의사가 다른 병원으로 갈 것이 아니라 환자를 이송해야 한다는 것이다. 환자가 불편을 감수해야 합법이 된다.

무면허의료행위를 없애겠다는 목적으로 만든 법이 이제는 모든 의료가 의료기관 내에서만 이루어지도록 하는 족쇄로 변질되었다. 권위주의 시대 통제 위주의 의료정책이 만든 유례없는 규제가 엉뚱한 사회적 통념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유례없다는 말은 그저 수사가 아니다. 실제로 의료행위를 의료기관으로 한정한 법률은 다른 나라에서는 비슷한 제도조차 찾을 수가 없다. 그래서 외국에서는 볼 수 없는 우리 나라만의 희안한 불법이 많이 생겼다.

우선 우리 나라에서만 원격의료가 불법이다. 원격의료는 원래 당연히 불법이라고 생각하는가? 이게 불법인 나라는 사실상 우리 나라 밖에 없다. 대법원은 의사가 전화나 화상통신으로 환자를 만나면 국민의 보건위생에 심각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고 보았다. 환자나 환자 보호자의 요청에 따라 진료하였다 하더라도 유죄라는 판단을 바꿀 수는 없었다. 전화로 환자를 만나는 것은 의료기관 내에서의 진료가 아니라는 거다. 방문진료나 왕진도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바로 이 법 때문이다. 이 역시 오직 한국에만 특유한 제도이다.


그러나 질병은 병원 밖에 있다. 특히 만성병이 사망의 주원인이 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 질병의 예방, 관리, 치료는 더 이상 의료기관 내에 머무를 수가 없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병원 접근성이 장벽이다. 장애인, 영유아, 노인 등에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의료 서비스가 필요하다. 학교에서도, 산업장에서도, 놀이방에서도, 요양원에서도, 적절한 의료가 제공되어야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는 십여년간 원격의료 시범사업을 해 왔고 방문진료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코로나 때는 일시적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 전에 우선 불필요한 규제부터 제거해야 한다. 의료기관 내에서의 의료만을 강제하는 법률을 그대로 두고 예외적인 상황을 자꾸 만드는 것은 바람직한 규제 정책이 못된다. 공익에 부합하지 못하는 규제가 사라진 자리를 원격의료의 효율성과 방문진료의 형평성, 그리고 의료공급의 장소적 다양성이 채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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