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보세]제도를 바꾸는 힘

머니투데이 김세관 기자 2023.10.17 09: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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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뉴스현장에는 희로애락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기사로 쓰기에 쉽지 않은 것도 있고, 곰곰이 생각해봐야 할 일도 많습니다. '우리가 보는 세상'(우보세)은 머니투데이 시니어 기자들이 속보 기사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뉴스 속의 뉴스' '뉴스 속의 스토리'를 전하는 코너입니다.

종이서류를 떼지 않고 온라인으로 실손의료보험(이하 실손보험)금 청구를 할 수 있는 내용의 보험업법 개정안(실손보험 전산화)이 이달 초 국회를 통과했다.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 개선을 요구한지 14년 만이다. 여러 의미에서 역사적인 법개정으로 평가된다.

어찌보면 2023년이 아닌 2013년에 통과됐어도 이상하지 않을 제도였다. 권익위의 개선 권고가 있었던 2009년은 우리나라에 스마트폰이 처음으로 보급되던 시기다. 국내 IT(정보통신) 환경의 분명한 변곡점이었다. 이후 실손보험 전산화가 진행됐더라면 아주 자연스러운 제도 개선 흐름이 이어졌을 것이다.



무엇보다 실손보험 가입자들의 전산화 요구가 컸다. 2021년 녹색소비자연대전국협의회 등 시민단체들의 조사 결과 실손보험 가입자 2명 중 1명은 청구하면 받을 수 있는 보험금을 포기하고 있었다.

포기하는 이유는 진료금액이 적어서(51.3%)가 가장 많았고, 병원에 재방문할 시간이 없어서(46.5%), 증빙서류를 보내는 것이 귀찮아서(23.5%) 등의 순이었다. 한마디로 종이로 된 의료비 증명 서류를 제출해야 하는 불편함이 보험금 청구를 망설인다는 얘기다.



번거로운 절차만 줄일 수 있게 제도를 조금 손본다면 될 일이었다. 실손보험은 가입자가 4000만명으로 사실상 제2의 '국민건강보험'으로 불릴만큼 보편적이기도 했다. 국민 편익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사안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제도 개선의 키를 쥔 국회는 실손보험 전산화를 반대하는 의료계의 눈치를 14년동안 봤다. 대다수의 말을 아끼는 국민보단 소수의 말 많은 이해단체의 입김이 더 먹힌 지난 10여년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는 무관심의 영향도 있었다. 국회에 해당 법이 상정돼 10년 넘게 이해단체의 벽을 넘지 못한 사실이 국회 울타리를 넘어 대중에게 잘 전달되지 않았다.


이번에 실손보험 전산화가 국회 문턱을 넘을 수 있었던 이유는 대통령실 등 정부의 추진 의지도 있었지만 국민들의 관심이 그 어느때보다 커서였다. 공론화의 목소리가 이슈를 마냥 눌러 앉고 있을 수 없게 했다.

여전히 국회에는 국민 편익을 위해 당연히 개선돼야 하지만 공론화가 되지 못해 표류 중인 법안들이 적지 않다. 국민 편익과 관련되다 보니 금융·경제 관련 법안들이 많다. 보험쪽에서는 최근 펫보험 활성화 차원의 수의사법 개정안이 그 중 하나로 떠오른다.

반려동물 800만 시대에 1%에 불과한 펫보험 가입률을 확대하고자 진단서 발급을 의무하 하는 내용의 개정안이 발의 됐지만 국회의 무관심과 관련 업계의 반대로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16일 금융위원회가 다양한 내용의 '반려동물보험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했지만 결국 수의사법이 개정되지 않으면 수박 겉핥기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는 국민이 만든다. 다만 국회가 국민의 편익만 보고 움직이진 않는다. 국민적 압박, 공론화 등 국회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필요하다. 실손전산화는 제도 개선 권고후 14년이 걸렸지만 펫보험을 포함한 다른 국민 편익을 우선시하는 민생법안들은 가능한 빨리 처리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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